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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감상 모음집/예술

Lisson Gallery <Marina Abramović: Seven Deaths> 전시회 후기

by kyeeunkim 2021. 10. 21.
Lisson Gallery (Cock Street)

Marina Abramović: Seven Deaths

 

2021.10.16 

  한동안 전시를 보지 못했던 나는 리스트에서 나름 우선 순위로 꼽았던 전시가 끝나기 직전이 되자 마음이 급해졌다. 주말 스쿼시를 마치고 외출 준비를 끝냈을 땐 늦은 오후였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더이상 미룰 수 없었기에 우리는 얼른 갤러리로 향했다. Lisson Gallery는 런던에 세 개의 지점을 가지고 있고, 마리나 아브라모비치 전시는 두 군데에서 진행 중이었지만 그 두 갤러리의 위치가 매우 달라서 결국 날짜가 급한 것부터 선택하게 되었다(두 전시 동시에 보고 싶었는데..!).

갤러리가 닫힌 줄 알고 한참이나 입구에서 서성였다😂

  나와 조던이가 방문한 곳은 Cock Street에 있는 지점으로 그녀의 조각 작품들을 볼 수 있었다. 구글 지도를 따라 위치를 찾았는데, 갤러리 입구가 온통 이미지로 덮여 있어서 당황했었다. 대부분의 갤러리들은 내부가 보이게 구성하기 때문에 다른 입구가 있는 것인가, 닫힌 것인가 한참이나 서성였다. 하지만 가까이 다가가면 열리는 자동문이었다는ㅋㅋㅋ

  마리나 아브라모비치(Marina Abramobić)는 세르비아 출신의 개념 및 퍼포먼스 예술가이다. 그녀는 1946년 세르비아 Beograde(당시 유고슬라비아)에서 세르비아 그리스도 정교회의 대주교였던 할아버지, 제 2차 세계대전에서 파르티잔으로 활동했던 부모님 아래에서 태어났다. 6살까지 조부모 집에서 자랐던 그녀는 남동생이 태어나면서 부모님과 함께 살았지만, 사이가 좋지 않았던 부모님, 엄격했던 군대식 규율 등으로 그 생활이 좋지 않았다고 한다.
  아브라모비치는 1965년부터 1972년까지 Beograde와 Zagreb(크로아티아)의 Academy of Fine Arts에서 공부했다. 1973년 세르비아로 돌아온 그녀는 Novi Sad의 예술 학교에서 학생들을 가르치며 첫 솔로 공연을 열었다. 여러 작품을 이어가던 그녀는 1976년 세르비아를 떠나 암스테르담으로 이주했다. 아브라모비치는 그 곳에서 울라이(Ulay)라는 이름으로 알려진 서독의 퍼포먼스 예술가 우베 라이지펜(Uwe Laysiepen)을 만났고 그들은 함께 살며 작업했다. 그들이 작품을 통해 탐구했던 주요 개념은 자아와 예술적 정체성이었다. 아브라모비치와 울라이의 공동 퍼포먼스 작품은 알려진 것이 많은데, 대표적으로 <Breathing In/Breathing Out(1977-78)>, <Imponderabilia(1977)>, <Rest Energy(1980)> 등이 있다. 그들은 각자 만리장썽의 양 끝에서 출발해 중앙에서 만나 관계를 마무리 짓는 <Lovers(1988)>로 이별 또한 예술로 해소했다. 이후 2010년에 New York MoMA에서 있었던 회고전에서 <Artist Is Present> 공연 중 아브라모비치가 울라이와 재회하는 모습은 화제가 되기도 했다.
  울라이와 관계를 끝맺은 이후 그녀는 자신의 삶에 초점을 맞춘 연극적인 퍼포먼스를 선보이며  <Cleaning the Mirror(1995)>, <Balkan Baroque(1997)> 등과 같은 작품 활동을 이어간다. 또한 1990년부터 2000년대 초까지 아브라모비치는 Paris, Berlin, Hamburg, Braunschweig의 예술 대학에서 학생들을 가르치기도 했다. 그녀는 예술 분야 뿐만 아니라 책, 영화, 협업 등 다양한 활동을 이어간다. 2007년에는 그녀는 공연 예술을 위한 비영리 재단인 Marina Abramović Institute(MAI)를 설립하기도 한다.

