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addaeus Ropac
Ron Mueck: 25 Years Of Sculpture, 1996-2021
2021.10.16
이 전시는 지난번 조던이와 함께 간 전시들 중 가장 기대했던 것 중 하나이기도 하다. 관람 후기를 올렸던 마리나 아브라모비치의 'Seven Deaths'도 좋았지만, 이후에 Thaddaeus Ropac 갤러리로 향하는 마음이 조금 더 설레었던 것 같다. 사실 작가에 대해서는 몰랐지만, 전시 정보와 이미지를 보았을 때 꼭 직접 보고 싶었다.
론 뮤익(Ron Mueck)은 영국에서 활동하는 호주 출신의 극사실주의(하이퍼리얼리즘) 조각가이다. 그는 1958년 호주 Melbourne에서 인형극 및 인형 제작을 하는 독일인 부모 밑에서 태어났다. 뮤익은 정식 예술 수업을 받은 적은 없었고, 젊은 시절에는 호주 어린이 TV 프로그램에서 인형 제작자로 일을 하다 미국으로 건너가 영화와 광고 분야에서 일했다. 그러다 짐 핸슨(Jim Henson) 감독이 만드는 TV 제작팀에서 일하기 위해 영국으로 왔고, 그 시기부터 조각가로서의 틀을 다지는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1990년 그는 유럽 광고 제작을 위한 마네킹 제조 회사를 설립했고, 이 시기 조각을 만들기 위한 고도의 테크닉과 재료 등을 다루면서 극사실주의 조각의 기초를 마련했다.
뮤익은 그의 조각품 <Dead Dad(1996-97)>로 처음 대중의 주목을 받았다. 당시 돌아가신 아버지에 대한 묘사로 실제 인물의 절반 크기로 제작된 조각은 기억과 상상력이 더해진 것이었다. 그의 첫 개인전은 1998년 London Anthony d’Offay Gallery에서 열렸다. 2000년과 2002년 사이에 뮤익은 London National Gallery의 준(準)예술가였고, 그 2년 동안 <Mother and Child>, <Pregnant Woman>, <Man in a Boat>, <Swaaddled Baby> 등의 작품들을 만들었다. 이후로도 그는 전 세계를 순회하며 전시회를 열고 많은 신작들을 발표하며 작업하고 있다.
도착한 갤러리는 생각보다 크기가 컸다. 전시 조사를 할 때 이미 미술관 외관 사진을 본 터라 고풍스러운 느낌이 남아있는 오래된 건물을 갤러리로 고쳤을거라 예상했지만, 내부 공간이 넓고 클거라 예상하지 못했다. 1층에서 2층으로 이어지는 갤러리의 공간 곳곳에 작품들을 배치해 두었고, 이번 전시가 론 뮤익의 25년 경력에 걸친 유명 조각품들을 보여주는 것인 만큼 정말 다양한 작품들과 스튜디오 사진들을 볼 수 있었다.
첫번째 전시 공간으로 들어서자 가장 먼저 검은색의 거대한 해골이 눈에 들어왔다. 사실 해골 그 자체는 '극사실주의'의 면모를 한 눈에 느끼기엔 강력한 소재가 아니어서 느낌이 덜했다. 하지만 곧 다른 작품들에서는 작가의 아주 사실적인 표현력을 가감없이 느낄 수 있었다. 겹겹이 싸여 있는 담요 안에는 아기가 있을까 했지만, 다 큰 성인 남자가 들어가 있고, 거대한 생닭이 걸려있는 것만 같은 작품들은 크기의 변화가 없었다면 분명 실제와 혼돈했을 정도의 사실적인 표현을 가지고 있었다.
작가 론 뮤익의 작품은 언제나 실제의 모습과 다른 크기를 가지고 있다고 한다. 그것은 각자 차지하는 공간의 차이 혹은 크기의 차이로 작품과 관객의 관계를 새롭게 낯설게 하여 평소 우리가 대상에 대해 측정하는 방식이나 그에 대해 느끼는 감정에 대해 주의를 환기시키고자 하는 목적이 아닌가 한다.
