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06.30
한국에서 영국으로 돌아오던 비행기가 6월 9일이었다. 애매하게 평일에 돌아올 수 밖에 없었던 이유는 또 조던이의 친구 커플 결혼식이 그 주말에 있었기 때문이다. 파트너(=배우자, 짝꿍)의 친구들 행사까지 챙기느라 나의 한국 방문 일정을 조정해야 하는 형편이라니.. 이게 싱글이 아닌 커플의 삶인가. 아이러니하게 조던이는 그 반대의 상황을 단 한번도 겪은 적 없다는 것이 약간은 억울(?)하지만 앞으로 어찌될지 두고봐야지.
돌아오는 비행기 시간이 상당히 이른 시간이어서 하루 일찍 인천 공항 근처 호텔에서 묵었다(네스트 호텔이었나). 이 때는 여행 규제가 있을 때라 인천 공항이 상당히 한산했다. 그 와중에 외로이(?) 돌아다니던 로봇을 보고 즐거워했던 조던이.
그리고 돌아온 주말엔 앞서 말했듯 조던이 친구 커플의 결혼식이 있었다. 5월에 있었던 결혼식과 달리 런던 외곽 지역에 위치한 멋진 장소에서 열린 결혼식이었는데, 어떻게 보면 이게 전형적인 영국 스타일의 결혼식이라고 한다. 영국에서 대부분의 커플들은 도심이 아닌 외곽 지역에 멋진 성이나 성당/교회, 저택 등에서 결혼식을 올리는 것을 선호한다고 한다. 그리고 늦은 시간까지 파티를 즐기고, 이렇게 외곽에서 결혼식이 열리는 경우에는 근처에 숙소를 잡아 숙박을 하는 경우도 있다고(우리는 이 때 숙박까진 하지 않았지만 1박 머무르는 친구들도 많았음).
이 날 결혼식을 올린 커플들처럼 식장에도 아기자기한 분위기가 가득했다. 아무래도 외곽에 위치한 장소 탓인지 rustic한 느낌이 뿜뿜했는데, 많은 사람들이 예쁜 결혼식이라고 감탄했다. 식장에 많은 장식을 한 것도 아닌데(우리나라 예식장은 꽃 장식이나 조명이 화려한 반면) 그 분위기가 따뜻하고 자연스러워서 확실히 다른 스타일이라고 느껴졌다. 이런게 장소의 힘인가 싶기도 하고.
식사도 맛있었다. 이번에는 3코스 메뉴로 스타터와 디저트가 나눠먹는 스타일로 제공되고 메인 메뉴는 각자 선택할 수 있었다. 외국엔 베지테리언/비건은 물론이고 알러지 등 몇몇 재료들을 못 먹는 경우가 많아서인지 논(non)비건/비건 메뉴는 기본적으로 나뉘어져 있고 각 손님 개인에 따라 따로 식사를 준비해주는 경우도 있었다. 이런 부분에서 상대적으로 한국은 아무래도 이런 다양성이 적고(요즘엔 비건/베지테리언이 많이 늘어나지만..) 결혼식 메뉴도 대부분 통일되는 경우가 많은데, 이런 부분에선 그 차이가 신선했다.
결혼식이 열린 장소의 넓은 공원도 예뻤다. 야생 토끼인지 토끼들도 뛰어다니던데 영국에서 야생 토끼는 처음 봐서 신기했다. 친구들이 토끼를 발견하곤 조던이에게 엄청 알려주던데.. 예전에 한번 다 같이 토끼를 우연히 본 적이 있는데 그 당시 조던이가 엄청 좋아했다고 한다. 사실 이런 이야기를 전혀 모르고 조던이에게 내가 깜짝 선물로 토끼 문양 넥타이를 사줬는데, 그 넥타이를 이번 결혼식에 하고 갔더니 친구들이 우연이 신기하다며 이야기했다. 우연히 토끼 문양 넥타이를 사준 나도 신기하고 결혼식 장소에 토끼가 있던 것도 신기하고.
