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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감상 모음집/예술

Victoria Miro <YAYOI KUSAMA> 전시회 후기

by kyeeunkim 2021. 6. 7.
Victoria Miro 

YAYOI KUSAMA: I Want Your Tears to Flow with the Words I Wrote

 

2021.06.05

  지난 토요일, 오랜만에 전시회를 다녀왔다. 팬데믹 이후 영국에서 여러 차례의 락다운을 겪으며 거의 1년 동안 문화 생활을 하지 못했다. 하지만 작년 말부터 부지런히 시작된 영국의 백신 접종 프로그램 덕분인지 최근 규제가 완화되고 갤러리들도 일제히 문을 열기 시작했다. 작년부터 계획되어 있었던 여러 전시회는 연기와 취소를 반복하며 새로 정비된 듯 하고 팬데믹 시기를 위한 새로운 관람 규칙들도 마련한 것 같다. 미술관이나 갤러리의 규모에 따라 규칙은 다르겠지만 대부분 사전 예약 서비스를 통해 시간 별로 한정된 인원의 관람객들만을 수용하는 듯 했다. 이번에 내가 간 Victoria Miro 갤러리도 관람비는 무료이지만 사전 예약 시스템을 통해 운영되고 있었다.

런던 Victoria Miro 갤러리

  이번에 런던 Victoria Miro 갤러리에서 개최된 전시는 Yayoi Kusama의 13번째 개인전이다. 이번 전시회에서는 야요이 쿠사마의 상징적인 ‘My Eternal Soul’ 시리즈와 청동 호박, 그리고 채색된 조각들을 특징으로 하는 새로운 작품들이 역동적인 설치와 함께 소개되었다.

  야요이 쿠사마(Yayoi Kusama)는 전 세계적으로 유명한 일본 예술가이다. 그녀는 1929년 일본 나가노에서 태어났고 1948년 교토 시립예술학교에 입학해 1952년 첫 개인전을 개최했다. 1957년에 미국 뉴욕으로 건너간 그녀는 다양한 예술가들과 교류하며 반전, 성 해방, 동성애, 인권 등의 다양한 정치 사회 문제에 앞장서는 예술 활동을 펼쳤다.
  그녀는 동일한 요소나 문양을 반복, 증식, 확산하는 작업 방식을 사용했는데, 그것은 그녀의 편집적 강박증과 그에 따른 환각 증세에서 자신을 해방시키는 유일한 수단이었다. 그녀는 나이 48세부터 현재까지 정신 병원에 입원한 상태로 병원에 쿠사마 스튜디오를 만들어 작품 활동을 이어가고 있다. 그녀에게는 예술이라는 것은 자신이 겪는 삶의 어려움과 세상에 대한 투쟁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무거운 주제에도 유머러스하고 강렬한 색채와 대담한 시각적 풍요로움을 보여주는 그녀의 작품들은 많은 관객들로부터 사랑받고 있다.

  자세한 기억은 나지 않지만 엄마를 따라 이리저리 전시회를 다니던 시절, 야요이 쿠사마의 호박을 본 것이 그녀의 작품을 만나게 된 첫 순간이었다. 여러 물방울 무늬가 찍힌 커다란 노란 호박. 이후 아트 페어나 갤러리 소장품 전시로 그녀의 작품들을 자주 볼 수 있었고, 특징이 뚜렷하여 인식하기 쉬웠던 것인지 그녀의 작품을 발견할 때마다 작가의 이름을 되내이다보니 저절로 기억을 하게 되었다. 한국에서 그녀의 단독 대형 전시회도 몇 번 개최되어 관람했고, 그녀의 호박들이 있다는 일본 나오시마 섬을 여행하기도 했다. 과거 마크 제이콥스가 이끄는 루이비통과의 콜라보레이션 컬랙션도 유명하듯이, 그녀의 작품 속에서 볼 수 있는 여러 모티브의 반복과 색감은 나에게도 좋은 예술적 영감이 되기도 했다. 그리고 무엇보다 그저 작품의 선명한 색감과 도형의 구성이 흥미로워 기회가 있을 때마다 그녀의 작품을 관람하곤 한다.

