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arbican Centre
Shilpa Gupta: Sun At Night
2021.10.23
전시 Noguchi를 본 후 나오던 길에 다른 전시에도 들렀다. 사실 하루만에 모든 것을 볼 계획은 없었지만(친구 소영이와 왔다면 결정을 맡겼을 것이기에) 일정이 변경되고 다시 Barbican Centre까지 나올 일이 잘 있을까 싶었다. 무료이면서 다행히 사전 예약이 필요없던 전시라 바로 입장할 수 있었다.
실파 굽타(Shilpa Gupta)는 인도의 현대 예술가이다. 그녀는 1976년 인도 Mumbai에서 태어나 현재까지도 그 곳에 기반을 두고 작업하고 있다. 1997년에 Sir J.J. School of Fine Arts에서 조각을 공부한 그녀는 조작된 파운드 오브제(found object, object trouvé)에서부터 비디오, 상호작용의 컴퓨터 기반 설치물과 공연까지 다양한 매체를 사용한다. 굽타는 다학제적 실천으로 물리적, 이데올로기적 경계와 개인으로서의 우리가 어떻게 고립감이나 소속감을 느낄 수 있는지를 시적(poetical)으로 탐구한다.
그녀는 소리, 언어 및 말의 힘을 사용하여 설치 예술에 대한 연구와 주제를 더욱 확장하는 새로운 작품들을 선보인다.
작가 실파 굽타에 대해선 전혀 들어본 적 없지만 전시회에 입장할 때 작가 및 작품에 대한 설명이 잘 되어있는 안내문을 주어서 감상에 도움이 되었다. 그녀의 몇몇 작품은 매우 간단하고 물체 하나 그 자체인 경우가 있어서 작품의 주제와 제작 배경을 알지 못하면 이해하기 어려운 경우가 많다. 작품의 제목마저 'Untitled'인 경우가 대부분이라 작가의 프로젝트 주제를 알지 못한다면 "이게 뭐야?"라는 반응이 나올 수 있다.
이번 전시는 굽타의 런던 첫 주요 전시회로서 그녀의 프로젝트 <For, In Your Tongue, I Cannot Fit(2017-18)>와 같은 기존 작품들을 비롯해 새로운 작품들을 선보인다. 해당 전시의 제목인 ‘Sun at Night’은 감금된 경험을 암시하면서 희망을 제시한다. 설치 작품과 함께 전시된 다양한 드로잉과 조각품은 표현의 자유의 취약성을 반영하는 동시에 현재 진행 중인 팬데믹으로 고조된 감금 개념을 불러 일으킨다.
그녀의 작품에 등장하는 많은 시인들은 투옥된 경우가 많다. 독방에 갇힌 생활은 시간과 공간에 대한 그들의 인식에 엄청난 영향을 준다. 작은 조각품과 드로잉은 이러한 경험에 경의를 표하는 동시에 물리적 이동성을 통제 수단으로 사용하는 방식에 대해 이야기한다.
연필심이 겹겹이 쌓여있는 한 작품은 필기 도구의 소중함을 보여준다. 감옥 내 시인들은 이러한 필기 도구를 종종 압수 당했고, 그들은 비누에 에칭을 하거나 적어내려갈 문장들을 암기하는 등 자신을 표현할 독특한 대안을 찾았고, 이 모든 것은 굽타의 그림에 표현되었다. 두 책의 페이지가 서로 맞물려 잇는 다른 작품은 목소리가 어떻게 서로에게 힘을 주는지를 상징적으로 표현한다.
전시장 안으로 들어서면 관객은 공항이나 기차역에서 흔히 볼 수 있는 ‘플랩 보드’를 만나게 된다. 예상 출발 또는 도착 시간을 알리는 게시판의 기능 대신 두 개의 플랩 보드는 문구를 띄우며 대화를 나눈다. 소리와 언어, 연설의 힘에 대한 작가의 관심은 확장되어, 이 작품은 관객으로 하여금 각각의 플랩들이 진술하는 이야기를 관찰하며 시간을 보내게 한다.
표현의 자유가 억압된 시인들의 목소리를 조형물, 드로잉으로 표현하는 작가의 작품은 스토리를 알고 나니 더욱 인상적이었다. 아주 간결하고 단순한 형태의 작품들이 이야기를 담게 되면 어떤 의미까지 내포할 수 있는지, 예술과 스토리의 관계와 중요성을 알 수 있었다.
현대 예술에는 작품의 가치가 겉으로 드러나는 기법, 기술, 표현력 뿐만 아니라 내제되어 있는 의미, 스토리텔링이 중요하다고 한다. 얼마나 많은 사람들에게 생각할 기회를 주고, 공감하게 하고, 다른 사람들과 의견을 나누게 하는지와 같은 작품이 가진 예술적 가치, 영향력이 중심이 되는 것 같다.
전시장 마지막 부분에는 찬사를 받았던 굽타의 프로젝트 작품 <For, In Your Tongue, I Cannot Fit(2017-18)>이 있다. 이 작품은 종이가 꽂힌 100개의 금속 스파이크 위로 100개의 마이크가 달려있는데, 종이에는 작업, 저술 또는 신념으로 투옥된 시인들의 단편적인 구절이 새겨져 있다. 작가는 8세기부터 21세기까지의 시를 아울러 페미니즘, 환경주의, 민주주의를 옹호하고 국가의 사회적 권력, 정부 구조, 식민주의, 전쟁, 성, 젠더, 인종, 종교, 계급 등에 대한 이념에 도전한 시인들의 목소리를 표현한다. 약 1시간 동안 각각의 마이크에서 나오는 목소리가 시를 읊는다. 하나의 목소리가 시작되면 이내 공간은 다른 99명의 합창으로 가득차는데, 이것은 많은 사람들이 서로를 연대로 서있는 것처럼 느껴진다. 아랍어, 아제르바이잔어, 중국어, 영어, 힌디어, 러시아어, 스페인어 등 다양한 언어가 번갈아 사용되면서 굽타는 더 넓은 이야기와 경험에 주목한다. 작가의 작품을 통해 침묵했던 사람들의 목소리를 냄으로써, 반체제 사상가들의 말은 계속해서 살아나고 검열, 감금 및 유폐의 윤리에 대해 생각하게 한다.
가장 기대했던 작품은 전시 마지막 부분에 있었다. 소리와 빛도 작품의 요소가 되는지라 사진만으로는 전달이 어렵지만 아주 인상적이었다. 한 곳에서 시작된 목소리가 여러 목소리와 겹쳐지며 많은 이야기들이 나오는데, 금속 스파이크 사이사이로 다니며 소리가 울려퍼지는 중심에서 작품을 감상할 수도 있다. 약간은 으스스하고 무서우면서도 오히려 그 오싹한 감각마저 작품의 한 부분이라는 느낌이 들었다. 어둠 속에서 울려퍼지는 목소리의 힘을 느낄 수 있었고 지금도 여전히 목소리를 내기 위해 노력하는 많은 사람들의 마음을 느낄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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