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outhbank Centre: Hayward Gallery
Igshaan Adams: Kicking Dust
2021.07.17
이 전시회가 Hayward Gallery을 방문하게 된 주요 이유였다. 사전에 전시 정보를 보고 볼지 말지 결정할 때 가장 큰 영향을 미치는 것이 아무래도 전시 대표 이미지인데, 이 전시의 대표 이미지는 너무 멋있었다. 게다가 weaving과 textile에 관심이 많을 수 밖에 없는 패션 전공자로서 확실히 흥미로워 보이는 전시였다.
이그샨 아담스(Igshaan Adams)은 남아프리카 공화국 출신의 예술가이다. 그의 작업은 직조, 조각과 같은 설치 미술을 바탕으로 인종, 종교 및 섹슈얼리티와 관련된 문제를 탐구한다. 수피즘(Sufism: 이슬람의 영적 형태), 그리고 믿음과 소속감에 대한 관계는 이그샨 아담스의 예술적 실천의 중심이 된다. 많은 문화적 구조 사이의 한 자리를 차지하는 사람(기독교 조부모 밑에서 자란 이슬람교도, 광범위한 동성애 혐오 사회 속 퀴어, 혼합 민족)으로서 그는 자기 정의와 발견의 여정이 계속되리라 믿는다. 그렇기에 그는 자신의 직조물이 계속되는 여정의 일부인 자화상으로 읽힐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의 예술 작품 제작에는 다양한 형태의 협업이 필수적이다. 그는 수년에 걸쳐 다양한 여성 직조 그룹과 함께 일했으며, 각각의 전통적인 직물 기술은 개별적인 삶의 경험에 영향을 받고 형성되어 세대를 거쳐 전해져왔다. 또한 이그샨 아담스의 스튜디오에는 협업자, 가족, 및 친구들이 모여 구전 역사, 민족 및 개인 이야기를 공유하는 장소인데, 종종 그러한 주제들이 그의 작품 활동에 영감을 준다.
전시의 규모는 크지 않았지만, 전시 공간에 들어서자마자 공간을 채운 작품들이 주는 느낌은 웅장했다. 천장에 달린 철사 구조물들은 공기를 부유하는 은빛 조각들 같아 보였고 벽과 바닥에 있던 다양한 색감과 무늬의 직조 작품들은 순간적으로 신비로운 공간으로 들어온 것만 같았다. 처음에는 중앙에 있는 대형 작품을 둘러 전시장을 한바퀴 돌며 감상하고 이후에는 중앙 작품 사이로 난 길로 이동하면서 작품의 세부적인 형태와 구조를 살펴보았다. 멀리서 볼 때는 그저 큰 카페트 같아 보였던 직조물들은 가까이서 살펴보니 다양한 소재와 텍스타일로 이루어져 있었고 사이사이 수많은 비즈 조각들이 엮여 있었다. 아무렇게나 엮어 구름 모양처럼 표현한 것만 같았던 철사 구조물도 자세히 바라보니 꽃 모양으로 꼬인 것도 있고, 무언가가 적힌 작은 원형의 펜던트가 달려 있기도 구슬이 엮여 있기도 했다. 숲과 나무를 바라보는 시각의 차이라는게 이런 것일까. 전체 원형이나 멀리서 바라볼 때의 무늬 색감에 그 작은 디테일이 큰 차이를 만들까, 그런 디테일이 없어도 결국 만들어지는 전체적인 느낌은 같지 않을까 싶다가도 결국엔 그러한 작은 요소 하나 하나가 모여 전체를 만들어 낼 때만이 온전한 그 원형이 된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Kicking Dust는 남아프리카 공화국에서 가장 오래된 전통춤 중 하나인 ‘Indigenous Riel(Reilans)’에서 영감을 받았다. ‘먼지 속에서 춤추는 춤’으로 묘사되는 이 춤은 공연자들이 마른 땅을 힘차게 발로 차면서 땅에서 먼지 구름이 솟구치는 구애 의식이라고 한다. 나선형 철사와 구슬로 만든 구름 모양의 조각품들은 갤러리 천장에 매달려 아래 땅에서 오르는 여정의 먼지가 공명하는 듯한 이미지를 표현한다. 또한 다양한 직조물은 서로 다른 색상과 질감의 끈, 천 및 비즈들을 결합하여 경로를 기록한다.
