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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감상 모음집/예술

The British Museum <Hokusai> 전시회 후기

by kyeeunkim 2022. 1. 21.
The British Museum

Hokusai: The Great Picture Book of Everything

 

2021.12.10 

가쓰시카 호쿠사이 전시회

  나는 일본 문화나 예술에 대해 많이 아는 편은 아니다. 어렸을 때 만화책을 좋아해서 한동안 빠져있었고 전공 때문에라도 일본 디자이너나 패션에 대한 공부를 했지만 그 관심이 넓게 확장되진 않았다. 나의 관심은 취향을 너무 탔던 게지..😅 비록 깊게 알지는 못해도 유명한 작품들은 조금 알고 있었기에 처음 이 전시회를 발견했을 때 꼭 작품들을 직접 보고 싶었다. 게다가 전시를 통해 일본 예술을 바라보는 영국의 시각이 어떤지도 느끼고 싶었다.

  가츠시카 호쿠사이(Katsushika Hokusai, 葛飾北斎)는 일본 에도시대에 활약한 목판화가로 우키요에(浮世繪; 무로마치 시대부터 에도시대 말기에 서민 생활을 기조로 하여 제작된 회화의 한 양식)의 대표적인 작가다.

  1760년 일본 에도(江戶; 지금의 도쿄)에서 태어난 호쿠사이는 5살 때 거울을 만드는 장인이었던 숙부 나카지마 이세(中島伊勢)의 양자가 된다. 하지만 후계자가 되지는 못하고 15살 무렵부터 책대본 가게에서 일하며 목판화 기술을 익힌다. 그리고 1778년, 그는 19살의 나이에 우키요에의 대가인 가츠카와 순쇼(勝川春章)의 제자로 들어가 본격적으로 그림을 공부한다. 슌로(春郞)라는 이름으로 데뷔한 그는 유명 작가의 삽화나 고급 매춘부 및 가부키 극의 배우를 그린 판화로 크게 인기를 얻는다.
  호쿠사이는 30대가 되면서 다양한 회화 기술을 배우기 위해 가츠카와파 이외의 여러 화파들을 섭렵한다. 가노파, 스미요시파, 도사파에서부터 한화(漢畵; 중국화)와 서양화에 이르기까지 그는 끊임 없는 배움과 변신을 시도했다. 일본, 중국, 서양의 화풍을 모두 습득한 그는 가츠시카파(葛飾派)를 완성한다. 또한 그는 우키요에의 전통적인 주제에서 벗어나 다양한 일상 생활이나 풍경의 이미지에 중점을 두었다. 이러한 변화는 우키요에와 호쿠사이의 경력에서 획기적인 사건이었다. 

  ‘있는 곳에 물들지 말 것’을 좌우명으로 삼았던 만큼 호쿠사이는 시대와 나이에 따라 끊임 없는 변화를 추구했다. 일생 동안 93번의 이사를 하고 호(号)도 30여 차례 변경했다. 대표적인 것이 ‘호쿠사이’이며 데뷔할 때의 이름 슌로 외에도 소리(宗理), 다이토(戴斗), 이이쓰(爲一), 만지([卍) 등이 있다. 
  1789년 그는 에도의 풍경을 연작으로 제작한 것을 계기로 풍경에 대한 진지한 관심을 나타낸다. 연극적인 소재와 화려한 그림을 거부하고 풍경에 자신의 예술가적 감수성과 상상력을 담아 표현했다. 1804년과 1815년 사이, 호쿠사이는 40대 중반부터 약 10년 동안 장편 전기 소설인 요미혼(読本; 에도시대 말기에 유행한 소설의 한 장르)의 삽화를 그리는 데 전력했다. 1811년, 50대 중반 무렵에는 <北斎漫画(호쿠사이 만화)>라는 소묘집을 통해 일상의 모습을 경쾌하게 그려냈다.
  그의 대표작이라 불리는 <神奈川沖波裏(가나가와의 큰 파도)>와 <凱風快晴(붉은 후지)>를 포함한 <富嶽三十六景(후카쿠;후지산 36경)>은 1830년대 초, 그의 나이 70대에 그린 것이다. 1834년부터 호쿠사이는 스스로를 가쿄 로진(画狂老人; 예술에 미친 노인)이라 칭하며 작업했는데 이 시기에 그는 그의 풍경화 그림책 중 걸작으로 여겨지는 또 다른 중요한 연작 <富嶽百景(후카쿠;후지산 100경)>을 그렸다. 
  임종 때 “하늘이 나에게 5년의 시간만 더 준다면 진정한 화가가 될 수 있을 텐데.”라고 말한 만큼 그는 그림에 대한 열정이 강했고 1849년 사망하기 전 끝까지 작업을 이어나갔다.

