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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감상 모음집/예술

Thaddaeus Ropac <Please Touch> 전시회 후기

by kyeeunkim 2021. 11. 4.
Thaddaeus Ropac

Please Touch: Marcel Duchamp and The Fetish

 

2021.10.16 

  Thaddaeus Ropac 갤러리에는 두 가지의 전시를 하고 있었다. 감상 후기를 진즉에 썼으나, 티스토리 블로그 규정으로 현재 규제를 받은 Ron Mueck(2021년 11월 3일 현재 문의 중, 답변을 받은 후 수정할 계획)의 전시와 Marcel Duchamp의 전시였다. 론 뮤익의 전시는 내가 기대한 것이기도 했지만 규모도 상당히 커서 볼거리가 많았는데, 마르셸 뒤샹의 전시는 작은 방 공간을 채우는 정도의 규모였다.

  마르셸 뒤샹(Marcel Duchamp)은 미의 개념을 새롭게 정의한 프랑스의 혁명적인 미술가이다. 그는 1887년 프랑스 Normandie에서 태어났다. 예술가 가족을 둔 그는 1904~05년에 Académie Julian에서 학문적 훈련을 받았지만 학문적 연구보다 캐리커처를 그리거나 자신의 지성을 시험하는 게임을 하며 시간 보내기를 좋아했다.

  뒤샹은 젊은 시절 오딜롱 르동(Odilon Redon)과 같은 상징주의 화가들의 그림을 좋아했다. 뿐만 아니라 후기 인상파, 입체파, 야수파의 미술도 그의 초기 작품에 많은 영향을 끼쳤다. 그는 동음이의어와 같은 말장난을 좋아해 자신의 작품에 익살적인 요소들을 첨가하기도 했다. 
  1911년 뒤샹은 퓌토(Puteaux) 그룹에 가입해 활동하는데, 이 그룹에는 프란시스 피카비아(Francis Picabia), 로베르 들로네(Robert Delaunay), 후안 그리스(Juan Gris) 등과 같은 ‘오르픽 입체주의(Orphic Cubism)’가 참여하고 있었다. 그도 잠시 동안 입체주의 양식의 작업을 했지만, 이 운동에 전념한 것은 아니었다. 또한 뒤샹은 그룹 내 사람들과 불화를 겪기도 했는데, 왜냐하면 그들이 그가 그린 <Nude Descending a Staircase 2(1912)>에 대해 혹평을 했기 때문이다. 뒤샹은 이 작품을 Cubist Salon des Indépendants, 뉴욕의 Armory Show에 출품했지만 긍정적인 평가를 받지 못했고, 기존 예술의 폐쇄성에 대해 실망한다.
  이같은 기존 예술의 규칙에 신물이 난 뒤샹은 ‘레디메이드(Ready-made)’를 고안해 미술 작품의 전통적인 제작 방식을 뒤엎었다. 막스 슈티르너(Max Stirner)의 <유일자와 그의 소유(Der Einzige und sein Eigentum)(1845)>을 읽고 깊은 감명을 받은 그는 예술가가 의지만 가지고 있다면 진부하거나 대량생산된 물건들도 얼마든지 예술 작품이 될 수 있다고 생각했다. 관습적인 미의 기준을 무시하고 미술 작품과 일상용품의 경계를 허물었던 뒤샹의 첫 레디메이드 작품이 <Bicycle Wheel(1913)>이다. 그리고 가장 유명하면서 공개 당시 센세이션을 일으켰던, 남성 소변기를 사용한 작품 <Fountain(1917)>도 있다. 그는 기존의 예술적 개념과 완전히 분리된 창의적인 과정으로 예술 작품의 개념적 가치를 강조하며 미학적 호소에 의존하기보다 아이러니와 언어적 재치로 관객을 이끌었다.

  뒤샹은 대부분 프랑스와 미국을 오가며 생활했다. 1937년에 The Arts Club of Chicago에서 첫 개인전을 열었고, 1963년에는 The Pasadena Art Museum에서 첫 미국 회고전을, 1966년에는 London Tate Modern에서 유럽 전시회를 가졌다.
  1920년대에 그는 체스 게임에 빠져 세계적인 수준의 체스 국제 프로 선수로서 경력을 쌓기도 했다. 비록 작품 활동을 중단하기는 했으나 그는 예술 프로젝트와 전시회 큐레이팅과 같은 작업을 이어갔다. 또한 그는 자신의 정체성을 바꾸는 것에도 관심이 많았다. ‘로즈 셀라비(Rose/Rrose Selavy)’라는 가명을 짓고 생활하면서 비록 표면적이기는 하나 여성으로서 살아가는 것이 어떤지 경험하기도 했다.