  그녀의 작업은 바디 아트, 지구력 예술, 공연자와 관객의 관계, 신체의 한계 및 마음의 가능성을 탐구한다. 고통, 피, 신체의 물리적 한계에 맞서는 것을 중점으로 관객의 참여를 통한 새로운 정체성 개념을 개척했다. 또한 그녀는 다양한 문화적 체험에 대한 욕구가 강했던 여행가로서, 여행에서 알게 된 의례와 상징주의의 결합은 작품의 중요한 요소가 되었다.
50년 넘게 끊임 없이 활동을 이어가고 있는 그녀는 스스로를 “공연 예술의 할머니”라고 부른다. 

전시장 전경

  마리나 아브라모비치는 예전부터 그녀의 작품을 접하면서 알고 있던 작가였다. 아무래도 세계적으로 유명한 퍼포먼스 예술가이다 보니, 예술 공부를 하고 관련 자료들을 찾다보면 알 수 밖에 없는 작가인데다 그녀의 여러 작품들이 영상이나 짤로 인터넷에 떠돌기도 해서 쉽게 접할 수도 있다(최근에 인스타그램 피드 속에서 또 봤었지..). 지금까지는 그녀의 작품이나 전시를 직접 볼 기회가 없었지만, 이번에 이렇게 작은 갤러리에서라도 기회가 있으니 꼭 보고 싶었다.

  이번 전시회는 마리나 아브라모비치가 제작한 영상 작품 <Seven Deaths>와 관련된 설화 석고 조각품들을 선보이고 있었다. 처음에는 제목만 보고 전시의 내용을 추측해서 어느 일곱 개의 죽음에 대해 이야기하나 보다, 라고 생각했는데 알고보니 이 전시의 조각들은 여러 형태의 작품들이 연결된 큰 프로젝트의 일부였다.

  마리나 아브라모비치는 유명한 오페라 가수 마리아 칼라스(Maria Callas, 1923-1977)에 대한 자신의 열정과 공감의 절정을 표현한 작품들을 선보인다. 그녀는 마리아 칼라스의 감동적인 아리아 7곡을 바탕으로 각 오페라 작품 속 주인공들의 비극적 결말에 새로운 해석과 반전을 더해 영상 작품 <Seven Deaths>를 제작했다.
  또한 그 영상 작품과 관련된 7개의 설화 석고(alabaster) 조각품을 만들었다. 이 조각품은 작가 자신, 마리아 칼라스, 각 오페라의 작품 속 주인공 등 서로 다른 인물에 깃든 예술가의 자화상이다. 각각의 비극적인 죽음은 복잡한 공법을 거쳐 설화 석고 조각에 미묘하게 표현되는데, 자세히 관찰하면 추상적인 봉우리와 골짜기로 그 이미지가 분해되는 것처럼 보인다. 또한 조각 내부에는 빛을 채워 사실적인 생생함을 전달한다. 작가는 여러 시도 끝에 견고함과 투명함을 가진 설화 석고를 최종적으로 사용했다. 설화 석고가 내부의 빛을 유지하면서 빛에 의해 비쳐질 수 있기 때문이다.
  영상이 스크린을 통해 실사 오페라와 합쳐지는 것처럼 조각품도 작품 속 7개의 죽음의 일부가 되고, 이 모든 것은 영상, 석고, 공연, 노래를 아우르는 종합 예술 작품이 된다. Lisson Gallery에서 이루어지는 두 전시는 아브라모비치의 라이브 액션 오페라인 <7 Deaths of Maria Callas> 투어와 함께한다.