  락다운 이후 첫 문화 생활로 그녀의 전시회를 선택하게 된 것도 그런 마음이 아니었을까 싶다. 오랜만에 예술 작품을 보는 설레임과 그녀의 작품들에서 느낄 수 있는 흥미로움. 잘 알고 있는 작가인만큼 새롭게 공부하여 그 의미를 엄청나게 탐구하지 않아도 되는, 문화 생활의 가벼운 스타트로 좋을 것 같았다.

전시의 시작이 되었던 갤러리 2층 공간

  다양한 형태로 표현된 점이 찍힌 호박은 1940년대부터 야요이 쿠사마의 예술에서 반복되는 모티브이다. 그녀에게 호박은 어린 시절부터의 큰 위로였다. 작가의 가족은 마츠모토에서 식물 종자를 재배했고, 그녀는 호박으로부터 삶의 기쁨과 겸손함, 재미를 발견하였다. 그녀는 지금까지도 그리고 앞으로도 그녀의 예술에서 호박을 기념할 것이라 말한다.
  이번 전시회에도 새로운 호박 그림과 조각이 전시되어 있다. 다양한 크기, 색상 및 매체를 통해 탐색된 호박은 그녀의 도상학에서 특별한 위치를 가진다. 

  전시의 시작부터 공간 가운데에 위치하고 있던 그녀의 호박. 야요이 쿠사마를 모르는 사람이라도 그녀의 호박은 한 번쯤은 보지 않았을까 싶을 정도로 호박 작품은 그녀에게 대표작이자 대표적인 이미지라고 생각한다. 이번 전시회의 호박은 청동을 이용한 것으로 색상은 비교적 잘 알려진 빨간 호박, 노란 호박보다 차분한 느낌이었다. 이 호박들은 2021년도가 적힌 최신작이었는데 아마 최근에 그녀는 호박을 비교적 차분하고 중후한 소재와 색감으로 표현하고 싶었던 것이 아닐까 생각해본다.

  다음은 흥미로운 작품이었던 'Phantom Polka Dots of Fate, Ordained by Heacen, Were the Greatest Gift Ever for Me'(우측 사진). 스텝의 안내에 따라 한 팀씩 따로 마련된 공간에 들어가면, 작은 방에 이 작품 하나가 어둠 속에 밝게 빛나고 있는데 5각 기둥 속에 촉수와 같은 형태가 위치해 있다. 5면 중 3면은 내면은 거울로 안쪽의 촉수 기둥들과 패턴의 벽들을 무한으로 반사시키고 있었고, 외면은 안쪽을 볼 수 있는 유리가 되어 관람객으로 하여금 작품이 만들어내는 무한한 공간의 확장과 도형의 반복을 경험할 수 있게 되어 있었다. 그녀가 바라보고 경험하는 세상에 대한 시각을 느낄 수 있었다고 할까. 바라보는 각도에 따라 끝없는 어둠이 보이기도 하고 노란색 물방울 무늬가 계속 확장되는 공간이 보이기도 하면서 한순간 이 작품의 공간 속으로 빠지는 듯한 기분을 느꼈다.

  이외에도 호박 회화 작품과 조각 작품들이 전시되어 있었고, 특히나 분홍빛을 띈 조각 작품 'I Who Was Awestruck at the Shape of the Secret I Found in the Cosmos'은 처음 보는 것이기도 해서 흥미로웠다.

1층 전시 공간의 회화 작품들과 조각 작품들

  ‘My Eternal Soul’ 회화들은 2009년부터 시작된 야요이 쿠사마 작가의 유명하고 지속적인 시리즈로서 이번 전시회에 소개된 것은 최신 작품들이다. 이 작품들은 대담하고 강렬하게 상세하며 보기 드문 활력을 전달한다. 또한 작품 모두 활기차게 즉흥적이며 유동적이고 본능적인 특징을 보여준다.
  그 외 회화와 함께 새로운 ‘Soft Sculptures’의 시리즈가 함께 전시되어 있다. 그들은 1960년대 초부터 작가의 작품 핵심 교리가 되었고 10년동안 많은 유명 사례들을 선점하고 이후 많은 다른 사람들에게 영감을 주었다.

