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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상 기록장/2021년

[영국생활] Day+1750 밀린 일기들

by kyeeunkim 2021. 6. 29.

2021.06.28

  한동안 일기를 쓰지 못했다. 목요일부터 시간이 순식간에 흐른 것 같은 느낌이랄까. 더 늦기 전에 바쁘게 지나갔던 하루들의 기록을 남겨볼까 한다.

  우선 지난 주에는 근무를 3번이나 나갔다. 목, 금에 일하기로 일정이 정해진 듯 했는데, 화요일에 Shorts 패턴을 마무리하는 일로 나가게 되었다. 그래서 당연히 그 주 근무는 목요일로 끝날 줄 알았는데, 새로운 Tailored Trousers 패턴을 맡은 목요일 업무 시간이 끝나갈 즈음 디자이너가 "내일 시간 되면 와서 계속 할래?"라고 하여 어, 어..응 하며 금요일도 일하게 된 것이다. 사실 금요일에 저녁 레스토랑을 예약한 시간이 7시라 퇴근하면 시간이 조금 빠듯할까 해서 고민했지만 이런게 직장인의 삶이겠거니 했다. 어차피 퇴근 시간은 칼 같이 지킬 수 있어 충분히 조율이 가능할거라 생각했고 더 일할 수록 더 급여를 받는 프리랜서에겐 일을 더 해도 덜 해도 나쁠 것은 하나도 없기 때문이다. 아, 물론 나의 머릿 속 한 구석을 복잡하게 만드는 일이 하나가 더 있긴 했다. 바로 Lacoste에서 주문했던 남자친구 생일 선물. 결국 수 많은 문의와 노력에도 불구하고 배송지 주소를 수정할 수는 없었고 결국 이전에 살았던 concierge 메일 주소로 사정을 설명하고 택배가 배송되면 몇 일만 맡아달라고 목요일에 부탁을 해두었다. 고맙게도 'No problem!'이라고 답장을 바로 받을 수 있었고, 배송 예정일이었던 금요일, 시간이 가능하면 바로 찾으러 갈 생각이었다. 그런데 금요일 출근을 하게 되면 그럴 수가 없게되니 나의 실수로 인해 다른 사람에게 폐를 끼치게 될까봐 마음 한 구석이 불편했던 것이다. 결국엔 금요일에 출근을 했고 Tailored Trousers 패턴을 마무리했다. 6시 30분에 땡하고 퇴근 후에 바로 예약해 둔 레스토랑 SMOKESTAK으로 향했고 딱 맞게 7시에 도착할 수 있었다. 그리고 금요일의 cheating time이 시작되었지. Crispy ox cheek with anchovy mayo / Lamb merguez sausage with chilli sauce / 30-day dry aged beef rib 이렇게 세 가지를 주문했는데, 너무 맛있었다. 물론 모든 메뉴가 야채 하나 없이 나와서 죄책감에 뒤늦게 Fennel + herb salad with citrus dressing도 주문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Dark chocolate cremoso with honeycomb 디저트까지 완벽했다. 이후 갑작스럽게 배가 아파진 나의 몹쓸 컨디션으로 2차를 가지 못하고 집으로 돌아올 수 밖에 없어 아쉬웠지만 그래도 오랜만의 외식으로 즐거운 저녁이었다.

▪︎ Smokestak
Address : 35 Sclater Street, London E1 6LB
Open : Monday - Friday 12:00 ~ 15:00, 17:00 ~ 23:00 / Saturday 12:00 ~ 23:00 / Sunday 12:00 ~ 22:00
Website : https://smokestak.co.uk/

지난 주의 먹부림 (1) 연어 야채 파피요트, 간편해서 요리하기 귀찮을 때 자주 해먹는 요리 (2) Smokestak 에서의 고기 파티, 다시 봐도 맛있어 보인다
(1) 양배추 오믈렛, 양배추와 당근만 왕창 넣어 만들었다 (2) 갖은 재료 다 넣어 만든 영국에서의 첫 부대찌개

  그렇게 working과 eating의 금요일이 끝나고 요 몇 주 너무 외식이나 배달 음식으로 식단을 채운 느낌에 약간의 죄책감이 들었다. 지난 식단을 되돌아 봤을 때 초록초록한 느낌이 덜하면 내 몸에 죄 짓는 느낌. 물론 목요일 저녁은 연어와 야채 파피요트를 먹기도 했지만, 조금 더 야채의 비율을 높여야겠다는 생각에 토요일 점심으로는 양배추 오믈렛을 만들었다. 남자친구도 함께 먹고 싶다고 해서 많이 만들다 보니 양 조절에 조금 실패했나 싶지만(양이 많아지면 간 조절에 취약해진다.) 그래도 둘이서 커다란 양배추 오믈렛을 맛있게 잘 나눠 먹었다. 근데 이미 저녁 메뉴가 부대찌개로 정해져 있었다는 것은 함정. 평소에도 부대찌개를 엄청 찾는 편은 아닌데, 가끔 예능을 보다 보면 외국인들이 좋아하는 한국 음식 중 하나로 소개되는 경우가 많아서 남자친구 입맛에 어떨지 궁금했다. 그래도 양파, 파랑 두부도 많이 넣고 만들면 좀 덜하지 않을까 하는 마음과 함께 만들었지만 나의 큰손은 소세지랑 햄도 많이 넣어버렸다, 하하. 내가 매콤한 찌개류를 만들었을 때 다 좋아했던 남자친구는 이번 부대찌개도 엄청 마음에 들어하며 잘 먹었고 그렇게 끓인 부대찌개로 일요일 점심까지 잘 먹었으니 좋은거 아닐까 싶다. 잘 먹고 잘 사는게 중요하지. 타지(나만 타지이긴 하지만)에 살면서 먹는걸로 서러우면 안돼.

