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 감상 모음집/예술

Whitechapel Gallery <Eileen Agar: Angel of Anarchy> 전시회 후기

by kyeeunkim 2021. 9. 12.
Whitechapel Gallery

Eileen Agar: Angel of Anarchy

 

2021.08.24

  올해 첫 여름 여행 후, 두 번째 여행 전까지 사이에 있던 이틀의 시간 동안 전시회를 다녀왔다. 이 때 가지 않았다면 우리가 두 번째 여행을 가 있던 주말에 끝날 전시였기에 게을러질 여력이 없었다. 작가 에일린 아거에 대해 알고 있는 정보는 전혀 없었지만, 얼마 전 잠깐 일을 할 때 같이 일했던 패턴사 분이 이 전시에 대해 언급했었다. 초현실주의와 콜라주 작업으로 유명한 작가라고 하며 나중에 전시를 꼭 가보고 싶다고 하길래, '오, 안 그래도 나도 찜콩 해놓은 전시인데.'라며 내가 정리했던 전시회 리스트를 떠올렸었다. 하지만 결국엔 미적거리다 전시가 끝날 무렵에야 부랴부랴 향했다.

  전시가 있던 Whitechapel Gallery는 영국 생활 동안 종종 가던 갤러리인데, 솔직한 마음으로는 그 동네는 좋아하지 않는다. 지하철 역에 따라 다르지만 Aldgate East 역에서 내리면 가까이 붙어 있어서 접근성이 좋긴 좋지만 주변 동네가 엄청 복잡하고 정리되지 않은 느낌이랄까. 이번에는 더욱이 갤러리가 있는 건물이 공사 중이어서 입구를 찾기가 어려웠다(코로나 때문에 출입구를 따로 정해놓은 것도 한 몫을 함).

작가 자화상 그림

  에일린 아거(Eileen Agar)는 초현실주의 운동과 관련된 영국계 아르헨티나인의 화가이자 사진가이다. 1899년 아르헨티나 부에노스아이레스에서 태어난 그녀는 어렸을 때부터 영국에서 학교 생활을 하며 여러 예술가들의 작품을 일상적인 가치로서 경험했다.
  1920년대 아거는 런던에서 여러 사람들과 예술을 공부하며 다양한 나라를 여행했다. 1928년에는 파리에서 초현실주의자들인 앙드레 브르통(André Breton)과 폴 엘뤼아르(Paul Éluard)를 만나 친분을 쌓았고, 1930년에는 체코의 입체파 화가 프란티셰크 폴틴(František Foltýn)과 함께 공부했다. 이후 그녀는 영국으로 돌아와 앙드레 브르통의 초현실주의 선언문을 바탕으로 그녀의 첫 번째 초현실주의 작품인 <The Flying Pillar>를 그렸다(이후 <Three Symbols>로 이름이 바뀜). 1935년 아거는 Dorset에서 만난 폴 내쉬(Paul Nash)로부터 “found object”라는 개념을 소개 받는데, 이후 그녀는 콜라주와 오브제를 만들며 <Angel of Anarchy>와 같은 다양한 방식과 재료를 실험한 작품들을 만들었다. 1940년대 그녀의 작업은 특이한 암석 사진 세트인 <Bum-Thumb Rock>과 같이 자연 물체에 초점을 맞춘 가벼운 방식으로 진행되었다. 

  전시를 보기 전에는 작가가 초현실주의와 콜라주 작품으로 유명하다길래 대부분의 작품이 콜라주 방식을 이용한 것이라 생각했다. 하지만 전시장에 들어서자 마자 보이는 그녀의 자화상 작품은 그 두 가지와 멀어 보였다. 첫 느낌에 폴 고갱(Paul Gauguin)의 그림체가 생각나는 그런 느낌이랄까. 물론 이 생각은 본격적인 전시 관람을 시작하고 다른 작품들을 보면서 바뀌었다.

색의 조합이 독특한 여러 드로잉들과 그림 작품들

  이번 전시에서 그녀의 다양한 작품들 중에 대표적인 콜라주 작품들도 기억에 남지만, 다양한 드로잉 및 스케치 작품들이 나의 눈길을 더 끌었던 것 같다. 요즘 앙리 마티스(Henri Matisse) 드로잉 작품들이 인기를 끄는데, 에일린 아거의 드로잉들도 그런 느낌이 살짝 나기도 하고? 특히 나는 얼굴 드로잉을 하고 채색을 할 때 사실적인 표현보다는 다양한 색상을 이용한 야수파(Fauvism) 느낌을 좋아하는데 그런 내 취향에 그녀의 드로잉이 꼭 맞았다. 나도 저렇게 그리고 싶은데, 정작 그려볼려고 하면 잘 안된단 말이지😭 흑흑

전시장 풍경

  1934년 Bloomsbury Gallery에서의 첫 개인전을 시작으로 1940년까지 그녀의 작품은 암스테르담, 뉴욕, 파리, 도쿄의 초현실주의 전시회에 출품되었다. 비록 아거는 일생 동안 초현실주의라는 이름을 부정했지만, 그녀는 1936년 런던에서 열린 국제 초현실주의 전시회에 포함된 유일한 여성 작가이기도 했고 이후로도 영국 및 해외에서 여러 초현실주의 작가들과 함께 전시했다.