  호쿠사이의 많은 작품들은 지금까지도 많은 예술가들에게 영감이 되고 재해석, 재생산 되고 있기에 익숙했지만, 작가에 대해서는 잘 알지 못했다. 그의 작품들이 당시 '우키요에'라고 불리는 회화의 한 양식이었다는 것도 몰랐다. 이번 전시를 통해 죽기 전까지도 진정한 화가가 되기를 꿈꿨다는 그에 대해 좀 더 알게 되어 좋았다. 예술에 대한 작가의 열정과 에너지를 느낄 수 있었다.

작품이 보관되었던 상자

  자료들을 읽어 보니 그는 평생에 걸쳐 3만 점이 넘는 작품을 그렸다는데, 1839년 호쿠사이의 작업실에 화재가 나 많은 작품이 소실되었다고 한다. 물론 그는 화재 이후에도 끊임없이 작품을 그린 것 같지만, 지금 그 기록을 읽는 나로서는 귀한 문화재들이 불탔다는 이야기가 안타깝다. 어느 역사에나 있는 일이지만 매번 안타까워..

  전시는 작품이 보관되었다는 상자와 함께 시작되었다. 작품들의 크기가 이렇게 작다고 생각하지 못했는데, 아무래도 일상의 모습들을 담은 소묘집이라 휴대 및 보관에 용이한 크기였나 싶다. 이렇게 작은 크기에도 불구하고 작가의 작품들은 정말 세밀한 묘사를 가지고 있어 인상적이었다.

  호쿠사이는 풍경, 역사, 화조, 풍속, 배우 그림 등 다방면에서 재능을 발휘했다. 삼라만상 모든 것을 그림에 담는 것이 목표였던 그는 일생동안 그림, 스케치, 목판화, 그림책 등 3만 점이 넘는 작품을 남겼다. 그는 자연의 물상에 자신의 주관을 반영하여 그리는 독특한 화풍을 만들어 냈고 그의 인물화는 인물의 자태나 동작 등 활동적인 구성에 힘을 기울이며 표정이나 동작에 부합하도록 인물을 과장되게 묘사하는 특징을 가진다.
  그의 작품은 클로드 모네(Claude Monet), 빈센트 반 고흐(Vincent Van Gogh) 등 서양 인상파 및 후기 인상파 화가들에게 강렬한 인상을 남겼고 서양 예술계에도 큰 영향을 미쳤다. 프랑스의 인상파 작곡가 클로드 드뷔시(Claude Debussy)는 호쿠사이의 작품을 보고 영감을 얻어 교향시 <Le Mer(바다)>를 작곡하기도 했다.
  이처럼 독창적인 구성과 뛰어난 드로잉 기술을 자랑하는 호쿠사이는 예술 역사 상 위대한 거장 중 한 명으로 여겨진다.

다양한 동물들을 기록한 그림들

  전시 중 제일 흥미로웠던 동물 그림들. 정말 다양한 종류의 동, 식물들을 그린 그림들이었는데 사진이 없던 과거에는 이런 그림들이 기록적, 교육적 의미가 컸을 것 같다. 제일 마음에 들었던 건 고양이와 비익조였다.

가장 기대했던 유명한 작품 <가나가와의 큰 파도>

  가장 기대했던 작품이기도 하고 유명하기도 한 <神奈川沖波裏(가나가와의 큰 파도)>. 처음엔 이 작품이 유일무이한 한 개의 작품이라고 생각했는데, 여러번 발행된 목판화였다. 그래서인지 영국 대영박물관이 보관하고 있는 것만 세 점이고 여러 나라 미술관에서도 소장하고 있다고 한다. 그리고 발행된 시점에 따라 그림들이 조금씩 다른 점도 설명하고 있었는데, 그 차이를 비교하며 관람하는 것도 흥미로웠다.

