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06.06
한국에서 오늘은 현충일이다. 비록 일요일이라 휴일의 느낌은 아닐테니 영국과 다를 바 없는 주말이겠지만. 바빴던 지난 주말에 비해 이번 주말은 여유로웠다. 마음 먹으면(?) 바쁠 수 있었지만, 2주 전에 예약해놓은 백신 접종 일정 때문에 일부러 느슨한 계획을 세웠다.
남자친구는 토요일 오후 친구 생일 파티 일정이 있었다. 나도 진즉에 소개 받았던 친구라 같이 가지 않겠냐 했지만, 백신 접종 전에 음주를 하면 좋지 않을 것 같아서 이번에는 가지 않겠다고 했다. 물론 백신 접종 전 술을 마시면 안된다는 안내는 없었지만, 괜한 사람 마음이랄까, 병원 가는데 탈 나고 싶지 않은 마음이었다. 게다가 코로나 때문에 작년엔 생일이니 뭐니 친구들 얼굴 보기도 어려웠던 것을 아는데, 오랜만에 하는 생일 파티에 얼마나 거하게 놀고 싶을까, 거기에 방해가 되고 싶지 않았다. 난 엄청난 파티족은 아니어서 중간에 내가 먼저 피곤해질 것이 안 봐도 비디오이기 때문에. (그렇게 내가 아주 잘 놀아라, 한 덕분에 남자친구는 어제 12시간을 놀고 새벽 2시에 돌아왔다, 허허..)
그리고 그 전에 전시회 일정을 잡았다. 시간이 안되면 나 혼자 가도 괜찮기는 한데, 아무래도 혼자 주말 일정을 잡아버린 미안함을 가진 남자친구가 같이 가겠다고 해서 함께 시간을 예약했다. Victoria Miro는 큰 갤러리도 아니고 대략의 전시 규모를 알고 있었기 때문에 친구 생일 파티 일정 전에 다녀올 수 있을 것 같았다. 오후 12시 시간에 맞게 도착한 갤러리는 복잡하지 않았고, Yayoi Kusama의 다양한 최신작들을 볼 수 있었다. 다른 갤러리 룸에는 Chantal Joffe 작가의 작품들도 같이 전시되고 있었다. 비록 짧은 시간이었지만 오랜만에 간 갤러리는 너무 즐거웠다. 행복한 문화생활, 앞으로 더 많이 갈 수 있으면 좋겠다.
그리고 대망의 오늘, 백신 접종 날. 컨디션 조절을 위해 어제 남친이 돌아온 시간(새벽 2시)보다 훨씬 일찍 잠들었고 일어난 오전에는 만약의 상황을 대비해서 죽을 만들었다. 챙겨 먹을 만한 점심거리가 있으면 백신 접종 이후 아프게 되면 죽을 만들 생각이었는데, 마땅한 점심거리도 없어서 후다닥 만들어 점심으로도 챙겨 먹었다. 남자친구는 매우 착해서 심리적 의지는 되지만 실속 있는 물리적 케어에는 큰 기대가 없기 때문이다. 게다가 이럴 때 전혀 다른 문화권의 외국인 남자친구는 한국인의 힐링 푸드인 죽 끓이는 법을 모르겠지. 약 10년차의 자취 경력인은 이렇게 자기 생존법을 미리미리 마련합니다, 하하.
이후 예약 시간 오후 2시 40분에 맞춰 예약한 백신 접종 센터 'St Thomas' Vaccination Centre 2'에 도착했다. 런던에 와서 4년의 학생 생활 동안 병원을 한번도 가본적이 없었는데 이렇게 처음으로 오게 되다니. 게다가 그 처음이 코로나 바이러스 백신 접종 때문이라니.
St Thomas' 백신 접종 센터는 임시로 마련된 텐트로 3군데로 나뉘어 있었고, 나름 예약 확인과 접수, 대기 시스템이 체계적이었다. 같이 온 남자친구는 밖에서 기다리고, 예약 확인 및 접수를 마치고 텐트 안에서 약 10분을 기다렸다. 커다란 화면에 접수된 순서대로 리스트에 이름이 올라가고, 순서가 되면 가야하는 데스크 번호가 안내되었다. 나는 Desk No. 7! 긴장되는 마음을 최대한 진정하며 각각으로 나뉘어져 있는 데스크를 찾아가니 두 명의 의사분들이 반겨주셨다. 두 명이 한 팀으로 한 명은 백신 접종자 확인과 접종 전 안내 사항을 알려주시는 담당이었고, 다른 한 명은 주사를 놓아주시는 담당이었다. 간단한 질문들에 대답하고 (접수 때부터 묻는 여러가지 확인 사항들) 백신 주사를 맞는데, 분위기는 생각보다 매우 캐주얼하고 밝았다. 담당의들이 젊은 분들이어서 그랬나, 기분이 어떻냐고 물어봐주고 긴장된다는 나의 말에 분위기도 풀어줬다. 심지어 질문들 중 마지막은 '오늘 백신 맞게 되서 기쁘냐?'였는데 전혀 예상하지 못한 질문이라 '뭐라구요?'하고 되물었다는. 물론 그들에게는 반복되는 과정이고 하루에도 수백번을 하는 질문이겠지만, 덕분에 조금 가벼운 마음으로 맞았다. 영국은 만 40세 이하로는 화이자 혹은 모더나 백신을 맞게 되었기에 만 30세 초인 나 또한 화이자 백신을 맞았다. 접종 후에는 따로 마련된 공간에 만약의 상황을 대비해 약 15분 간의 시간을 보내는 곳이 있었는데, 점점 대기 의자가 부족해지는 것 같길래 별다른 증상을 느끼지 못한 나는 몇 분 일찍 나왔다. 많은 사람들의 후기를 읽어보면 화이자 백신은 1차 접종 때는 가벼운 근육통 혹은 두통만 겪는다는데, 잠들기 전에 미리 파라세타몰을 복용하는게 좋다고 한다. 저녁이 된 시간까지도 별 느낌이 없지만, 자기 전에는 타이레놀을 먹을까 한다. 제발 별 일 없이 지나가기를.
그래도 이렇게 1차 접종을 마치고 나니 뿌듯한 기분이다. 2차 백신 접종은 8월 말이다. 백신 예약을 할 때 2차 예약까지 같이 하길래, 가장 빨리 진행할 수 있는 날짜로 예약했다. 약 11주 후다. 백신이 코로나로부터 100% 안전성을 가지는 것은 아니지만, 그래도 이러한 과정들이 전 세계가 백신을 이겨내는 한걸음이 되기를 바란다.
저녁은 삼겹살 파티다. 잘 먹고 잘 자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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