여러 콜라주 작품들, 다양한 소재를 이용하기도 했다

  에일린 아거의 작품들을 보면서 인상 깊었던 것은, 그녀의 작품이 엄청 대단해서도 아니고 신선하고 새로운 기법을 사용해서도 아니었다. 특히나 콜라주 기법은 어렸을 때도 많이 해봤고(낙옆 주워와서 이리저리 붙이며 그림 그리는 것은 다들 유치원 때 해볼 듯), 패션 학교를 다닌 사람으로서 안 쓸 수가 없는 방법이다(특히 디자인 무드 보드나 컨셉 보드 만들 때). 하지만 오히려 그녀의 예술이 일상적이고 친숙해서 좋았다. 고도의 기술을 요구하는 기법도 아니고 사용한 소재들도 일상적이어서 한 번쯤은 따라하고 싶게 만들고, '나도 어렸을 때 이렇게 미술에 친숙하고 재미있게 접근했는데.'라는 생각과 함께 그 때의 어색하고 순진했던 손길을 그립게 만든다고 해야할까.

  너무 머리가 커져버린 지금에는 무엇을 어떻게 하면 조금이라도 더 독특하고 새롭게 할까, 라는 생각에 잠겨 어느 것도 시도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손은 멈춰있고 그저 머리의 결정과 명령을 기다리는 상태처럼 말이다. 하지만 작가의 작품들은 "그냥 나뭇잎 여러개 주워서 붙여봐. 만들어 가고 싶은 형태를 만들어 가봐. 그 작은 손짓 하나가 일상적인 것들을 특별하게 만들 수 있어."라며 복돋아 주는 것 같다. 

'Muse of Construction'

  물론 현재와는 다른 시대에 살았던 에일린 아거에게는 그 모든 작품 활동이 다양한 실험이자 시도였을 것이다. 그녀는 예술을 공부하면서 진학하고 싶은 학교와 관련해 부모님과 큰 논쟁이 있었다고 한다. 이후 그녀가 첫 남편을 "나를 가족의 손아귀에서 해방시킨 탈출구"라고 표현할 만큼 한동안 그녀가 가족으로 받던 삶의 규제가 컸던 것을 알 수 있다. 게다가 그녀의 삶에는 두 번의 세계 전쟁이 있었으니 세상이 얼마나 무질서하고 혼란스러웠을지 감히 상상하기 어렵다. 그녀는 다양한 예술가들과 넓은 세상을 여행했지만, 초현실주의 전시회에서 유일한 여성 작가였던 만큼 그녀의 작품이나 활동이 그 당시에는 (특히나 여성으로서) 파격적이었을지 추측해 볼 수 있다.

  그녀의 말처럼 작가의 모든 작품 활동은 일상으로 자리잡은 관습적인 것들에서 탈피하고자 하는 다양한 시도이자 일상적인 것에서 새로움, 특별함을 발견하고자 하는 끊임없는 노력이었다.

전시회 대표 작품 이미지였던 'Erotic Landscape'

“나는 평생을 관습에 반항하며 일상의 존재에 색과 빛, 신비감을 부여하기 위해 노력했습니다.

언제나 새로운 색상, 새로운 모양, 새로운 발견의 가능성에 대한 갈망이 있어야 합니다.”

에일린 아거

신화를 소재로 한 그림 작품들도 많았다

  언뜻 보기엔 그녀의 작품들은 복잡해 보이고 그녀가 가지고 있는 타이틀 때문에 혹시나 작품을 이해하기 어렵지 않을까 생각하기도 했다. 하지만 익숙한 신화들을 소재로 한 작품들도 많아 그 이야기들을 떠올리며 감상하거나, 작품 제목을 살피기 전 그녀가 사용한 다양한 패턴과 조형물들이 모두 어우려져 어떤 것을 표현하고자 했는지 추측하는 재미가 있었다. 어렵게 느껴지는 것보다는 작품을 관찰하며 그녀가 사용한 여러가지 색상과 선들을 발견하는 것으로도 충분한 감상이지 않았나 싶다.

'Dance of Peace'
(좌) 'The Sea (the coast at Eastbourne)'  (우) 'Portrait of the Artist's Mother'
색상 사용이 매우 화려하고 과감하다

  다양한 작품에서 볼 수 있듯이 그녀는 회화 뿐만 아니라 여러 방면의 예술 활동을 했다. 사진, 조각, 조형 등 형태도 여러 가지이고 사용하는 색감이나 표현 방식들도 초현실주의(Surrealism), 입체파(Cubism) 등을 넘나든다. 그만큼 그녀의 스타일을 하나로 요약하기는 어렵다. 작가 자신 또한 그렇게 하나의 단어로 정의되는 것을 원하지 않았을 것 같다는 생각도 해본다. 그런 그녀의 예술 활동은 꼭 고정된 하나의 스타일을 만들지 않아도 된다고 알려주는 듯 하다. 여러 시도를 해보고, 방식들을 접목하며 쌓이는 모든 결과물들이 결국엔 그 사람을 나타내는 유일무이한 스타일이 된다는 것을 알 수 있는 전시였다.

(좌) 'Orpheus and his Muse'  (우) 'Cleopatra'
그림으로 표현된 암석 사진 시리즈들

 

 


모든 예술 감상문은 해당 전시회 및 공연을 직접 관람한 후기로, 개인적인 감상 및 학습의 기록을 작성합니다.

해당 전시회 및 예술가와 작품에 대한 정확한 정보를 전달하고자 노력하고 있으며

촬영이 허용된 경우에 한하여 본인이 직접 촬영한 사진만을 사용합니다.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