  워낙 유명해서 실제로 보면 감흥이 떨어질까 싶었는데 작품은 여전히 멋있고 매력적이었다. 사람 보는 눈은 다들 비슷하다고, 오랜 시간 많은 사람들이 멋지다고 느끼는 작품은 그만한 가치와 의미가 있나 보다.

  여러 이야기들의 삽화들도 많이 볼 수 있었는데, 작품을 보다 보니 일본의 여러 애니메이션과 만화가 떠올랐다. 애니메이션 영화로 엄청 유명한 미야자키 하야오의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에서 본 것만 같은 인물들이 보이고, 풍경이나 사물의 묘사에 있어 다른 일본 예술에서 접했던 낯익은 부분들이 눈에 띄었다. 불상이나 용, 말, 산 등 한국의 전통적인 그림에서도 쉽게 찾을 수 있는 요소들이 다르게 표현된 것을 보니 각 나라의 역사 문화적으로 받는 영향이라는 게 강하다는 것, 그런 것이 그 나라만의 특징이 되고 개성이 된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lt; 周生、道術を使って雲を梯子に月輪をとる&gt;

  이 그림은 가난한 사람들을 돕기 위해 자신의 능력을 사용하던 도교의 스승인 주생이 어느 날 가을 달 축제 기간 중 불교 사원에 머무르는 동안 전설적인 달을 직접 볼 수 없다는 순례자들의 이야기에 구름 사다리를 만들어 달과 함께 내려오는 장면이라고 한다. 나는 종종 전시 이후 기억에 남는 작품을 남기기 위해 엽서를 사오는데, 이번에는 이 그림을 택했다. 고양이 그림과 살짝 고민했지만, 이 그림이 이야기를 담고 있어서 좋았다. 

가장 왼쪽이 한국인을 묘사한 그림이었다

  여러 나라의 사람들을 묘사한 그림들도 있었다. 이 그림 중 가장 왼쪽이 한국이었는데...살짝 갸우뚱..?🤔 작가의 화풍을 고려해도 옷차림이나 모자가 좀 다르지 않은가? 호쿠사이가 바라본 한국인의 (뒷)모습은 저러했나보다.

  훌륭한 작품들을 세밀하게 관찰하며 직접 볼 수 있는 이번 전시는 인상적이었다. 하지만 역시 마음 한켠으로는 한국에 대한 생각을 떨칠 수가 없다.

  영국에 온 이후, 나는 유럽에서 일본 문화와 예술이 일찍부터 알려져 있었고 그에 대한 관심과 선호도가 높다는 것을 경험했다. 물론 요즘엔 K-Pop, K-Drama, K-Food 등 음식, 문화 컨텐츠, 예술 등 한국에 대한 관심과 인기가 높아지고 있지만 개인적으로는 요즘 세계적으로 유행하는 한국의 문화가 대부분 현대적이고 상업적인 측면이 부각되는 것 같다는 의견이다.

  특히 일본의 전통 공예, 디자인, 예술 등이 장인의 문화로 존중받는 것을 보면 한국의 전통적인 문화를 엄청 좋아하는 나로서는 한국의 산수화나 민화, 풍속화, 공예품도 널리 알려졌으면 하는 아쉬움이 있다. 호쿠사이의 작품이 서양 인상파 예술가들에게 영향을 미쳤다는 시기가 19세기 후반일테니 확실히 일본과 서양의 교류가 빨랐음을 느낀다. 시간에 급할 것은 없고 한국의 문화도 요즘 물살을 탄 듯 유명해지고 있으니 한국의 전통적인 매력도 널리 알려지기를 바래본다. 곧 대영박물관에서 한국의 전통 그림들을 볼 수 있는 단독 전시회가 있기를🙏

전시 풍경

 

 


모든 예술 감상문은 해당 전시회 및 공연을 직접 관람한 후기로, 개인적인 감상 및 학습의 기록을 작성합니다.

해당 전시회 및 예술가와 작품에 대한 정확한 정보를 전달하고자 노력하고 있으며

촬영이 허용된 경우에 한하여 본인이 직접 촬영한 사진만을 사용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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