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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감상 모음집/예술

Newport Street Gallery <Damien Hirst> 전시회 후기

by kyeeunkim 2021. 8. 11.
Newport Street Gallery

Damien Hirst: End of a Century

 

2021.08.07 

  아침 일찍 전시 관람을 위해 집을 나섰다. 얼마 전 런던 전시회 정보를 업데이트하면서 발견한 데미안 허스트의 전시회를 보기 위함이었는데, 마감일이 8월 8일이었기에 예약을 서둘렀다. 입장료는 없는 무료 전시였지만 코로나 상황으로 인해 시간별로 입장 티켓을 사전 예약해 관람 인원 제한을 하는 모양이었다. 목요일 오후에 예약할 수 있는 시간이 꽤 있는 것을 보고 저녁에 남자친구와 다시 확인했는데, 금새 많은 시간이 마감되어서 급한 마음에 토요일 오전으로 예약했다. 예약할 수 있는 가장 늦은 시간이 오전 10시 45분이었다는 것. 하지만 정작 전시를 보니 주말 오전 아침(늦)잠을 포기한 것이 전혀 아쉽지 않았다.

  Newport Street Gallery는 내가 영국 유학 생활을 시작했을 때 거의 처음으로 갔던 갤러리였는데(대형 미술관 제외), 제프 쿤스와 같은 유명 작가들의 전시회를 열곤 했다. 다만 주로 런던 북서쪽에 살던 나로서는 Vauxhall 역 근처에 위치한 갤러리는 찾아가기 멀게만 느껴져 자주 찾지 못했다. 오랜만에 어떤 전시를 하나 살펴 봤는데 작년 10월부터 데미안 허스트의 전시를 하고 있었다.

그의 대표적인 스타일인 포름알데히드 용액을 이용한 작품

  데미안 허스트(Damien Hirst)는 영국의 현대 예술가로 1965년 영국 브리스톨에서 태어나 리즈에서 성장헀다. 그는 1986년부터 1989년까지 런던 골드 스미스 대학에서 미술을 전공했으며, 이 때 같이 학교를 다닌 친구들과 YBAs(Young British Artists)를 결성했다. 이들은 1988년 프리즈(Freeze) 전시회를 기획했는데, 이 때 엄청난 주목을 받으며 영국 현대 미술의 부활을 이끌어 내는 주역이 된다.
  데미안 허스트는 1991년에 열린 첫 전시회에서 죽은 상어를 포름알데히드를 가득 채운 유리 진열장에 넣어 전시한 작품 ‘살아있는 자의 마음 속에 있는 죽음의 육체적 불가능성(The Physical Impossibility of Death in the Mind of Someone Living)’을 선보여 엄청난 논란의 대상이 되기도 했다. 하지만 사치 갤러리를 소유한 영국의 광고 재벌, 찰스 사치(Charles Saachi)와 갤러리 화이트 큐브를 가진 제이 조플링(Jay Jopling)에게 강한 인상을 남기며 수많은 미술 시장 기록을 갈아치웠다. 그는 1995년 런던 테이트 갤러리가 매년 최고의 작가에게 수여하는 터너상을 수상하였고, 베네치아 비엔날레와 같은 각종 국제전 뿐만 아니라 1997년 로열 아카데미에서 있었던 ‘센세이션(Sensation)’ 전시회로 충격적인 작품들을 선보이며 주목을 받았다. 데미안 허스트는 이후 프랜시스 베이컨(Francis Bacon)과 데이비드 호크니(David Hockney)를 잇는 영국 예술가로 이름이 알리게 되며 1996년과 2000년 가고시안 갤러리에서 있었던 두 번의 전시를 통해 뉴욕에서도 입지를 다지게 된다.
  2005년과 2008년에는 미술 전문지 ‘아트 리뷰’가 선정하는 세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사람 1위에까지 올랐고 그의 나이 마흔 살에 1억 파운드의 경제적 가치가 있는 인물로 평가를 받았다.

