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ndon Mithraeum Bloomberg SPACE
Do Ho Suh: Proposal for Sach'ŏwang-sa
2021.09.07
어느 날 아침에 눈을 뜨고 잠깐의 휴대폰 타임을 가지며 인스타그램에 올라오는 수십개의 피드를 넘기는 중 아주 작은 전시회에 대한 정보를 발견했다. 런던 Bloomberg SPACE라는 곳에서 한국 작가 서도호가 새로운 작품을 공개했다는 소식이었다. 서도호 작가의 작품을 좋아하는 나는 정보를 발견하자마자 조던이에게도 "내가 좋아하는 한국 작가인데 런던에서 새로운 작품을 전시한대!"라고 알려주었다. 전시장은 알고보니 런던의 로마 유적을 보존하고 있는 London Mithraeum의 작은 공간이었고, 그 점에 역사 덕후 조던이의 흥미도 더욱 증가했다. 관람을 위해서 사전에 티켓을 예약해야 했지만, 입장료는 따로 없는 무료 전시였다.
서도호는 한국인 조각가이자 설치 예술가이다. 1962년에 대한민국 서울에서 태어난 그는 서울대학교 동양학과에서 학사와 석사를 취득한 후, Rhode Island School of Design에서 회화를 공부했다. 1990년대 후반부터 뉴욕 예술계에서 자리를 잡기 시작한 그는 1997년 Yale University에서 조각으로 석사를 마쳤다. 서도호의 아버지인 서세호 또한 유명한 화가로 1960년대 당시 서양에서 일어나고 있던 추상 미술 운동의 이미지와 개념을 전통적인 수묵화와 결합하는 등 한국 예술 운동을 주도하기도 했다. 서도호는 오랜 시간 아버지와 비교되지 않을 수 없었을 것이다. 그렇기에 그는 미국으로 이주 후 그는 아버지와의 연결고리를 끊고 독립적인 예술가가 되기 위해 노력했다.
서도호의 작업은 건축, 공간, 정체성에 중점을 둔다. 그는 공간과 집의 개념을 탐구하는 작업을 원단, 영화, 드로잉, 조각 등 다양한 매체로 표현한다. 작가는 자신이 살았던 집과 만났던 사람들의 다양성을 포함하여 자신의 삶의 경험을 전달한다. 사람이 살고 있는 공간은 심리적인 에너지를 담고 있기도 하고, 지리적 위치와는 상관 없이 기억, 개인적 경험, 안정감을 담고 있는데, 그의 작품은 그것을 가시화 한다. 2013년 월스트리트 저널에서 올해의 예술 혁신가로 꼽히기도 했고, 2001년 베니스 비엔날레에서는 한국을 대표하기도 했다. 현재 그는 런던, 뉴욕, 서울에 라이브 스튜디오를 운영하며 작업을 이어가고 있다.
서도호 작가는 예전부터 이미 알고 있던 작가였다. 특히 서울 리움 미술관에서 그의 개인전이 진행되었던 것을 기억한다. 20대 초중반 내가 서울에 살 때, 종종 엄마가 서울로 올라오시면 함께 전시회 및 갤러리를 다니는 것이 대부분의 일정이었던 만큼 그의 한국 개인전도 놓치지 않고 봤었다.
패션을 공부하는 나에게 그의 작품은 엄청 인상적이었다. 원단으로는 옷이나 소품을 만드는 것 밖에 몰랐던 나에게 여러 겹의 레이어가 비치는 천으로 지어진 그의 집들은 너무나도 멋있었다. 게다가 세밀하고 표현된 모든 디테일들도. 이후로 런던에 와서 Victoria Miro에서의 그의 개인전도 관람했고 Sculpture in the City의 프로젝트로 런던 도심의 다리에 뚝 떨어진 집 작품을 보기 위해 굳이 길을 돌아 돌아 작품을 찾기도 했다.
<Proposal for Sach'ŏwang-sa>는 서기 670년 경(신라시대)에 지어진 한국의 고대 사원을 시적으로 재해석한 작품이다. 작가 서도호는 로마의 미트라 신전과 한국의 고대 사천왕사 사이의 공명에서 영감을 받았다. 작품이 전시된 London Mithraeum이 Mithras 숭배와 관련된 관습과 상징을 탐구하는 것처럼 <Proposal for Sach'ŏwang-sa>는 관객이 고대 한국의 불가사의한 고고학 유적지의 건축, 목적 및 의미를 생각하게 한다. 현존하는 단일 기록에 따르면, 사천왕사는 중국 당나라의 침략으로부터 한국을 보호하는 의식을 기원하는 장소를 제공하고자 오래된 도시 경주에 건립된 것이다. 한국 밀교의 가장 초기 유적지 중 하나인 이 사원은 ‘화려한 비단’, ‘색색의 천’으로 만들어졌다고 한다. 현재는 일련의 불가사의한 석초 기초만이 유적지로 남아있다. 작품에는 이와 같은 사천왕사에 대한 면밀한 분석과 성소가 형성되고 결속되는 수단에 대한 탐구가 결합되었다.