한국에 다녀올 때면 늘 엄마표 밑반찬들을 바리바리 싸온다. 물론 많이 싸올 수는 없지만 그래도 조금이라도 더 싸주려는 엄마의 마음을 느낄 수 있다. 자주 해주지도 못하니 좋아하는 반찬들만 챙겨주고 싶어하는 엄마의 마음이나, 괜히 엄마가 고생하는 것 같아 말리는 딸 마음이나.. 괜히 찡해진다.
해외 생활하면서 엄마 반찬을 이렇게 몇 번 가져와 먹다보니 엄마는 싸주는 노하우가 생기고 나는 최대한 아껴먹으면서도 상하지 않게 모든 반찬들을 해치우는 노하우가 생겼다. 지금 다시 사진을 보니 또 엄마 반찬이 그리워진다. 아직 내가 따라할 수 없는 엄마의 맛. 평생 따라할 수 있을까. 아, 갑자기 배고파.
하루는 우리가 사는 동네 근처에 산책로에 갔다. 어느 날 조던이가 친구들을 만나고 오더니 "숨겨진 산책로를 발겼했어!"라며 나를 데려갔다. 상점과 레스토랑이 가득한 동네 메인 거리에서 숨은 골목을 찾아 들어가니 이런 산책로가 있었다. 나름 재미있었던 산책.
코로나 이후 처음으로 영화관을 갔다. 이 때가 6월 18일, 한참 탑건 2 <Top Gun: Maverick>이 개봉하고 주변 친구들이 재미있다고 추천을 몇 번이나 들은 때였다. 사실 난 톰 크루즈의 전설적인 리즈 시절이라는 탑건 1을 본 적이 없어서 그 후속작에도 별 감흥이 없었는데, 역시 남자애들에겐 다른가. 조던이 친구가 "탑건 2는 1을 안 봤어도 괜찮아, 스토리 이해하는데 어려움도 없고 재미있게 볼 수 있을 듯!"라며 강력 추천한 부분도 있고 조던이의 설득+소망에 힘입어 보게 되었다.
영화를 보고 느낀 바는, '와 역시 헐리우드가 돈 팍팍 써서 만들면 재미 없을 수가 없구나'와 '톰 크루즈는 아직 주인공 안하고는 영화 안 찍고 싶나보네'라는 것 정도?ㅋㅋㅋ 전형적인 스펙타클 헐리우드 영화+톰 크루즈의 믿고 보는 액션이 결합됐으니 그 시너지란. 스토리는 너무 예상 가능할 정도로 빤한 전개였지만, 이런 영화는 굳이 어렵고 꼬아대는 내용이 필요 없는 것 같기도 하고? 재미있게 잘 봤다.
다음에 기회가 되면 탑건 1도 보기로 했는데, 아직은 엄청 막 궁금하고 땡기진 않음🤣 나에게 톰 크루즈 리즈 시절은 미션 임파서블 1, 2로도 충분하기도 하고 괜히 또 그 리즈 시절을 보며 세월의 야속함을 느끼고 싶지도 않아서..
이 날이 조던이 생일이 다가오던 주말이어서 영화를 본 후 나머지 일정은 내가 쫙 짰다. 연애 3년 차가 되니 서프라이즈를 위해 엄청 공을 들이진 않지만(안 좋은건가?🤔) 즐겁고 특별한 이벤트를 함께하는 시간을 보내고 싶은 마음은 언제나 같다.
첫번째 이벤트는 방탈출! 한국 갔을 때 조던이가 방탈출을 해보고 싶어해서 두어번 정도 했는데, 아무래도 언어의 장벽도 있고 난이도가 어려워서 한 번도 성공하지 못했다. 계속 실패를 겪다보니 우리가 멍청한가, 방탈출을 할 만큼 센스가 없나 자신감이 쭉쭉 내려가다 보니 "한번 성공을 해보자!!"며 여러 검색을 걸쳐 런던의 방탈출을 찾았다.
