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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감상 모음집/예술

Lisson Gallery <Anish Kapoor> 전시회 후기

by kyeeunkim 2021. 12. 23.
Lisson Gallery (Bell Street)

Anish Kapoor

 

2021.10.26

  벌써 두 달이나 늦어버린 기록.. 한참 바쁘게 전시회를 보러 다녔는데 이후 주기적으로 일을 하게 되서 블로그에 열을 쏟을 시간이 부족했다. 게다가 포스트 작성하려면 작가 정보 조사에 전시 내용 번역에 사전 작업에 시간이 너무 오래 걸린다. 최대한 그 시간을 단축하고 싶은데 한편으로는 '복붙'하는 내용은 쓰고 싶지 않아서 나름 애를 쓰다보니 에너지 소모가 꽤 된다.

  아무튼 전시가 끝나기 전에 서둘러 가겠다고 하루에 두 전시를 홉홉 뛰어다녔던 날 보았던 전시, 애니쉬 카푸어. 원래 가장 메인은 마리나 아브라모비치의 영상 작품이었는데 관람을 마치고 나왔을 때 언제 또 다시 이 지역을 나올까 싶어 바로 근처에 있던 다른 전시장도 갔다. 지금 생각해보면 스스로를 너무 잘 아는 나 자신의 현명한 선택이었다(분명 전시를 못 보고 놓쳤겠지..).

  애니쉬 카푸어(Anish Kapoor)은 현 세대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조각가 중 한 명으로 설치 및 개념 예술을 중심으로 활동한다. 1954년 인도 Mumbai에서 인도인 아버지와 유대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난 그는 1972년 미술 공부를 위해 영국으로 이주했다. 영국 London Hornsey College of Art에서 공부, Chelsea School of Art and Design에서 대학원 과정을 마친 카푸어는 Liverpool Walker Art Gallery에서 근무하던 중 미술가로 데뷔했다. 이후 그는 런던에 정착, 현재까지도 활발하게 작품 활동을 이어가고 있다.
  1980년대 초반 카푸어는 ‘영국의 젊은 조각가(Young British Sculptors)’ 일원으로 선발되었다. 리처드 웬트워스(Richard Wentworth), 리처드 디콘(Richard Deacon), 빌 우드로(Bill Woodrow)가 포함된 이 그룹은 영국 문화원(British Council)의 전폭적인 후원을 받았고 새로운 미술 양식으로 작업하며 빠르게 국제적인 명성을 얻었다. 1990년 카푸어는 영국 대표로 제 44회 Venesia Biennale에 참석해 Premio Duemila Prize를 수상했고, 1991년에는 Turner Prize을 수상하며 세계적인 주목을 받았다. 이후 영국 여러 대학에서 명예 펠로우십 및 명예 박사 학위를 받기도 한 그는 2003년 대영제국 훈장과 2013년 기사 작위를 받았다. 그 외에도 인도 및 유대인 공동체로부터 그의 업적을 인정받았다.
  1980년대 카푸어의 초기 작품들은 화강암, 석회암, 대리석, 석고 등의 재료를 사용한 단순하고 기하학적 조각 위에 밝고 단색의 분말 안료를 뿌린 형태였다. 이후 1980년대 후반과 1990년대에 그는 물질과 비물질에 대해 탐구한 작품들을 발표했다. 당시 작품들은 땅 속으로 사라지는 듯한 형태나 조각들이 서로 거리를 두고 물러나는 듯한 표현으로 주변 공간을 왜곡하는 것처럼 보였고 공허함을 불러 일으켰다. 21세기에 들어 카푸어는 형태와 공간을 조작하는 기술적 작품들을 제작했다. 스테인리스 스틸의 고반사 표면을 사용한 이 작품들은 거울과 같이 관객들이나 주변 환경을 반사하거나 왜곡한다. 형이상학적인 미술 양식에 뿌리를 둔 카푸어의 후기 작품들이 성공할 수 있었던 이유는 어둠, 빛, 그림자, 반사를 다루는 그의 능력이 뛰어났기 때문이다.