  데미안 허스트는 내가 유독 어려워하는 현대 미술에서도 그나마 마음 편하게 접하는 작가이다. 야요이 쿠사마와 비슷하게 어렸을 때 엄마와 전시회와 아트 페어를 다니는 와중에 알게 된 작가였다. 그 때는 어느 전시회를 가더라도 꼼꼼하게 작가 설명도 읽고 작품 의미도 알아보던 때여서 그의 작품이 섬뜩해 보이면서도 그가 표현하고자 한 의미를 읽을 수 있어 어렵게 느껴지지는 않았던 것 같다. 물론 그의 최근 작품들에 대해서는 잘 모르지만. 2년 전인가 White Cube 갤러리에서 그의 최신작들을 공개하는 전시가 있었는데, 그 때는 엄청난 감흥을 느끼지 못했다. 충격과 새로운 자극을 줬던 그의 초창기 작품들은 논란의 대상이 되었어도 그 의미는 알 수 있었는데, 최신 작품들은 좀 더 상업화 된 느낌이랄까.

(좌) 'Two Similar Swimming Forms in Endless Motion(Broken)' (우) Formaldehyde Series

  전시장에 들어서니 데미안 허스트의 대표적인 작품 형태라고 할 수 있는 포름알데히드 용액을 가득 채운 유리장 속 동물을 전시한 작품 중 유명한 상어 작품이 있었다. 그는 방부제 격인 포름알데히드 용액을 유리관에 채워 죽은 동물들이 부패하지 않도록 만든 작품들을 많이 전시했는데, 가끔은 모터를 달아 마치 죽은 동물이 살아서 물 속에서 움직이는 듯한 표현을 하기도 했다. 그는 이런 작품들을 통해 '죽음에 대한 생각'을 묘사하고 싶었다고 한다. 워낙 이 같은 방법을 사용한 작품들이 많아서 무엇이 어떤 작품인지 헷갈리는 경우도 많지만 그래도 그의 대표작들을 직접 볼 수 있는 기회가 생겨 좋았다. 그의 회화 작품들은 직접 볼 기회가 많았지만, 이런 대형 조형물이나 조각품들은 직접 볼 수 있는 기회가 많지 않았기 때문이다. 특히 이번 전시회는 시대별로 다양한 작품들을 볼 수 있어 좋았다.

Medicine Cabinet Series
데미안 허스트는 약과 약병을 이용해 진열한 작품들을 많이 만들었다 (좌) 'Hymn' (우) 'Sinner'

  데미안 허스트의 주된 작품 주제는 ‘죽음’이다. 다만 그 주제를 보여주는 방식이 너무나도 직접적이고 충격적이어서 엽기적인 예술가 혹은 현대 미술의 악동으로 평가 받으며 항상 논란의 중심이 되곤 했다. 하지만 무심하고 냉정한 방식으로 삶과 죽음을 보여주는 그의 작품들은 삶의 허망함, 죽음에 대한 두려움에 대한 그의 깊은 생각을 담고 있으며 삶과 죽음에 대한 성찰을 불러 일으킨다.

  잘 알려진 작품들부터 처음 보는 작품들까지 데미안 허스트의 다양한 작품들을 2층에 걸친 갤러리 공간에서 볼 수 있었다. 각각의 작품마다 제작 연도와 작가의 코멘트가 적혀 있었는데 그의 의도와 생각을 언뜻 엿볼 수 있어 작품을 이해하는 것에 도움이 되었다. 다만 내가 작품 제목을 잘 살펴보지 않아서인지 작품들 제목은 기억이 뚜렷하지 않은데, 데미안 허스트의 작가 사이트(https://damienhirst.com/)를 참고해도 찾아보기 어려운 것들이 많았다. 워낙 비슷한 스타일의 반복되는 작품들이 많기도 하고 그의 작품을 이해하는 데에 있어 개별의 작품을 구별하는 것보다 그가 작품에 사용한 방식과 왜 그러한 방법을 사용했는지, 그로써 전하고자 한 의미를 아는 것이 더 중요하지 않을까 싶다.

