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outhbank Centre: Hayward Gallery
Matthew Barney: Redoubt
2021.07.17
오랜만에 혼자 전시회를 보러 나섰다. 전시회라는 것이 시간이 될 때 부지런히 다녀야 놓치지 않고 볼 수 있기 때문이다. 긴 전시 기간을 믿고 다음으로, 다음에, 를 외치다가 문득 전시 하나가 곧 종료되는 것을 깨닫고 부랴부랴 길을 나섰다. Hayward Gallery는 런던 Southbank Centre에 있는 갤러리인데, 늘 흥미롭고 신선한 현대 미술 작가들의 전시를 개최해서 종종 찾게 되는 곳이다. 이번에는 Matthew Barney와 Igshaan Adams의 전시가 동시에 열리고 있었다. 솔직히 나는 매튜 바니의 전시는 전혀 관심이 없었는데, 두 전시 통합으로 티켓을 예약 및 판매하고 있어서 두 전시 모두 관람했다.
매튜 바니(Matthew Barney)는 조각, 영화, 사진 및 드로잉 분야에서 활동하는 미국의 현대 미술가이자 영화 감독이다. 1967년 미국 캘리포니아 샌프란시스코에서 태어난 그는 고등학교까지 미식 축구를 했다. 하지만 이후 운동 선수의 길을 포기하고 1985년 예일 대학에 의대 진학을 계획했지만 이내 곧 미술 공부를 시작한다. 그의 초기 작품은 대부분 예일 대학교에서 제작 되었고, 대학의 체육관에서 상연되었다. 이후 뉴욕에서 모델로도 일한 경력이 있는데, 이를 통해 예술 작업 자금을 조달했다. 그는 운동 선수, 의학, 패션에 관련된 경력을 자신의 작품 세계를 창조하는데 응용하였다.
그의 대표적인 작품으로는 <구속의 드로잉(Drawing Restraint)> 시리즈와 <크리매스터 사이클(The Cremaster Cycle)> 시리즈 등이 있다. 그의 작품은 육체, 운명, 섹슈얼리티를 주제로 역사, 개인사, 신화가 융합된 거대한 혼합체의 우주론을 전개한다. 그의 작품에 대해 미술계의 평가는 극과 극을 달리지만, 관객들은 그의 작품을 통해 현대 미술의 새로운 기준의 미학과 그의 세계관이 표현하는 상징과 의미를 탐구할 수 있다.
작가 매뉴 바니에 대해서는 아는 것이 전혀 없었다. 전시 관람 이후 공부를 하면서 그의 다른 작품들도 알게 되었지만, 솔직히 말하자면 너무 어렵다. 내가 뉴욕 현대 미술관(MoMA)를 갔을 때, 꼭대기 층부터 즐겁게 작품들을 관람하며 내려오다 3층 쯤부터 머리를 쥐어싸고 도망치듯 나왔던, 그 때의 기분을 다시 한번 느끼게 했달까. 런던에 락다운이 풀리면서 그저 다시 문화 생활을 할 수 있다는 즐거움에 빠져 내가 현대 미술을 접하고 공부하면서 왜 좌절하고 점차 거리를 두게 되었는지 잠깐 잊고 있었네. 이래서 내가 보고 싶은 전시회 리스트를 작성할 때도 취향껏 골라서만 작성한건데. 그래서 분명 각 전시회 소개 기사들에서 이 전시가 크게 이슈되고 있는걸 보면서도 지나친건데.
전시장에 막 들어섰을 때 보이는 거대한 조각과 구리판 에칭(etching) 작품들을 볼 때만 해도 어렵다는 느낌은 전혀 없었다. 거대한 규모의 작품들이야 현대 미술 작가들이 많이들 하니까 '그래, 현대 미술 작가 전시회인데 이 정도 규모의 작품은 있어야지.'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금속과 구리판 에칭을 많이 활용하는 작가인가 보다, 라는 정도의 첫 인상.
하지만 가장 1층의 전시 공간을 지나 반층 올라선 공간의 영상 작품을 보면서 나의 첫 인상은 와르르 무너졌다. 나는 현대 미술 중에서 회화나 조각은 괜찮지만, 사진이나 영상에 가장 취약한 편인데 알고보니 매튜 바니는 영상이나 영화가 주요 작품이라고 할 수 있는 작가였다. 평소 같았으면 영상 작품은 대충 보고 지나쳤을 텐데, 작가를 모르는 상황에서도 무언가 영상 작품이 메인 작품처럼 보였고, 나도 모르게 의자에 앉아 영화를 관람했다.
Redoubt (2017-2019)
Runtime : 2 hours 14 minutes
이 장편 영화는 Idaho의 Sawtooth Mountains의 겨울 황야에서 6일 동안 일어나는 늑대 사냥의 이야기를 추적한다. 이 영화는 사냥의 여신 Diana와 사냥꾼 Actaeon의 신화를 재해석한 작품이다. (Diana가 숲에서 목욕하는 도중 Actaeon이 그녀를 목격하게 되고, 그것에 대한 형벌로 Diana는 그를 사슴으로 변하게 하여 사냥에 쫓기게 한다.) 실제 명사수인 Anette Wachter가 연기하는 영화 속 Diana는 반정부 생존 단체와 관련된 군용 위장을 하고, 두 명의 댄서가 그녀의 늑대 추격에 함께한다. 그들의 춤과 움직임은 이어질 사건을 예상하고 연습하는 것처럼 보인다. 작가인 Matthew Barney는 영화에서 미국 산림청의 경비 대원이자 조각사로 등장하는데, 그는 사냥꾼을 관찰하며 구리판에 자신이 목격하는 장면들을 조각, 기록한다.