  갤러리 1층은 엄청나게 화려한 색감으로 가득차 있었다. 세 벽면을 채울만큼 가득한 회화 작품들 'My Eternal Soul' 시리즈들은 크기도 크기지만 각각의 캔버스를 채운 색감의 매우 다양해서 야요이 쿠사마의 예술 속 색감과 형태에 압도되는 느낌이었다.

  일본의 시인이자 비평가 및 큐레이터인 아키라 타테하타(Akira Tatehata)는 'My Eternal Soul'의 여러 특징 중 하나는 색상의 화려함이라 말했다. 이 전시의 모든 회화는 컬러리스트로서의 타고난 작가의 재능을 보여주며 단색화에서조차 모든 톤이 밝고 선명하다고 했다. 또한 'My Eternal Soul' 회화들은 예술 제작에 대한 본능적 접근 뿐만 아니라, 초현실적이고 유머러스함을 포함한 그녀의 예술을 특징한다.

  정말 그녀의 색상에 대한 감각은 대담하고 선명하다. 하지만 신기하게도 단순하면서도 반복되는 도형의 반복 속 여러 색상의 조합은 어지러움이나 착시를 일으키지 않고 그 작품 자체를 또렷하게 인지하게 만든다. 이러한 특징이 지금까지 내가 야요이 쿠사마의 작품을 볼 때 그녀 삶의 배경이나 환경보다도 그녀의 예술 그 자체만을 먼저 느낄 수 있었던 이유였던 것 같다. 만약 그녀의 작품 속 색감과 형태들의 반복이 언제나 그녀의 편집적 강박증과 환각 증세를 연상하게 했다면 아마도 나는 불편함을 느끼고 그녀의 작품을 자주 찾지 않았을 것 같다. 그저 여러 색생과 도형의 배치 속에서 어떤 것이 가장 내 마음에 드는지 선택하고, 흥미로운 패턴의 반복을 찾고, 회화 속에 보이는 표정들을 따라하고 무슨 의미인지를 탐구할 수 있으니 즐거운 마음으로 그녀의 예술 세계를 들여다보게 되는 거겠지.

My Eternal Soul 회화 작품과 Soft Sculpture 조각품들

“1961년 경부터 저의 예술에 새로운 것이 나타났습니다. 그것은 ‘Soft Sculpture’로 알려졌습니다.

내가 그리는 그물들은 캔버스 너머로 테이블, 바닥, 의자, 그리고 벽을 덮을 때까지 번져나갔습니다.”

Yayoi kusama

 

  이전과 다를 바 없는 마음으로 찾은 그녀의 전시회는 이전과 다르지 않게 나에게 예술에 대한 생기를 되찾게 해주었다. 내가 예술을 사랑하는 이유도, 예술을 그리워 한 이유도 무엇인가를 배우고 느껴야만 하는 부담이나 그것을 재해석하여 나만의 무엇인가를 만들어 내기 위한 의지 때문도 아니었다. 그저 예술을 보니 좋았고, 의미를 탐구하는게 좋았다. 함께한 사람이 있으면 그 사람과 생각과 이야기를 나누는 그 순간이 좋았고, 조금 더 공부하니 작가과 작품이 이야기를 들을 수 있어 좋았다. 물론, 어느 것 하나 못 느끼고 작가가 하는 말이 무엇인지 전혀 못 알아들어도 그저 내가 보고 기분 좋으면 좋았다. 비록 박학다식한 전문가는 못 되고, 작품에 대한 통찰력 있는 평가나 감상을 내놓는 평론가도 못 되겠지만, 나 좋으면 좋은 것, 나에겐 그것이 예술이다.

 

 


모든 예술 감상문은 해당 전시회 및 공연을 직접 관람한 후기로, 개인적인 감상 및 학습의 기록을 작성합니다.

해당 전시회 및 예술가와 작품에 대한 정확한 정보를 전달하고자 노력하고 있으며

촬영이 허용된 경우에 한하여 본인이 직접 촬영한 사진만을 사용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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