 

  토요일 오전부터는 조금 바빴다. 금요일에 픽업하지 못한 택배를 받으러 가야했기 때문이다. 원래는 오후에 남자친구가 한국어 레슨이 끝나면 같이 갈까 했지만, 주말마다 영국은 참 무슨 일 보기가 애매해지는 이유가, 모든 업무 종류 시간이 빠르기 때문이다. 내가 작년에 그 플랏에 살 때만 해도 concierge의 주말 근무 시간이 엄청 짧아서 시간을 놓치면 택배를 받을 수가 없었다. 코로나 락다운 영향도 있었지만 일요일엔 아예 근무하시는 분이 없고 토요일에도 점심 시간 전에 퇴근을 했던 것으로 기억한다. 그래서 오전에 시간이 될 때 나 혼자 후다닥 택배를 받아오기로 했다. 다만 문제 없다며 택배가 오면 맡아주겠다던 직원 분은 평일 근무만 하시던 분이라 다른 직원이 있으면 모든 상황을 다시 설명해야 하고 혹시나 오해가 생겨 문제가 생길까봐 걱정을 했는데, 생각보다 별 문제가 없었다. 특히 나와 연락을 했던 평일 직원 분이 택배 리스트에 'ex'라고 표시를 해두어서 좀 더 수월하게 택배를 픽업할 수 있었다. 너무 고마우신 분, 다음에는 제가 실수 안할게요 정말로.

  이후 남자친구의 한국어 수업이 끝나고 우리는 Hamstead Heath로 산책을 갔다. Hamstead 지역은 내 남자친구가 런던에서 좋아하는 지역이기도 한데, 어렸을 때 살았던 동네이기도 하고 여전히 많은 친구들이 근처에 살고 있어서 그런지 시간만 있으면 가고 싶어 한다. 난 별 감흥이 없지. 나에겐 런던은 그냥 지역마다 다 새롭고 특색이 있어서 각자 장, 단점이 있다고 느껴질 뿐이다. 남자친구는 진정 런던에서 태어나고 자란 런더너여서 지역마다 유년 시절의 동네, 고향 같은 느낌이 다를지는 모르겠지만 나는 심지어 한국에서도 그런 감흥이 없기 때문에 큰 공감을 하지는 못한다. 아무튼 이 동네에는 Hamstead Heath라는 엄청나게 큰 공원이 있어서 산책하기엔 정말 좋다. 가끔은 정말 숲 같이 느껴지는 부분도 있어서 도심 속에서 쉽게 접할 수 있는 자연이라고나 할까. 많은 사람들도 자주 찾고 날씨가 좋은 날에는 운동하는 사람 뿐만 아니라 공원에서 파티를 하는 사람들도 종종 볼 수 있다.