  사실 뒤샹의 엄청 유명한 작품 <Fountain>이나 <Bicycle Wheel>은 현대 미술을 공부할 때 가장 먼저 접하는 것이기도 해서 익히 알고 있었지만, 이번 전시는 그런 유명한 작업들보다는 작가 뒤샹의 작업 속 찾을 수 있는 페티시(Fetish)에 대해 탐구하는 것이었다. 그는 에로티시즘(Eroticism)이 진정으로 전 세게에 널리 퍼져 있고 모두가 이해하는 것이며, 자신이 하는 모든 작업의 기초가 된다고 말하기도 했다. 그만큼 뒤샹이 20세기의 예술에서 자신만의 유일한 길을 찾을 때 페티시(Fetish)가 강력한 원리로 작용했음을 알 수 있다.

  뒤샹의 예술에 대한 인습 타파적인 접근 방식은 미술계에 엄청난 영향을 끼쳤다. 입체주의와 다다이즘, 초현실주의 뿐만 아니라 팝 아트, 개념 미술, 미니멀리즘에도 영감을 주었으며 나아가 다음 세대의 미술가들에게도 지속적으로 영향을 미쳤다. 그가 새로 정의한 미에 대한 새로운 개념으로 피에르 만초니(Piero Manzoni)의 <Artist's Shit(1961)>과 같은 배설물이 담긴 깡통이나, 데미안 허스트(Damien Hirst)의 <The Physical Impossibility of Death in the Mind of Someone Living(1991)>(1991)에 등장하는 상어까지도 예술 작품이 될 수 있었다. 무엇보다 그의 가장 큰 유산은 현상태를 초월하기 위해 기존 규범에 대한 끊임 없는 질문, 훈계, 비판, 장난스러운 조롱에 있다.

  아무래도 이 전시에서 가장 궁금했던 작품은 레오나르도 다 빈치(Leonardo da Vinci)의 <Mona Lisa> 이미지에 수염을 그려넣은 작품이었다. 이 작품은 1920년대 뒤샹이 여성으로서의 정체성을 위해 '로즈 셀라비'로 생활할 때의 이야기와도 연결된다. 뒤샹의 친구 만 레이(Man Ray)가 여장을 한 뒤샹, 로즈 셀라비의 사진을 찍었는데 그것을 본 다른 친구였던 작가 로베르 르벨(Robert Lebel)가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뒤샹이 모나리자의 얼굴에 남성의 상징인 수염을 그려 넣음으로써 자기만의 방식으로 레오나르도 다 빈치에게 경의를 표했다. 그와 같이 이 사진은 레오나르도의 방식으로 뒤샹의 타고난 양성성을 암시하는 것 같다." 이처럼 고정된 규칙이나 사고, 나뉘어진 것들의 경계를 무너뜨리기 위해 탐구하던 뒤샹의 특성이 드러나는 것이 아니었나 싶다. 

"I have forced myself to contradict myself in order to avoid conforming to my own taste."

 

  사실 이 전시는 엄청 집중해서 본 편은 아니었는데, 이후 '마르셸 뒤샹'이라는 예술가에 대해 더 자세히 공부하다 보니 정말 대단했음을 알 수 있었다. 그의 유명한 작품들을 접하며 이름을 알게 되었을 때도, 단순히 '아, 이 작가는 정말 특이한 사고 전환을 했구나. 이 덕분에 현대 예술이 이만큼 확장될 수 있었구나.'라고 생각하는 한편, '그럼 현대 미술이 이토록 이해하기 어려워진 것은 이 예술가 때문인가.'라는 생각에 현대 미술을 어려워하는 한 사람으로서 뒤샹에 대해 자세히 알고 싶지 않았다고나 할까. 그런데 다시 바라본 그는 대단한 혁명가였구나 싶다. 비록 나는 절대 따라할 수 없는 사고이지만, 이제는 그가 예술에 대해 끊임없이 고민하고 성찰했던 것에 감사함을 느낀다.

 

 


모든 예술 감상문은 해당 전시회 및 공연을 직접 관람한 후기로, 개인적인 감상 및 학습의 기록을 작성합니다.

해당 전시회 및 예술가와 작품에 대한 정확한 정보를 전달하고자 노력하고 있으며

촬영이 허용된 경우에 한하여 본인이 직접 촬영한 사진만을 사용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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