▪︎ clueQeust - Escape Room London
Address : 169-171 Caledonian Road, London N1 0SL
Open : Monday - Sunday 10:30 ~ 22:30
Website : https://cluequest.co.uk/
완전 초급 레벨을 찾아서인지 한국 방탈출에 비하면 어렵지는 않았지만 여전히 아슬아슬했다. 힌트 기회가 제한적인 한국에 비해 영국은 아주 후하게 묻는 힌트를 다 알려줬다😂😂 막판 되서 우리가 엄청 어려워하고 있으니까 그냥 막 알려줌ㅋㅋㅋㅋㅋ 그래서 성공했나?
아이들도 즐기는 수준(?)이라 그런지 아니면 그저 테마 탓인지 게임을 설명하거나 안내해 줄 때 직원의 서비스가 되게 친절하고 유쾌해서 30대 갓 접어든 우리로서는 엄청 오글거리면서도 괜히 즐겁고 그랬다. 생일 기념으로 왔다고 하니 직원이 서비스로 사진도 찍어 마그넷 인쇄도 해줘서 좋았다.
두번째 이벤트는 저녁 식사! 방탈출 후에 예약해 둔 식당으로 갔다. 생일날엔 고기 한번 썰어줘야지!!😚 나름 평점 좋고 유명한 스테이크 전문점이라고 해서 데려갔는데 생각보다 너무 파티 분위기 뿜뿜한 바/DJ가 있어 조금 당황스러웠다. 내가 예상한 분위기가 아니었지 뭐야. 조금 아늑하고 프라이빗한 느낌을 기대했는데 생각보다 규모도 엄청 크고 시끌벅적했다. 그래도 그릴에서 구워주는 스테이크는 맛있었다.
▪︎ Sophie's (Soho)
Address : 42-44 Great Windmill Street, London W1D 7NB
Open : Monday - Tuesday 12:00 ~ 23:00 / Wednesday 12:00 ~ 00:00 / Thursday - Saturday 12:00 - 01:00
Sunday 12:00 ~ 10:00
Website : http://www.sophiessteakhouse.com/soho
분위기는 좀 예상 밖이었지만 조던이는 행복하게 그리고 맛있게 먹어줬고 사주는 나로서는 그 모습이 기분 좋았다. 그리고 좋아하는 디저트 있다고 신나서 주문했는데 식당에서 또 생일이라도 촛불 챙겨줌ㅋㅋㅋ
이후에 펍이나 바 가서 술 마시며 나름의 생일 뒤풀이(?)를 했던 것 같은데 딱히 사진은 없네😂
이건 어느 날 태국 음식이 땡겨서 동네 근처를 검색해 찾아간 곳. 영국엔 은근 펍에서 태국 음식을 파는 경우가 종종 있는데 그 음식 맛이 나쁘지 않다. 정확하게 어떻게 운영되는지는 알 수 없지만 대체로 가격도 괜찮고(근데 가끔 너무 저렴한 경우엔 현금만 요구하는 경우도 있는데 현금 사용이 현저히 줄어든 코로나 이후론 어떤지 모르겠다) 맛도 좋아서 맥주 한잔 마시며 간단하게 식사하기 좋다. 게다가 뭔가 전형적인 영국 펍 분위기의 건물에서 태국이나 베트남 음식을 즐기는게 색다르기도 하고 신선하달까. 지금까지 이런 펍을 대략 3~4 곳 정도 가봤는데 다 좋았다.