대화가 없는 영화에서 춤은 언어이며 Diana와 Actaeon의 이야기, 우주론 및 현대 미국 정치 네러티브를 함께 엮는다. 또한 작가는 인간과 자연 세계 사이의 역동적인 관계와 예술적 창조의 역할을 탐구한다. 전시는 영화 상영과 함께 촬영 현장에서 제작된 구리판 에칭 작품들을 함께 전시하고 있으며, 실제 지역의 불에 탄 나무 잔해에서 대형 조각품이 주조되었다.
영화는 6일간의 늑대 사냥을 Hunt1부터 6까지 나누어 기록한 형식인데, Hunt 2 중간 즈음부터 보기 시작한 나는 중간에 몇 번이나 자리를 뜰까 고민하다가 다음 편을 보면 이해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마음에서 계속 보다 보니 끝까지 보게 되었다. 전체를 본 것도 아니었지만 나머지 영상을 보는 것만으로도 거의 1시간 20분 가량의 시간이 걸렸고, 그 동안 어둠이 짙게 깔린 상영 공간에서 대화도 없는 무성 영화를 집중해서 보는 것이 쉽지만은 않았다. 솔직히 말해서 잠깐 졸음이 쏟아지기도 했고 몸을 이리저리 꼬기도 했다. 영화를 보기 전 설명을 읽기는 읽었던 터라 사냥의 여신 다이아나와 악티온 신화 이야기를 바탕으로 한다는 것을 알았고, 영화를 보면서 누가 어떤 인물인지 눈치채기도 했지만, 그 이상의 의미에 대해서는 도무지 이해할 수 없었다. 블로그 기록을 위해 좀 더 깊이있게 의미를 조사한 현재도 사실 잘 모르겠다.
영상이라는 매체는 조금 더 직설적이고 정확한 정보 및 의미 전달을 가능하게 하는 매체라고 생각하는데, 현대 미술에서는 그렇지 않은 듯 하다. 그것이 내가 단순히 현대의 흔하디 흔한 자극적인 영상 정보 전달에 익숙해져서 인지, 현대 미술 작가들이 의도를 가지고 어렵게 표현하고자 하는 것인지, 아니면 추상적 의미와 영상 매체는 적절한 조합이 아닌 것인지는 알 수 없다. 단지 전문가가 아닌 입장으로서는 가끔 현대 미술 작가들이 과거 한자에 능통한 고위 학자들이었고 한글도 겨우 뗀 일반 백성인 내가 그들의 말을 이해하고자 노력하는 것 같은 기분이 들 때가 가끔 있다. 특히 '어떠한 영감을 받아서 만들게 된 작품입니다.'가 아닌 '이 작품 속에는 분명한 어떤 의미를 담고자 했죠.'와 같은 경우일 때는 더욱이. 다양한 기법과 전달 방법이 많은 현대 사회에서 그 분명한 의미를 좀 더 명확하게 표현해 주면 안 되나요, 라는 생각이 들기도 하지만 이것은 단순히 내가 우매한 관중이라서 그런 것일지도 모른다. 많은 전문가들은 이 영화가 아름답고 대단했다고 평했으며 그 의미들을 파악한 것 같으니 말이다.
그래도 이 전시에서 영화를 보아서 좋았다고 느낀 점은 2층으로 이어진 남은 작품들을 조금 더 쉽게 알아볼 수 있었다는 것이다. 영화에서 미국 산림청의 경비 대원이자 조각사로 장면들을 기록하는 인물로 등장한 작가가 실제로 영화 촬영 중에 제작한 에칭 작품들이 같이 전시되어 있었다. 각각의 판화에서 그가 해당 장면을 기록하던 순간이 함께 떠오르면서, '아, 영화 속에서 이런 상황이었지. 인물들 사이에 이런 대립과 긴장이 있었지. 그 때 인물들의 움직임이 어떠했고 작가가 그 순간을 판화로 담았지.'와 같이 그 순간을 다시 되새길 수 있었다. 만약 영화를 보지 않고 지나쳤다면 각 장면에 대한 인지가 없어서 쉽게 지나쳤을 듯 하다. 또한 같은 장면이라도 어떤 효과를 거치느냐에 따라 다양하게 표현되는 에칭 기법을 볼 수 있어 흥미로웠다.
여전히 이해되지 않는 장면들은 많다(영화를 초반부터 보지 않았기에 남아있을지 모르는 의문일 수도 있지만). 왜 기록자로 나오는 작가는 중간에 나무 위에 올라 있던 쿠거(Cougar)를 기록하고 사냥했을까. 마지막 마침내 늑대를 사냥한 다이아나는 의식을 치르듯 총을 내려 놓았지만, 정작 늑대의 가죽을 벗기는 이는 작가였을까. 신화 속 악티온이 사슴으로 변해 사냥 당해야만 했던 이유는 여신 다이아나의 목욕 장면을 보게 된 분명한 이유가 있었다면, 영화 속 늑대는 왜 그녀에게 쫓겨 사냥 당해야 했을까.
하지만 매튜 바니의 작품 감상은 이것으로 끝마치고 싶다. 구입한 티켓 코드를 통해 영화를 다시 볼 수 있는 기회도 있고 더 많은 검색으로 작가에 대해서 좀 더 공부할 수도 있지만, 솔직한 심정으로 영화 작품을 그냥 지나치지 않고 전시회를 끝까지 감상했다는 것만으로도 나 스스로에게 박수 쳐주고 싶다, 하하.
모든 예술 감상문은 해당 전시회 및 공연을 직접 관람한 후기로, 개인적인 감상 및 학습의 기록을 작성합니다.
해당 전시회 및 예술가와 작품에 대한 정확한 정보를 전달하고자 노력하고 있으며
촬영이 허용된 경우에 한하여 본인이 직접 촬영한 사진만을 사용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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