&amp;lt;The Snake&amp;gt;, 단일한 이미지 같지만 자세히 보면 깊이가 다른 조각이다

  그저 단일한 작품인줄 알았던 나로서는 영상(다른 Lisson Gallery 전시회에서 전시 중), 조각, 오페라가 모두 연결된 것을 알았을 때는 놀라웠다. 게다가 그 소재가 된 죽음이 오페라 가수 마리아 칼라스와 관련된 것이라니. 중고등학생 때 엄마와 함께 마리아 칼라스 음반을 구입해 줄기차게 듣던 시기가 떠오르며 조각으로 표현된 이미지도 달리 보였다.

  또한 갤러리에서 작품을 직접 보기 전까지는 그저 빛이 비칠 수 있는 소재에 이미지를 프린트한 형태의 조각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직접 작품을 보니 명암에 따라 세밀하게 깊이가 달리 조각되어 이미지를 형성하고 있는 것이었다. 정면으로 전체 이미지를 본 후 여러 방향에서 그 조각의 형태를 관찰하면 전체적인 이미지가 무너지면서 전혀 다른 인상을 받게 되는 점이 매우 흥미로웠다.

<The Leap>
<The Breath>, <The Knife> and <The Fire>

  각각의 석고상은 마리아 칼라스가 연기하기도 했던 일곱 개의 오페라 작품 속 주인공들의 죽음을 재구성한 영상 작품의 이미지들을 보여준다. 제목과 이미지의 대입으로 대략적인 내용을 유추할 수도 있지만(실제 작품을 감상할 때는 그 정도였다), 좀 더 자세한 내용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오페라 <7 Deaths of Maria Callas>에 대해서도 알아야만 했다.

<7 Deaths of Maria Callas(마리아 칼라스의 일곱 죽음)>
  2020년 9월 1일 Munich Bayerische Staatsoper(뮌헨 바이에른 국립 오페라 극장)에서 초연된 작품으로, 마리나 아브라모비치의 첫 오페라 연출작이자 창작, 무대 장치, 연기까지 그녀가 맡았다. 작품은 일곱 개의 오페라 작품에서 마리아 칼라스가 연기한 죽음을 재구성했다. 아브라모비치는 칼라스의 모든 자서전, 사료, 음원, 영상들을 검토했고, 자신과 그녀 사이의 동질감, 공통점, 공감을 느끼며 작품을 구상했다.

첫번째 죽음 : 결핵으로 죽어가는 <La Traviata(라 트라비아타)>의 '비올레타'
두번째 죽음 : 허공으로 몸을 던지는 <Tosca(토스카)>의 '토스카'
세번째 죽음 : 목에 졸려 죽음을 맞는 <Otello(오텔로)>의 '데스데모나'
네번째 죽음 : <Madam Butterfly(나비부인)>에서 자살하는 '초초상'
다섯번째 죽음 : <Carmen(카르멘)>의 여주인공 '카르멘'
여섯번째 죽음 : 광란 끝에 죽어가는 <Lucia di Lammermoor(람메르무어의 루치아)>의 '루치아'
일곱번째 죽음 : <Norma(노르마)> 속 화염으로 들어가는 '노르마'
여덟번째 죽음 : '마리아 칼라스'의 죽음

  제목과 달리 아브라모비치는 작품에 여덟번째 죽음을 삽입했는데, 바로 마리아 칼라스의 죽음이다. 이렇게 구성된 작품은 칼라스가 작품 안팍에서 겪은 여러 사랑에 관한 현재적 의미를 관객에게 묻는다. 의상 제작에는 버버리 수석 크리에이티브 디렉터 리카르도 티시(Riccardo Tisci)가 참여했다. 무대 속 캐릭터마다 연기하는 소프라노가 바뀌는데, 뮌헨과 파리 공연에서는 한국인 소프라노 박혜상이 비올레타 역으로 오르기도 했다. 
  오페라 공연은 뮌헨 바이에른 국립 오페라 극장에서 2020년 초연 후, Paris Palais Garnier(파리 국립 오페라 극장, 2021년 9월), Athens Greek National Opera(아테네 그리스 국립 오페라 하우스, 2021년 9월), Berlin Deutsche Oper(베를린 오페라 하우스, 2022년 4월), Napoli Teatro di San Carlo(나폴리 산 카를로 극장, 2022년 5월)에서 이어 열린다.

