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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상 기록장/2021년

[영국생활] Day+1735 별 일 없는 주말

by kyeeunkim 2021. 6. 14.

2021.06.13

  이번 주말은 특별한 일이 없는 주말이었다. 또한 남자친구가 금요일부터 월요일까지 3박 4일로 친구들과 여행을 떠났기에 오랜만에 홀로 있는 주말이었다.

  나는 비록 영국 생활 5년차지만 생각보다 친구가 별로 없다. 나의 영국 생활은 학업이 메인이었기 때문에 친구들은 학교에서 만난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그리고 이것이 유학 생활의 한계이기도 한데, 학교에서 만난 외국인 친구들과 타국에서 인연을 이어가기란 쉬운 일이 아니란 것. 특히 나의 전공은 3학년에 인턴십 과정을 선택할 수 있는데, 그것을 선택하지 않는 경우 나와 1년의 과정 차이가 생기면서 친한 친구들 중 대부분이 먼저 본국으로 돌아갔다. 또한 졸업 이후에는 비자 문제로 더욱이 영국에 머무는게 쉬운 일이 아니다. 사실 비자 문제 뿐만이 아니라 사람 인연이라는 것이 그런 것 같다. 한국에서도 대학교 친구들이 모두 진한 인연으로 남아 있지 않은 것처럼 영국에서도 친구들과의 인연은 여러가지 상황으로 달라진다. 특히 넓고 많은 관계보다 좁고 깊은 관계를 선호하는 나의 성격 영향도 컸다. 아무튼 다행스럽게도 인생의 베프라고 할 수 있는 남자친구를 만난 이후로는 졸업 후 타국 생활도 나쁘지 않다고 느껴왔는데, 이번과 같은 경우에는 조금 심심하긴 하다. 남자친구를 혼자 두고 세 달을 한국에 다녀온 내가 4일 가지고 뭐라 할 말은 없지만 말이다.

  그래도 이번 주말에 혼자 있는 날들을 기회 삼아 다음 주말에 있을 남자친구 생일 서프라이즈 선물을 사려고 했는데, 어제 그 시작부터 계획은 꼬였다. 오랜만의 나 홀로 외출에 내가 좋아하는 옷들로 스타일링을 쫘악하고 내가 거의 3년을 살았고 학교 캠퍼스가 있던 동네 Shoreditch로 나갔다. 그런데 아, East London의 힙스러움은 내가 4년을 학교 다니면서 접했지만 적응이 안된다. 그래서 내가 더욱이 패션 스쿨에서 친구들을 더 못 사귄 것인지도 모른다. 너무 힙스러워. 아무튼 그 부적응의 느낌을 이겨내며 내가 목표했던 단 한 곳, Sunspel 매장으로 향했는데, 남자친구가 딱 골라놨던 그 옷만 없다는 거다. Dusty Green, 색깔도 딱 정해져 있는데. 인터넷 주문도 고민했었지만 그래도 나가서 사오자, 라는 마음으로 몸을 움직인 것인데 매장에 없으니 꽝. 30분이 넘게 버스를 타고 가서 약 10분만에 끝나버린 쇼핑에 목적을 잃어버린 나는 한동안 황망하게 계획되지 않은 다음 목적을 찾아 헤매었다.

  아, 거기다 나를 좀 더 작게 만드는 부분이 있었는데, 하루 확진자가 대략 8000명까지 다시금 늘어나는 상황에도 영국인들은 실외에서 마스크를 절대 쓰지 않는다는 거다. 나는 대중교통을 이용하고 쇼핑을 위해 가게 실내로 들어가야 해서 굳이 그 사이 사이 걸어서 이동할 때 마스크를 벗지 않는데, 영국의 대부분의 사람들은 굳이 꼭 마스크를 써야 하는 경우가 아니면 절대 쓰지 않는다. 게다가 실외에서 코로나가 전파되는 경우는 많지 않다고 생각해서 그런 것 같기도 하다. 날씨가 더워지는 여름에 마스크가 답답하게 느껴지는 것은 나도 이해하는 것이지만, 그래도 쓰기를 원하는 나의 입장에서는 다른 사람들의 그런 자세가 조금은 불편하게 느껴진다. 미국에 비해 영국에서는 아시안 혐오가 심하지는 않아 다행이지만, 그래도 최근 코로나 상황이 심해지면서 가끔 벌어지는 인종 차별적인 시선 때문에 그 동안에도 영국인 남자친구랑 다닐 때 비교적 안전하다고 느꼈던 것 같은데, 오랜만에 혼자 나와 나 혼자 마스크를 쓰고 지나가자니 조금은 눈치가 보였다. 물론 그래도 끝까지 마스크를 쓰긴 했다, 내 안전 포기 못해.