▪︎ The Hemingford Arms
Address : 158 Hemingford Road, London N1 1DF
Open : Monday - Sunday 12:00 ~ 23:00
Website : https://www.hemingfordarms.com/
어느날 문득 발견한 아보카도 싹. 아보카도 키우기가 나름 쉽다고 해서 몇 번을 시도했는데 사실 수경재배 방식으로 싹을 틔우는 것은 몇 번 실패했었다. 그러곤 그냥 마지막이다, 라며 무심히 리차드 옆구리에 살짝 박아놨는데 이렇게 쨔잔, 싹이 텄다. 씨앗에서 싹 틔워보는 것은 처음이라 너무 신기했다. 게다가 이 전에 3주 가량 한국에 간다고 물도 잘 못 줬고 한국 다녀온 이후로도 별로 주목하지 않던 때였는데.. 그래서 발견도 꽤 늦게 한 셈이라 정확히 언제 어떻게 싹이 터서 이만큼 컸는지는 알 수 없다능🤣
여름이 되면 내 몸은 토마토를 엄청 찾는다. 물론 여름 토마토가 제일 맛있기도 하지만 이 시기가 되면 저절로 토마토 마리네이드가 생각나고.. 괜히 토마토 많이 먹고 싶고.. 이번엔 에어룸 토마토라는 것을 시도해 봤다. 한국에서 쉽게 찾을 수 있는 다양한 조개나 해산물, 버섯, 고구마 등을 영국에선 찾기 어렵지만 반대로 한국에선 귀한 수입 야채나 과일들이 영국에선 흔한 경우가 많다. 에어룸 토마토도 그런 편. 일반 토마토에 비해 저렴한 편은 아니지만 슈퍼에 가면 쉽게 찾을 수 있어 좋다. 그냥 토마토를 숙숙 썰어서 치즈를 곁들이기도 하고, 없으면 올리브 오일에 후추+소금한 더해도 충분히 맛있는 샐러드가 된다. 이 때 한참 이렇게 토마토 샐러드를 많이 해먹었다.
그리고 멜론+프로슈토 조합은 내 최애 안주랄까. 와인이나 샴페인 마시면서 괜히 분위기 내고 싶을 때 종종 해먹는다. 별 요리 스킬이 필요하지 않는 간단한 메뉴들이지만 이렇게만 먹어도 배가 엄청 부르다.
조던이의 생일이 지나고 열흘 뒤, 내 생일엔 조던이가 계획한 이벤트가 있었다. 무엇을 기획했는지 엄청 비밀로 꽁꽁 숨기더니 알고 보니 스파+커플 마사지를 예약했더라. 영국에서 처음으로 스파+마사지를 즐기는거라 신기하기도 했고 뭔가 어색하기도 했지만 나름 즐거운 시간이었다.
스파+마사지가 조금 딜레이가 있어 저녁 예약을 해둔 조던이는 마지막에 조금 마음이 급했다😂 스파랑 레스토랑을 멀리 안 잡았다고 하더니 걸어보니 은근 거리가 꽤 있었음ㅋㅋㅋㅋ 헥헥 거리면서 급하게 걷는데 딱히 레스토랑이라고 할 곳이 없어서 대체 어디냐고 하니 보이는 곳이라고 했다. 그 때 눈에 보이는 것은 오직 우뚝 솟은 샤드 뿐이었던..
한국의 롯데타워와 비슷하게 생긴 샤드는 런던에서 가장 높은 건물로 전망이 좋다. 난 예전에 친구랑 야경 구경하겠다고 칵테일 마시러 온 게 전부였는데, 조던이는 식당 예약을 해줬네. 여러 레스토랑이 있지만 우리가 간 곳은 퓨전 중식당인 Tīng 이었다.
▪︎ TĪNG
Address : 31 St Thomas Street, London SE1 9QU
Open : Monday - Sunday 7:00 ~ 22:15
Website : http://www.ting-shangri-la.com/
다양한 메뉴를 조금조금씩 주문해 다 같이 나눠먹었다. 장소가 장소니만큼 가격이 비쌀 것은 예상했지만 가격 대비 맛이 인상적이진 않았다🤣 아, 근데 저 소고기 타다키는 쫀맛쓰👍 고급진 와규를 쓴다더니 엄청 부드럽고 소스와 어울림도 좋았다. 퓨전 중식이라 좀 신기한 메뉴들도 많았고 쉽게 먹을 수 없는 메뉴들을 즐길 수 있어 좋았다. 게다가 저 예쁜 야경을 보면서 먹는 식사라니, 그저 좋잖아. 이 음식값엔 전망 값도 포함되어 있는거지. 멋진 장소를 예약해 준 조던이에게 고마웠다.
식사를 천천히 마치고 디저트가 나올 때까지 이동하며 전망을 마음껏 구경해도 된다고 해서 레스토랑을 크게 빙 돌면서 여러 방향에서 구경했다. 특히 노을 질 때는 너무너무 예뻤다.
이렇게 조던이와 나의 생일이 함께 있는 6월도 기분 좋게 마무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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