Hamstead Heath, 숲 속을 산책하는 기분이다

  공원을 실컷 산책하다가 동네 구경도 잠깐 했다. 요즘 종종 남자친구와 같이 미래 계획을 이야기하다 보니 집 사는 문제로 동네들도 이야기하곤 하는데 남자친구는 여력만 되면 Hamstead나 북동부 런던에 살고 싶다고 하지만, 나는 가끔 교통이 더 불편해 보여서 엄청 우선 순위라고 느껴지진 않는다. 물론 Hamstead는 잘 사는 사람들이 그득그득한 비싼 동네라 우리 여력에 가능하지도 않겠지만, 당분간 면허를 딸 계획도 없고 바로 정말 영국 집 같은 집을 살 것 같지 않은 우리에게 적절한 동네는 아닌 것 같다. 그래도 이런 동네에 오면 영국다운 집을 볼 수 있어 좋다. 산책을 다녔던 그 거리들에는 집들이 대부분 세대별로 나뉘지 않은 단독 집처럼 보여서 더 좋아 보였다. 영국에서도 다양한 형태의 집을 볼 수 있는데, 생각보다 우리가 쉽게 상상하는 House는 런던에도 많지 않은 것 같다. 특히나 주택 수요가 높아지면서 겉으로 보기엔 일반 House인데 정작 현관문을 열고 들어가면 각 층마다 세대가 나뉘어진 집들이 많기 때문이다. 내가 런던 3년차 인턴 생활 때 살았던 집도 그런 식이었는데, 밖에서 볼 때는 한 집 같지만 현관문을 열고 들어가면 1층, 2층, 3층으로 각 세대가 나뉘어 있었다. 아, 물론 지하층도 세대가 따로 있었지. 분명 과거에는 한 세대만 사용하던 3층짜리 집이었겠지만, 수요가 늘어나면서 층별로 세대를 나눠 세를 주고 있는 형태로 바뀐 듯 하다. 그리고 영국도 분명 가족 형태가 변화했을테니 방이 7~8개가 되는 집을 필요로 하거나 감당할 수 있는 경우가 많지 않을 것 같다. 새로 개발되는 지역에는 전통적인 집보다는 대규모의 모던 플랏이 지어지는 경우가 많고, 도심 가까이에도 플랏 형태의 건물들이 꽤 있지만(현재 우리가 살고 있는 플랏도 그런 형태) 더 먼 미래를 생각한다면 제대로 된 단독 집을 꿈꾸게 되는 것 같다. 영국에서는 플랏은 대부분 방 3개 이하의 공간이 많은 것 같고 어떻게 보면 플랏 건물들은 이웃들끼리 더 가깝게 벽을 마주하는 형태라 오랜 시간 거주할 공간은 아니라고 느낀다. 나의 드림하우스는 방 4개에 거실, 부엌, 화장실 1~2개가 있는 집이지만 그것은 먼 미래까지 포함한 목표고 당장 가까운 미래에는 위치가 좋은 모던 플랏이 가장 적절한 대상이 아닐까 한다. 하, 집 이야기는 한국에서나 영국에서나 복잡한 문제다. 한국에서는 '영국 집'이 너무 멋있다고 느껴졌는데, 정작 실제로 살아보니 현실과 꿈은 너무 다르고, 가끔은 집 내부에서 계단으로 2~3층을 이동해야 하는 점은 불편하기도 해, 되려 영국에서는 단층으로 넓은 '아파트'가 그리워질 때도 있다. 물론 깊게 들어가면 끝이 없는 장, 단점의 비교가 계속되겠지만. 어쨋든 집 구매는 곧 겪어야만 하는 현실의 문제이기도 해서 앞으로 더 많이 공부하고 조사해서 차근차근 계획을 세워볼까 한다.

귀여운 Mini classic cooper

  동네 산책을 하며 완전 귀여운 Mini classic cooper도 발견했다. 내 드림카가 요기잉네? 물론 난 빈티지 클래식은 원하지 않고(단호) 그냥 미니 쿠퍼가 좋다. 나중에 영국에 살면서 운전 면허도 따고 자동차를 살 수 있을 때를 상상하는데, 그 때마다 미니 쿠퍼를 떠올린다. 아니면 나는 정말 우락부락한 suv 자동차를 좋아하는데, 골목이 좁고 작은 영국에서는 큰 suv 자동차를 떠올리면 너무 매치가 안되는 느낌이랄까. 언제 올 미래이려나. 남자친구는 자동차와 운전에 전혀 관심이 없어서 좋은 차를 봐도 별 감흥이 없고, 나에게 나중에 운전 면허를 따면 태워달라는 소리만 하고 있으니 그를 나중에 어떻게 구워 삶아서 같이 운전을 하게 만들어야 하나 고민이다. 나도 자동차에 관심이 큰 것은 아니지만 운전은 할 수 있으면 좋은 능력이라고 생각하는데다 이번에 한국 갔을 때 운전을 하며 제주도 여행을 해보니 그렇게 편할 수가 없어서 좋았는데 남자친구는 아직 답답한게 없다. 사실 난 운전 잘하는 남자가 이상형인데다 어떻게 보면 필수라고 생각했는데, 쩝.

 

  이후 나머지 주말은 온통 게임이었다. 원래 게임을 잘 하는 성격은 아닌데, 남자친구가 종종 나와 게임을 같이 하고 싶어해서 (그래야 자기가 게임 할 구실이 생기니까?) 내 취향에 맞을지 안 맞을지 계속해서 여러 게임 추천을 도전하는데, 성공 확률이 극히 낮다. 그러다 이번에 'Crusader Kings 3'를 추천해줘서 같이 하게 되었는데, 처음에는 너무 어렵고 복잡해서 남자친구와 놀 때만 할까 했다. 하지만 어느덧 감을 잡아가면서 계속하고 있는 나를 발견, 일요일에 주구장창 게임만 했다. 거의 1년만에 수많은 도전 끝에 남자친구가 새로운 게임을 추천해준 셈이다. 하지만 정작 끝이라는게 있는 게임은 아닌 것 같아 몇 일 질리게 하고 나면 감흥이 떨어지지 않을까 한다. 그저 남자친구는 같이 할 수 있는 게임이 늘어나서 좋은거겠지.

  이제 슬슬 나의 취향이나 취미를 소개하는 포스팅들도 작성해볼까 한다. 그리고 내가 잊고 싶지 않은 정보들도 스크랩 형식으로 글을 작성해볼까 하는데 블로그를 처음 개설한 의도대로 여러가지들을 담아 보관할 수 있는 다락방이 되어가는 것 같아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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