하이퍼리얼리즘(Hyperrealism, 극사실주의)은 고해상도 사진을 닮은 회화와 조각의 장르다. 포토리얼리즘(Photorealism)의 발전으로 간주되기도 하는 이 용어는 주로 1970년대 초반부터 발전한 미국과 유럽의 독립 예술 운동 및 스타일에 적용된다. 극사실주의 운동을 이끌었던 선구자로서 캐롤 퓨어맨(Carole Feuerman), 두앤 핸슨(Duane Hanson), 존 드 안드레아(John De Andrea) 등이 있다.
벨기에 미술상인 이시 브라코트(Isy Brachot)가 1973년 Brussels에 있는 자신의 갤러리에서 열린 주요 전시 및 카탈로그 제목으로 극사실주의를 의미하는 프랑스 단어 ‘Hyperréalisme’을 사용했다. 이 전시회는 미국 포토리얼리스트들이 주도했으며 영향력 있는 유럽 예술가들도 포함되었다. 이후 하이퍼리얼리즘은 포토리얼리스트의 영향을 받은 예술가에게 사용되었다.
21세기 초 하이퍼리얼리즘은 포토리얼리즘의 미학적 원리에 기반을 둔다. 그레이엄 톰슨(Graham Thompson)은 사진이 예술 세계에 동화된 방법 중 하나가 1960년대 후반에서 1970년대 초, 포토리얼리즘 회화의 성공이라 말한다.
그러나 하이퍼리얼리즘은 20세기 후반의 전통적인 포토리얼리즘 회화에서 발견되는 문자적 접근과는 대조된다. 엄격한 포토리얼리즘 화가들은 사진 이미지를 모방하는 경향이 있었고, 그림 이미지를 유지하기 위해 특정 세부 사항을 생략하거나 추상화했다. 그들은 종종 감정, 정치적 가치 및 서사적 요소를 생략했다. 팝 아트 도래 이후 사진과 같은 사실적 스타일은 평범하고 일상적인 이미지에 중점을 둔 독특하고 정확한 기계적인 기법이었다. 그에 반해 극사실주의 예술가는 사진 이미지를 참조, 소재로 사용하여 더 명확하고 상세한 이미지를 만든다. 이러한 과정은 포토리얼리즘과 달리 묘사에서 서술과 감동을 주는 경우가 많다.
극사실주의 회화와 조각의 장면은 원본에서는 볼 수 없던 현실의 환상을 만들기 위해 질감, 표면, 조명 효과 및 그림자는 참조 사진이나 실제 피사체보다 더 선명하고 세심하게 표현한다. 극사실주의는 장 보드리야르(Jean Baudrillard)의 철학, “실제로 존재한 적 없는 것의 실현”에 뿌리를 둔다. 현실의 시뮬레이션인 디지털 사진을 기반으로 거짓 현실, 설득력 있는 환상을 만든다. 포토 리얼리즘은 아날로그 사진을 모방한 것처럼 표현하지만 하이퍼리얼리즘은 디지털 이미지를 사용, 확장하여 새로운 현실 감각을 만든다.
일상적인 모습을 정지 화면으로 담은 것만 같은 작가의 작품들은 단순한 피규어를 보는 것과는 다른 느낌이었다. 영화나 애니메이션의 극적인 장면을 표현하는 피규어와는 달리 그의 작품들은 대부분이 공허한 표정을 짓고 있어서인지 오히려 작품의 인물이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무슨 감정을 가지고 있는지 궁금해졌다. 무표정이기에 현실적인 일상의 단면 같으면서도 한편으로는 텅 비어버린 사람을 보는 것 같아 오싹한 기분도 들었다. 대상에 대해 가까우면서도 먼, 반대의 거리감이 동시에 느껴지는 이상한 기분이었달까.
(2층으로 올라오는 계단 옆 벽 속에 <Dark Place> 작품이 있었는데, 기대했던 작품이기도 했지만 마주했을 땐 너무 섬뜩하고 무서워서 살짝 놀랐다. 그런 의도로 해당 위치에 놓은 것이겠지만, 갤러리를 되돌아 나오는 길에도 마주한 얼굴이 너무 무서웠음😂 포스트 규제로 사진 구성이 달라서 벽과 함께 보이는 작품 사진은 올릴 수 없지만, 벽과 함께보는 작품의 느낌은 또 다르다.)