이번 작품은 정보를 얻게 된 인스타그램 피드 속 사진에서도 알 수 있었지만, 작가의 작품 스타일과 특징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새로운 형태라 흥미로웠다. 건축 및 구조적인 특징을 가진 형태는 그의 다른 작품에서도 볼 수 있지만, 원단 이외의 다양한 재료들을 이용한 작품은 처음이라 새로웠다(집 형태를 그대로 만드는 작품들 제외, 원단으로 집 형태를 표현해낸 작품들과 비교했을 때).
동양적인 분위기가 나타나는 이 작품이 무엇일까 궁금했는데, 신라 시대에 비단으로 지어졌던 사천왕사를 표현한 것이라 한다. 경주는 내가 한국에 살면서 수도 없이 갔던 도시임에도 불구하고(이번에 한국에 갔을 때도 두어번 갔음) 여전히 모르는 유적지가 있다니 새삼 놀라웠다. 프로젝트를 진행하는 과정을 촬영한 영상도 작품 옆에 함께 상영되고 있었는데, 그 영상을 보니 작품의 영감을 이해하기 쉬웠다. 특히 마지막 부분에 작품 도식화를 랜더링하는 부분이 있는데, 작품 각각의 부분의 의미와 그 이미지들이 작품에 어떻게 표현되었는지 한 눈에 알 수 있어 좋았다. 또한 런던 미트래움 블룸버그 스페이스에서 왜 이 프로젝트를 제안했는지, 서양과 동양의 대조적이면서도 연결되는 그 의미가 인상적이었다. 작가 서도호 또한 "로마 사원 위에 한국 사원을 제시하는 아이디어에 끌렸다. 동양과 서양은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것보다 고대에 더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었고, 그 경계를 깨고 도전하는 것이 흥미롭다."라고 말하기도 했다.
London Mithraeum
서도호 작가의 작품과 영상을 본 후에는 자연스럽게 런던 미트래움으로 넘어갔다. 아마 조던이는 이 부분을 더 기다렸을지도? 런던 도심에 위치한 로마 유적은 지하 깊숙히 위치해 있었고, 계단을 따라 아래층으로 내려가기 전 입구에서부터 보이는 여러 유물들을 꼼꼼하게 구경했다.
London Mithraeum(런던 미트래움)
Walbrook의 미트라 신전으로도 알려진 London Mithraeum(런던 미트래움)은 1954년 건물 건설 중 런던 박물관 관장인 W.F.Grimes와 Audrey Williams에 의해 발굴되었다. 신비의 신 Mithras의 사원은 20세기에서 가장 유명한 런던 내 로마 유적의 발견이다. 이 곳은 3세기 중반에 지어졌으며 Mithras 혹은 로마 군인들 사이에서 인기가 많았던 여러 신들에게 공동으로 봉헌되었다. 이후 4세기 초 Bacchus에게 재헌납 되었고, 재봉헌 당시 사원 내에는 여러 유물들이 함께 묻혔다. 발굴 중 회수된 모든 유물은 런던 박물관에 전시되었다.
아래층에는 런던 미트래움에 대한 설명 및 발굴 과정을 알려주는 전시 공간이 있었다. 아무래도 단일 유적지이다 보니 다른 역사 박물관처럼 엄청난 전시 내용이 있는 것은 아니었지만, 런던 Bank역, 특히 많은 사람들이 양복을 입고 바쁘게 돌아다니는 도심 지하에 엄청 오래된 유적지가 있다고 상상하니 기분이 새로웠다. 다른 사람들이 바쁜 일상을 살아가는 와중에 혼자 시간 여행하는 기분이랄까?
유적지는 대략 30분 간격으로 입장/관람하는 시스템이었다. 전시장의 설명을 천천히 다 읽고 대기석에 앉아 기다리다 다음 관람 시간에 따라 입장했다. 어둠이 가득한 공간 깊숙히 들어가 유적지를 정면으로 바라보는 곳에 자리잡고 있으니 과거 이 유적지에 대한 배경이나 이야기에 대한 음성 설명과 함께 불이 켜졌다. 5분 정도의 음성 설명 이후에는 자유롭게 유적지 주변을 돌아다니며 관람을 할 수 있었다.
영어로 솰라솰라하는 음성 설명에는 주의를 기울이지도 않았을 뿐더러(...) 100% 이해하지도 못해서 넘겼지만, 이후 주어진 자유 관람 시간에는 유적지의 주변을 따라 크게 한바퀴를 돌면서 부분 부분을 관찰했다. 인위적으로 만든 것이 아니고 정말 고대 로마 시대에 존재했던 곳이라니 살짝 비현실적인 기분이 들었다. 조던과도 한참 동안 유적지에 대해 대화를 나누다 관람을 마치고 나왔다.
한국 작가의 작품과 고대 로마 시대의 유적지를 한 장소에서 볼 수 있다니 새로웠다. 전시장을 나오기 전에 다시 한 번 작품의 의미와 이 공간에 보존된 오랜 역사의 시간을 다시 한번 되새겼다. 무엇보다 좋아하는 한국 작가의 작품을 오랜만에 볼 수 있어 좋았다. 런던에 있는 동안 또 한번 서도호 작가의 전시를 볼 수 있는 기회가 생기기를 바란다.
모든 예술 감상문은 해당 전시회 및 공연을 직접 관람한 후기로, 개인적인 감상 및 학습의 기록을 작성합니다.
해당 전시회 및 예술가와 작품에 대한 정확한 정보를 전달하고자 노력하고 있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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