진짜 나비들을 페인팅에 접목한 작품 Butterfly Colour Painting Series
Visual Candy Painting Series

  데미안 허스트는 자신의 설치작품, 회화, 조각을 통해 미술과 과학 그리고 대중 문화의 전통적인 경계에 도전했다. 포름알데히드 용액이 가득한 유리 상자 안에 여러 죽은 동물들을 전시하는 작품들은 그의 유명한 대표작이 되었다. 일부 비평가들은 그가 작품을 홍보하기 위해 의도적으로 자극적이고 논란이 되는 소재와 방법을 선택했다고 혹평하기도 하지만, 그 작품의 주된 의도는 죽음 속에 있는 지독한 아름다움, 그리고 아름다음 속에 내재된 불가피한 부패를 묘사하는 미술을 목격하는 것에 있다.
  그는 약과 수술 도구들을 진열한 조각품들도 많이 제작했는데, 그것은 치료의 의미에서 미술과 의학이 가지는 관련성을 보여준다. 또한 약, 알약 병, 의료도구들을 배치한 방식은 그가 가진 색, 형태, 모양에 대한 감각을 보여준다.

"나는 담배 피지 않는 사람들을 믿지 않았지만, 지금은 담배 피는 사람들을 믿지 않아요." Cigarette Cabinet Series
다양한 약들을 일열로 나열해 전시한 작품 Pill Cabinet Series

  데미안 허스트의 작품들은 늘 논란의 대상이 되었던 것 같다. 동물의 사체를 사용하는 것에서부터 물건들을 그저 나열한 작품들까지. 어떻게 보면 그 방식들이 어렵지 않고 단순하여 사람들로 하여금 "어떻게 저게 예술이 되고 엄청난 가치로 평가 받아 고가에 팔릴 수 있어?"라고 생각하게 만들기도 한다. 그 재료들만 똑같이 가지고 있으면 쉽게 복제할 수도 있고 표현하는 방식이 엄청난 예술적 기법을 요구하지도 않기 때문이다. 하지만 한 작품을 앞에 두고 사람들로 하여금 여러가지 논란과 토론을 불러 일으키는 것만으로도 예술적 가치는 충분해 보인다. 더군다나 어렵지 않은 방식으로 쉽게 사람들에게 다가가니 더욱 대중적이게 된 것이 아닐까 싶고. 마르셀 뒤샹이 변기에 글자를 적어 예술이라고 내놓은 작품 '샘'도 그 당시에는 엄청난 논란의 대상이었지만 현재는 모두가 받아들이는 작품 중 하나가 되었으니 예술은 이토록 다양하고 결국엔 모든 것이 예술이 될 수 있는 것 아닐까 한다. 물론 예술로 돈을 벌고 생활을 할 수 있는 직업적 예술'가'가 되는 것은 쉬운 일은 아니지만.

논란의 작품 'A Thousand Years'

  데미안 허스트의 작품들 중에서도 가장 직접 보고 싶은 작품 중 하나가 바로 '천 년(A Thousand Years)'였다. 작가를 처음 알게 된 후에 그에 대해 공부할 때 이 작품에 대한 사진과 설명을 처음 접했는데, 비록 형태는 징그럽지만 삶과 죽음에 대해 생각하는 작가의 생각과 그것을 표현하는 방법에 대해 감탄했던 작품이었다. '삶'과 '죽음'은 예술에서 가장 보편적일 수 있는 주제이지만 데미안 허스트는 그것을 표현하는 것에 있어 매우 직설적이고 현실적인 방법을 사용한다고 생각했다. 어느 생명이든 생물적 조건에 맞춰 탄생하고 살아가기 위해 영양을 취하고 그리고 생이 다하면 죽는다. 죽으면 부패가 일어나고 다시 자연으로 순환되는 과정을 겪게 된다. 이 작품은 그러한 자연의 순환 과정을 적나라하게 보여주며 영원한 삶과 죽음의 순환을 보여주는 작품이 아닌가 한다. 비록 일반적으로 추상적이고 고귀하게 느끼는 삶과 죽음이 실제로는 이런 모습이라고 직시하게 되는 것은 유쾌한 경험은 아닐 수 있지만 유일한 경험이기에 데미안 허스트의 작품이 알려지게 된 것은 아닐까 한다.