전시회 전경

  이번 전시회는 2019년에서 2021년 사이에 제작된 최근 작품들로 작가의 최근 관심사를 시적으로 표현하며 생생한 그의 작업을 보여준다. 또한 작가의 작업에서 친밀하고 의례적인 성격을 탐구하면서 그 동안에는 볼 수 없었던 새로운 회화를 선보인다.
  카푸어는 이번 작품들을 통해 혈과 육에 대한 물리적 탐구에서부터 기원 및 소멸과 같은 원초적이고 심리적인 개념을 조사하는 것에 이르기까지 우리 마음과 몸의 깊은 내면 세계를 탐구한다. 폭넓은 작업과 마찬가지로 미지의 것을 파악하고 의식을 일깨우며 공간의 현상학을 실험하고자 하는 욕구에 뿌리를 둔다.

<Sacrifice>와 회화 작품들
묵직하고 섬뜩한 기분이 든다

  내가 애니쉬 카푸어 작품을 처음 직접 본 것이 아마 2012년 리움 미술관에서 있었던 단독 전시회였나. 대구에서 올라오신 엄마와 서울 나들이 겸 갔는데 엄청난 규모의 작품들에 놀라면서도 그 몰입감을 아직도 기억한다. 특히 당시 작가의 작품들이 크기나 공간을 이용해서 신비함을 주는 경우가 많았어서 더욱 인상적이었다. 그 이후로 가끔씩 그의 작품을 보기는 했어도 단독 전시는 잘 볼 수 없어 아쉬웠는데 이번에 이렇게 작은 규모이지만 그의 최신작들을 볼 수 있었다.

  우선 이번 전시에서 그의 최신작들을 보며 든 첫인상은 '피와 살, 섬뜩하다'라는 것이었다. 이전의 작품들은 원이나 사각형 등 기하학적 형태나 자연적 조형물 같아 비록 규모는 거대하지만 단순한 표현에 편안한 마음으로 감상했는데 이번 전시는 마치 피가 튀기는 학살의 현장에 있는 것 같아 너무 무서운 느낌이 들었다. 특히 전시장에 들어서자 마자 보이는 작품들은 검은색과 붉은색을 중심으로 사용한 작품들이라 더욱 어둡고 파괴적인 느낌을 받았다. 그래도 검은색과 붉은색이 작가가 워낙 주로 사용하던 색상들이어서 그 와중에 익숙한 느낌이 들었달까. '그래, 이 두 색이 빠지면 카푸어 작품에서 아쉽지..'라는 생각? 게다가 Vantablack과 관련된 논란은 워낙 유명해서 그림을 자세하게 관찰하면서 '이 검은색이 그 유명한 반타블랙인가..'싶었다.

  이어진 전시 공간으로 걸음을 옮기자 더욱 강력한 작품들이 나왔다. 특히 생고기를 걸쳐놓은 것만 같은 조각 작품은 어떻게 이런 표현을 할 수 있을지 방법이 궁금해질 정도로 생생하면서도 기괴했다. 이 부분부터는 작품이 화려해지면서도 더 폭발적인 형태를 보였는데 색상의 사용이나 질감적 표현, 묘사가 새로웠다.

  노란색과 파란색이 함께 사용된 다른 작품들은 화산 폭발을 보는 것 같기도 하고 무언가 판타지의 환상적인 장면을 보는 것 같기도 했다. 무엇보다 고뇌가 시각적으로 표현된다면 이런 모습일까 싶었는데 작가가 탐구하고자 했던 인간의 마음과 몸의 깊은 내면 세계 중 내가 느꼈던 감상들도 포함되는 부분이 조금은 있을까. 개인적인 취향으로는 작가의 이전 작품들이 좋지만 그래도 내가 절대 하지 못할 스타일이나 표현의 작품을 보는 것도 흥미롭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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