&amp;lt;The Fire&amp;gt;

"Callas was my inspiration.  I felt such a powerful identification with her.

Like me, she was a Sagittarius; like me, she had a terrible mother. We bore a physical similarity to each other.

And though I had survived heartbreak, she died from a broken heart.

In most operas, at the end, the heroine dies from love."

Marina Abramović

&amp;lt;The Breath&amp;gt;, &amp;lt;The Knife&amp;gt;

  10대 때 한창 오페라나 오케스트라와 같은 클래식 음악에 빠졌던 터라, 일곱 개의 죽음을 담은 위의 오페라들 중 몇몇은 공연으로 본 적이 있다(심지어 컬렉션으로 모으겠다고 DVD를 엄청 샀었다). 아브라모비치의 작품은 전통적인 오페라 장면을 그대로 묘사한 것이 아닌 새롭게 재해석, 재구성한 것이기에 각각의 죽음과 작품을 맞춰보는 것도 나름 흥미로운 감상 포인트였다.

  7개의 작품만이 있는 작은 규모의 전시였지만 한동안 작품 하나하나를 꼼꼼하게 살피며 시간을 보냈다. 또한 조던이에게 작가에 대한 설명도 해주면서 작품에 대한 의견을 나누는 것도 즐거웠다.

&amp;lt;The Mirror&amp;gt;, &amp;lt;The Poison&amp;gt;

  이번 전시를 보았더니 다른 지점의 Lisson Gallery에서 진행되고 있는 영상 전시도 더욱 궁금해지고 심지어는 오페라 공연도 보고 싶다. 오페라 공연이 영국까지 투어를 올지는 알 수 없지만, 다른 공연들도 유럽 내에서 이루어지고 있으니 사실 일정만 조정할 수 있다면 충분히 가능성이 있기도 하다. 물론 코로나 상황 때문에 예전보다는 어렵겠지만 상황이 조금만 더 긍정적으로 변한다면 조던이랑 여행 겸 슝 날아가고 싶다. 우선 가장 빠르게 해결할 수 있는 영상 전시부터 곧 보러 가야겠다.

&amp;lt;The Mirror&amp;gt;

  마리나 아브라모비치에 대해서는 공부하고 싶은 것도 기록하고 싶은 것도 여전히 많지만, 전시회 감상인만큼 이번에는 이 정도로 기록을 끝마칠까 한다. 사실 작년부터 영국 Royal Academy of Arts에서 아브라모비치의 전시회가 열릴 예정이었지만, 팬데믹 상황으로 2023년으로 연기되었다. 소식을 들었을 때부터 전시회를 엄청 기다려 왔는데(더군다나 당시에는 2020년 후반까지 영국에 머물 수 있는지 알 수 없던 상황이라 '과연 마지막으로 보고 떠날 수 있을까.'라는 생각에 더욱 극적인 마음이었다) 연기되다니 너무 아쉽다. 하지만 언제가 되든 꼭 그녀의 전시회를 다시 한번 직접 보고 감상을 남길 수 있는 날을 기대한다(곧 볼 영상 전시 제외!ㅎㅎ).

 

 


모든 예술 감상문은 해당 전시회 및 공연을 직접 관람한 후기로, 개인적인 감상 및 학습의 기록을 작성합니다.

해당 전시회 및 예술가와 작품에 대한 정확한 정보를 전달하고자 노력하고 있으며

촬영이 허용된 경우에 한하여 본인이 직접 촬영한 사진만을 사용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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