Spot Painting Series

Spin Painting Series
  데미안 허스트의 회화 작품들은 대체로 크게 두 가지로 나뉜다. 첫번째는 '스핀(Spin)' 페인팅 시리즈이다. 그는 회화 작품에 액션 페인팅과 같은 기계적인 제작 기법을 많이 사용했는데, 다양한 모양의 캔버스 위에 물감을 엎질러 붓고 그것을 고속으로 회전시켜 만들어지는 물감의 무늬를 작품화한 것이다. 두번째는 '스팟(Spot)' 페인팅 시리즈이다. 질서 정연한 격자 형태로 배치된 다양한 색깔의 원형 점들을 그린 것인데 미니멀리즘 양식과 같은 단순한 형태를 가지고 있지만 보는 사람으로 하여금 심리적 안정감을 준다.

Collage Series 작품과 Spot 형태를 이용한 색감이 도드라지는 작품들

  사실 작가의 작품은 엄청 새로운 미술 기법을 만들어 내거나 일반적이지 않은 주제, 혹은 다른 작가들이 하지 않는 생각을 해서 인상적인 것은 아닌 듯 하다. 과학적 기법(포름알데히드 용액을 사용하는 것)이나 의학적 재료(의료 도구 혹은 약)를 주요 소재로 사용해 예술과 접목시킨 것은 처음이니 특이하긴 하지만, 그것은 데미안 허스트만이 할 수 있는 방법은 아니었다. 그가 회화에서 자주 사용하는 스팟이나 스핀과 같은 방식도 새로운 것은 아니다. 다만 그가 이름을 떨치고 자신만의 예술적 브랜드를 만들 수 있었던 것은 다른 사람들이 미처 시도하지 못하고 망설였던 방식들을 겁 없이 시도했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삶과 죽음을 다루는 문제에서 이렇게 표현하는 방식은 관객들로 하여금 거부감을 일으킬 수 있지 않을까?' 혹은 '동물의 시체나 약, 의료 도구를 예술적 소재로 사용하는 것은 비판의 대상이 되고 논란이 되지 않을까?'와 같은 생각들 말이다. 만약 데미안 허스트도 자신의 작품을 발표한 후 누구에게도 인정받지 못하고 손가락질 당할 것을 걱정하고 두려워 했다면 그런 제작 방식을 선택하지도 못했겠지. 하지만 그의 작품을 관람하는 관객의 한 명으로서 느끼기에 작가는 전혀 그런 부분에 대해 개의치 않았던 것 같다.

  가끔 세상에서 유일무의한 한 사람, 혹은 무언가를 만들기 위해 새로운 것을 해야한다는 강박에 갇힐 때가 있다. 특히 디자이너의 길을 걷는 나도 다른 사람이 하지 않았던 것을 하기 위해 노력하곤 한다. 하지만 현재까지 시간이 흐르는 동안 이미 과거 수많은 사람들의 아이디어가 존재했고, 그 모든 것을 제외하고 새로운 것을 찾는 것은 무척이나 어려운 일이어서 가끔은 나에게 능력이 없나, 자책하는 순간이 생기곤 한다. 하지만 결국 다른 사람과 나를 구분짓는 것은 존재하지 않았던 새로운 것이 아닌 '한 끗의 다름'이라는 것을 데미안 허스트의 작품을 보며 다시금 깨닫는다. 각각의 사람은 개성을 가지고 있고 그것은 이미 서로 한 끗의 다름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니 진정으로 나를 보여줄 수 있는 작은 하나를 찾아 표현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 그리고 그렇게 자신만의 브랜드를 갖게 되면 데미안 허스트처럼 색깔의 다양한 그릇들을 펼쳐 놓는 것만으로도 자신의 생각을 표현하는 예술가가 될 수 있는 것 아닐까.

재미있었던 Anagram(철자를 바꾼 말), 이런 센스를 접목하면 데님 셔츠만 걸어도 작품을 만들 수 있다

  오랜만에 익숙한 작가의 작품을 보며 이전에 예술 공부에 열성적이었던 나 자신에 대해서도 다시금 되내이고, 이미 알고 있었지만 현실에 치여 잊고 있었던 생각들을 다시금 느낄 수 있어 즐겁고 의미 있는 전시 관람이었다.

 

 


모든 예술 감상문은 해당 전시회 및 공연을 직접 관람한 후기로, 개인적인 감상 및 학습의 기록을 작성합니다.

해당 전시회 및 예술가와 작품에 대한 정확한 정보를 전달하고자 노력하고 있으며

촬영이 허용된 경우에 한하여 본인이 직접 촬영한 사진만을 사용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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