뮤익의 작품은 일상적인 순간의 사람들을 포착하여 있는 그대로 표현한다. 그의 조각들은 아주 사실적인 표현으로 인간이 가진 시각적 능력보다 더 세밀하게 대상을 관찰할 수 있게 한다. 그로써 관객들은 그의 작품을 감상할 때 묘한 감정 이입을 느끼게 된다. 실제로 존재하는 듯한 작품 앞에서 관객들은 그 인물이 무슨 생각을 할지, 어떤 상황에 직면해 있을지를 생각하게 된다.
뮤익은 있는 그대로의 실체를 보여줌으로써 관객과 작품 사이의 거리를 좁히고 인간 자체에 대해 성찰하게 하며, 생명의 탄생부터 어린이, 청년의 육체, 그리고 노인의 병환과 죽음에 이르는 인간의 일대기, 그 속에 존재하는 삶과 죽음을 이야기한다.
작가는 작품을 완성하는데 대부분 오랜 시간이 걸린다고 한다. 작품에 따라 하나를 완성하기까지 1~2년의 시간이 걸린다고도 하니 엄청난 인내와 끈기가 필요할 것이다. 가끔 나는 반복적인 작업 및 엄청난 집중력을 필요로 하는 세밀한 작업을 오랜 시간 하다 보면 속이 울렁거리곤 하는데, 작가는 작품을 만드는 동안 그런 느낌을 받지는 않는지 문득 궁금해진다.
가장 기대를 했던 작품 중 하나인 <Couple Under and Umbrella>. 하나의 공간을 가득 채울 정도로 거대한 사이즈의 작품이었는데, 사실 잘 따지고 보면 인물의 비율은 비정상적이다. 몸통 부분이 생각보다 짧고 머리와 발 부분이 생각보다 큰데, 정작 멀리서 바라보거나 사진으로 찍었을 때는 그 차이를 알아챌 수 없다. '다비드 상'이 실제로는 머리가 크다는 것처럼 론 뮤익도 작품을 제작할 때 관객의 시선에 따른 원근법을 고려하는 걸까. 그 외에도 이 작품은 크기가 컸던 만큼 가까이서 세세한 부분을 관찰하듯이 볼 수 있어 좋았다.
전시 관람 이후에 후기를 작성하기 위해 작가에 대해 공부를 할 때 알게 된 사실인데, 론 뮤익은 1996년 그의 장모님인 파올라 레고(Paula Rego)로부터 런던에서 열린 그녀의 그룹 전시회에 쓸 작은 인물 인형을 만들어 달라는 요청을 받기도 했다고 한다. 무언가 낯익은 파올라 레고는 내가 작성했던 런던 전시회 리스트에도 있었던 것으로 Tate Britain에서 전시가 열렸었다(비록 날짜를 놓쳐 관람하진 못했지만). 이 둘의 관계가 장모-사위 관계였다니 세상 좁다는 생각도 들고, 최근에 런던에서 그 둘의 전시가 모두 있었다니 신기했다.
이 전시는 갤러리 사이트에는 해당 전시를 온라인으로도 공개하고 있었지만, 관람을 한 지금 역시 이 작품들은 실제로 가까이서 보는 것이 옳았다고 느낀다. 기대했던 만큼 매우 흥미로웠고 멋진 작품을 만드는 또 한 명의 예술가를 알게 되어 기쁘다.
모든 예술 감상문은 해당 전시회 및 공연을 직접 관람한 후기로, 개인적인 감상 및 학습의 기록을 작성합니다.
해당 전시회 및 예술가와 작품에 대한 정확한 정보를 전달하고자 노력하고 있으며
촬영이 허용된 경우에 한하여 본인이 직접 촬영한 사진만을 사용합니다.
'▪︎ 감상 모음집 > 예술' 카테고리의 다른 글
Barbican Centre <Shilpa Gupta: Sun At Night> 전시회 후기 (0) | 2021.11.19 |
---|---|
Barbican Centre <NOGUCHI> 전시회 후기 (0) | 2021.11.13 |
Thaddaeus Ropac <Please Touch> 전시회 후기 (0) | 2021.11.04 |
Lisson Gallery <Marina Abramović: Seven Deaths> 전시회 후기 (0) | 2021.10.21 |
[October 2021] Exhibitions Info. (0) | 2021.10.06 |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