Kicking Dust에서 작가는 현재 케이프 타운에 정착한 여성 이민자들과 난민을 지원하는 단체인 스칼라브리니 센터를 통해 만난 공예가 그룹과 협력했다. 기술 공유에 초점을 맞추고 난민들이 직조와 공예품으로 생계를 유지할 수 있는 수단을 만드는 것에 중점을 두고 있는 그의 스튜디오 실습과 병행하여 프로젝트가 진행되었다.
이 작품을 보면서 문득 떠올랐던 작가의 작품이 있다. 거의 8년 전에 뉴욕에서 보았던 엘 아나추이(El Anatsui) 작품들이었다. 한참 졸업 작품을 계획하던 대학교 4학년 여름 방학에 뉴욕을 잠깐 갔었는데, 그 때 어느 전시에서 엘 아나추이의 작품을 보고 한국에 돌아와 졸업 작품의 방향을 확 바꿨었다. 그의 작품들은 멀리서 볼 때는 거대한 원단이 흘러내리는 듯한 모양이지만 세부적으로 관찰하면 병뚜껑이나 캔 메탈과 같은 딱딱한 소재들을 다양한 방식으로 엮어낸 것이었는데, 관찰하는 시각에 따라 달라지는 다양한 모습이 흥미로웠다. 누군가는 거대한 모습만 보고 지나칠 수 있지만, 자세히 보아야만 발견할 수 있는 매력과 실체가 있다는 것을 보고 다른 사람들이 나의 작품도 그렇게 바라봐 주면 좋겠다는 영감을 받았었다.
이그샨 아담스의 작품에서도 비슷한 느낌을 받았다. 어떻게 생각하면 인간의 삶과 이 세계가 그렇지 않을까. 전체로 보면 유독 특정 색깔과 무늬가 전부인 것만 같지만 그 내부에는 다양한 사람 하나하나가 각각의 색깔과 무늬를 구성하고 있어 그들이 모여야만 전체를 이룰 수 있는 것. 전체로도 아름답고 세부적으로도 아름다운 것.
전시 내 각 작품들은 이그샨 아담스가 자신의 정체성과 광범위한 문화적 교류의 다양성을 반영하기 위해 여러 직조 소재의 잠재력을 탐구한 여러 패턴으로 구성되어 있다. 또한 그는 ‘우리가 사적 공간과 공적 공간을 넘나 들면서 집단적으로 남기는 흔적에 대한 아이디어’를 중심으로 전시를 구성했다고 한다. 바닥에 배치된 직물들 사이로 관객들은 여러 통로를 만나는데, 이것은 정해진 경로를 따르지 않고 직관적으로 걷게 되는 ‘욕망의 선’을 암시한다. 통로는 서로 교차할 수 있고 이것은 서로 다른 인종과 종교적 신념을 가진 사람들이 서로의 구역을 반복적으로 횡단했던 인간 역사의 움직임과 여행의 감각을 보여준다.
이 전시의 매력은 실제로 작품들을 다양한 각도, 방향에서 보는 것에서 느낄 수 있는데 특히 공기에 떠 있는 것만 같은 철사 구조물은 천천히 이동하면서 보았을 때 형태가 시시각각으로 변하는 것처럼 느껴져서 신비로웠다. 그 느낌을 사진으로 담을 수 없어 아쉬웠지만, 그게 또 예술 작품을 직접 보는 것의 매력이 아닐까. 사진이나 영상으로 모든 것을 느낄 수 있다면 직접 관람하는 것의 의미가 없을테니, 그 순간 받았던 느낌과 감상을 오랫동안 기억하고 싶다.
"I really do hope that the audience walk through the space,
conscious that they are also choosing a path"
Igshaan Adam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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