본문 바로가기
▪︎ 일상 기록장/2021년

[영국생활] Day+1726 레고 꽃다발을 만들었다

by kyeeunkim 2021. 6. 5.

2021.06.04

  요 며칠은 별 일이 없었다. 단지 조금의 짜증이 쌓여있었는데, 일상을 다루는 일기에는 남기고 싶지 않다. 사실 밤에 몇 번 잠이 안와서 생각 카테고리에 남길까 말까를 고민했지만, 오히려 더 잠에 들 수 있도록 노력했다. 20대 초반에는 여러 감정이 몰아치기도 했고 그 때마다 새벽의 감성적인 글을 공유하기도 했지만, 지금은 그렇게 표현하기보다 속 안에서 사소한 우울함이나 짜증을 소화시키는 능력이 늘어난 것 같다. 그리고 대부분의 생각과 감정의 소화는 잠으로 이루어진다. 물론 '유치하다', '덜 성숙하다'라는 생각 때문에 표현을 자제했던 것이 건강하지만은 않고 그렇게 스쳐버린 감정들이 소중하다고 생각했기에 이렇게 나만의 작은 공간을 마련하기도 했다. 하지만 스스로도 정리되지 않은 감정의 표현들을 마구 내뱉고 싶지는 않았다. 그게 아마 20대 초반의 나와 달라진 점이 아닐까? 어쨋든 그 때보다 10년이 지난 지금은 나의 생각과 감정을 솔직하게 표현하면서 '나 자신'이 되어가는 모습을 기록으로 남기고 싶은 것이어서 좀 더 다듬어진 단단한 모양새가 나올 때까지 시간을 두기로 했다.

LEGO Creator Collection Flower Bouquet

  어제 남자친구는 친구와의 약속이 있는 날이라 퇴근을 하자마자 슝 나가버렸다. 나는 미리 끓여둔 순두부 찌개로 저녁을 먹고, 좀 더 리서치와 블로그 작업을 해볼까 했지만 이내 곧 기분을 새롭게 할 필요가 있음을 깨달았다. 그래서 선택한 것이 진즉에 사놓고 상자 채로 둔 LEGO Flower Bouquet 조립이었다.

  평소에 인스타그램을 많이 하는지라 사진을 찍을 생각은 했지만, 영상을 찍겠다는 생각은 없었다. (내가 무슨 유투버도 아니구..) 포장 상자와 구성품들을 기본적으로 촬영하고 설명서를 읽으며 1단계부터 천천히 시작하려던 차에 갑자기 타임랩스로 만드는 과정 전체를 찍으면 재미있겠다 싶어 얼른 세팅을 하고 촬영을 해봤다.

  원래 만들고 조립하는 것을 좋아하는 나로서는 어렵다는 느낌은 없었는데, 스페셜 에디션이라 더 그런 것인지 정말 독특하고 재치있는 조각들이 많아서 신기했다. 레고로 작품을 만드는 사람들은 많다고 익히 알고 있지만, 그저 그들의 세상이라고 느꼈는데. 비록 난 제품에 딱 맞는 조각들이 제작되는 완제품을 만든 것이지만, 레고로 이런걸 만들 수 있으니 모든 조립의 과정이 즐거웠다.

  

Step 1 꽃들을 만드는 타임랩스

  어제의 레고가 내게 처음은 아니다. 5~7살이던 어린 시절에 거창한 장난감은 기억나지 않지만 엄청난 크기의 포대기에 싸여있던 레고 조각들은 기억이 난다. 성별이 다른 남매를 키우는 부모님 입장에서는 어떻게든 둘이 함께 사용하거나 같이 놀 수 있는 장난감이 좋은 선택이었을테고, 다른 측면으로는 뭔가 만지고 조립하는 교육적인 효과도 기대하셨을 것이다. 내가 기억하는 순간부터는 이미 엄청난 레고의 양이 있었던 걸로 보아 아마 오빠가 레고를 좋아하기 시작했을 때부터 몇 개의 세트를 구입했던 것 같은데 그걸 따로따로 보관할 수는 없으니 큰 포대기에 다 같이 모아 놀이시간에만 펼쳐 주셨던 것 같다. 세트 상자나 설명서가 남아있지 않았던 상황에서 내게 레고는 무언가를 따라 만들기 보다는 그냥 여러 조각을 조립해 무엇이든 만드는 것이었다. 지금도 다른 장난감들보다 그 순간들이 기억에 남는걸 보니 나는 레고를 가장 좋아했나 보다. 물론 컴퓨터가 보급되고 나이를 먹어가며 레고는 새롭고 신선한 게임들에 뒷전으로 밀려났지만, 그래도 레고가 지금까지도 손으로 무언가를 만들고 그리는걸 좋아하게 된 계기가 된 것은 아닐까 싶다. 한국의 교육 과정이 나에게 수학에 대한 좌절감만 주지 않았다면 난 성격 상 공대나 과학 쪽이 더 맞았을지도 몰라.. 하지만 이 당시에 레고를 즐기고 좋아했던 마음이 덕질이나 엄청난 전문적인 관심으로 이어지진 않아서 나는 이런 특이한 제품이나 키덜트적인 귀요미들만 사모으는 어른이 되었지만, 아직까지도 레고가 전 세계적인 놀이 도구이고 다양한 연령대를 위한 제품들을 제작한다는 것이 너무 좋다. 만약에 내가 아이를 낳게 되면 아이에게 레고를 선물하며 같이 노는 순간이 찾아오지 않을까?

완성된 레고 꽃들

  완성한 레고 꽃다발은 화병에 꽂아 책상 구석에 두었다. 향기를 가진 생화도 좋아하지만 시들지 않는 영원한 꽃이 내 자리에 함께 있는다는 것만으로도 기분이 새로워지고 분위기가 밝아지는 것 같다.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