  Sunspel에서의 쇼핑 실패 이후 옷은 인터넷 주문을 하기로 하고 다음으로는 Aēsop 매장으로 갔다. 바로 집으로 돌아가기엔 여기까지 나온게 너무 아까웠기 때문이다. 남자친구가 스킨케어를 엄청 열심히 하진 않지만, 종종 나의 피부를 부러워하며(그렇게 좋지도 않은데) 나의 스킨 케어 과정을 따라하고 싶어한다. 작년 크리스마스 때도 스킨케어 세트를 사줬는데, 나름 좋아하며 그저 세안 후 로션만 바르던 과정에서 다른 과정을 조금 더 추가하며 스킨케어를 즐겼던 것 같다. 그 때 선물 받은 스킨 케어를 다 썼다며 슬쩍 말을 흘리기에 이번에는 Aésop을 선택해봤다. 아니, 나도 못 쓰는 브랜드인데. 하지만 언제나 선물은 좋은 걸 해주지. 이렇게 좋은 브랜드들을 알려줘야 그가 내 선물을 할 때도 좋은 브랜드로 돌아오지 않을까, 하는 나의 큰 그림이다, 후후. 그렇게 스킨케어 제품 두 가지를 구매하고 돌아오는 길에 작은 소품샵에 들러 생일 카드도 샀다.

  정말 런던의 짧은 여름이 돌아와서 날씨는 무척이나 좋았고, 오랜만에 걸어 본 Shoreditch의 거리는 여전히 활기가 넘쳤다. 오랜 락다운이 풀려서 더욱 그런가, 그동안 외출을 하지 못했던 한이 맺힌 사람들이 기회만 되는만큼 더욱 나와 친구, 가족들을 만나는 듯 하다.

  집으로 돌아온 이후에는 구매하지 못했던 옷도 주문하고, 다른 생일 선물로 요리책도 샀다. 레시피 책을 주면 좀 더 다양한 요리들을 만들어 주겠지. 마지막 선물로 백팩을 생각 중인데, 무슨 스타일이 좋을지 2가지를 골라 놓고 엄청 고민 중이다. 어울릴 것 같은 스타일과 좋아하는 스타일이 달라서 시간이 된다면 내일 일을 마치고 돌아오는 길에 한 군데 매장에 들러 실물로 직접 볼 계획이다. 이후엔 생일 파티를 위한 소품들을 구입해야 하는데, 목표 중 하나인 숫자 헬륨 풍선을 살 수 있을지가 관건이다. 아무래도 같이 살다보니 이런 부분의 서프라이즈가 어려운 것 같다. 미리 사서 어디 숨겨 놓지를 못하니 최대한 가까운 날이나 당일에 구입해야 하는데, 100% 생일 당일에는 같이 다닐 것이기 때문이다. 게다가 백신 접종을 생일날 아침에 한 이 남자를 우짠댜. 단 걸 엄청 좋아하는 스타일이 아니어서 케이크도 작은 컵케이크를 살까 하는데 어디가 좋을지도 모르겠구, 내가 아는 맛이 보장된 카페는 너무 멀다. 나와 남자친구는 생일이 10일 차이여서 요즘 서로 배달 오는 생일 선물을 감추느라고 고생이다.

 

  나름의 바쁜 토요일을 보내고 오늘은 조금 한량의 하루를 보냈다. 원래는 청소와 여름 옷정리를 하는 것이 목표였는데, 청소는 했는데, 그 나머지는 못했네? 게다가 내일도 스튜디오에 나가서 패턴 작업 마무리를 해야 하기 때문에, 급한 정리만 마무리해 놓고 일찍 자야할 것 같다. 게다가 내일은 BRP replacement visa appointment 예약일이다. 이것도 참 긴 과정의 할 말이 많은 사건이지만, 그래도 내일 그 기나긴 과정의 마지막이라 제발 잘 끝나기만을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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