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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상 기록장/2021년

[영국생활] Day+1759 유로 2020 잉글랜드 vs 덴마크 경기

by kyeeunkim 2021. 7. 8.

2021.07.07

  오늘은 유로 2020 4강전 잉글랜드 vs 덴마크의 경기가 있는 날이다. 지난번에 독일과의 경기는 일하는 시간과 겹쳐서 남자친구와 경기를 보지 못했는데, 지난 주말부터는 잉글랜드 경기를 다 챙겨보려고 스케줄을 꿰고 있었다. 수요일은 주로 일을 안 하는 날이긴 해서 걱정이 없었지만, 그래도 무조건 이 날은 일 안하고 쉴거라 생각도 했지. (그나저나 어제 invoice 처리해 준다더니 왜 안 주지...)

  저녁 다섯시 반쯤 되어서 남자친구가 일을 일찍 끝내고 함께 장을 보러 갔다. 갑자기 스테이크가 먹고 싶었기에 스테이크용 고기와 여러 야채들을 구입했다. 남자친구는 6시 30분부터 온라인 독일어 레슨이 있었고 나는 시간 맞춰서 저녁 준비를 하면 되겠다, 했는데 그가 레슨이 끝나니 거의 7시 20분이었고 30분이면 충분하다 생각했던 시간은 매우 빠듯했다. 나의 계산으로는 10분 재료 준비 후에 20분 동안 오븐에 야채 구이를 넣어 두고 5분 만에 스테이크를 구우면 되겠다는 것이었는데, 고기를 달궈진 팬에 올리는 때에 이미 7시 57분. 경기 초반을 요리하랴 순간 순간 경기 보랴 정신이 없었다. 하지만 스피드를 올려 요리를 마무리했고 전반전 경기를 스테이크 썰면서 관람했다. 유튜브에서 스테이크 요리법을 찾아서 고든 램지 레시피로 열심히 따라해 봤는데, 조금 새롭고 괜찮았던 듯 하다. 야채 오븐 구이도 이전에 하던 것과는 조금 다르게 해보았는데, 맛있고 좋았다. 고기를 먹으면서도 야채를 함께 먹으니 죄책감이 덜하는 느낌, 좋아 좋아.

  고기를 썰면서 경기를 보는데, 초반에는 잉글랜드가 영 본연의 실력이 발휘하지 못했던 것 같다. 물론 모두 나의 시선이지만. 내가 저녁도 먹으랴 집중해서 응원하지를 못하는데 그래서 그러니? (나름 스포츠 경기 관람 시 응원하는 팀 승률이 좋다.) 아무튼 잉글랜드의 초반 경기는 공 점유율도 떨어지고 뭔가 잘 안풀리는 듯 흘러가더니 결국 전반전 중반에 덴마크에게 한 골을 주었다. 옆에서 탄식하며 안타까워 하는 찐 영국인을 보는 마음이란. 자칫하다간 오늘밤의 평화에 큰 영향을 미칠 것 같아 저녁을 다 먹은 후 적극적으로 잉글랜드를 응원했다. 그 이후 한 점을 내어준 잉글랜드 선수들은 각성한 듯 움직임이 달라졌던 것 같다. 훨씬 공을 가지고 있는 시간도 길어지고 골을 넣기 위한 기회도 많이 만들었던 것 같다. 그게 번번히 막혀서 너무 안타까웠지. 그래도 덴마크가 점수를 낸지 얼마 지나지 않아 잉글랜드가 점수를 냈는데, 아이러니하게도 덴마크 선수의 자책골이었다. 하지만 그 골은 슈팅을 날린 Saka 선수가 좋은 방향으로 공을 몰아 왔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덴마크 선수는 최선을 다해 공을 막으려다 발생한 자책골이긴 하지만, 만약 덜 했어도 금방 따라온 Sterling 선수가 골을 만들었을 것 같기도 하고. 아무튼 전반전에 1:1의 동점으로 마무리하여 얼마나 안도했는지 모른다.

선수들 힘내봐요, 나의 저녁을 평화롭게 만들어줘

  나는 스포츠를 볼 때 꽤나 시끄럽게 보는 편인데, 주문을 외우듯 "Go, go, go, goooo!"를 외친다. 그 외에도 말이 많고 화이팅을 외치는 편이다. 그에 비해 남자친구는 참 조용하다. 간간히 흘러나오는 탄식이나 감탄이 전부. 골을 넣어도 단발성 "Yeah!"가 감흥의 전부일 때도 있다. 게다가 중요한 부분에는 너무 마음 떨려하며 못 보는 편인데, 나는 되려 '아냐, 할 수 있어.'라는 마음이 들어서 쭉 지켜본다. 예전에 야구를 챙겨 볼 때는 그러지 못했던 것 같기도 한데, 축구는 이어지는 여러 움직임에 마지막 결정적인 한 순간이 이뤄내는 점수라서 그런가, 그 장면을 놓치면 너무 아까운 마음이라 끈질기게 함께 화면을 쫓는다. 오늘 경기를 보는데도 그러했지. 남자친구가 나한테 많이 매달려 숨었다, 누가 보면 무서운 영화 보는 줄.

  이어지는 후반전은 잉글랜드가 대부분 골을 점유하고 골을 만드는 기회도 훨씬 많이 만들었지만, 번번히 아쉽게 득점으로 이어지진 못했다. 득점과 승리를 위한 98%를 쌓아왔는데 마지막 2%의 결정적인 순간이 안 만들어지는 느낌? 아슬아슬한 여러 순간들을 만들었지만 결국 득점하지 못하며 남은 45분을 보냈다. 그리고 이어진 연장 경기. 덴마크 선수들이 비교적 체격이 커서 그런가(잉글랜드 선수들도 분명 작은 사람들은 아닐텐데..) 몸싸움이나 태클이 잦고 컸던 것 같다. 전날 보았던 스페인 vs 이탈리아 경기도 기본적으로 몸싸움은 많지만 이런 느낌은 아니었던 것 같은데, 가끔 잉글랜드 선수들이 벽에 부딪힌 듯 막히는 것을 보니 안쓰러웠다. 그래도 그런 경기에는 태클이 많고 파울이 많아지며 그것은 곧 기회로 이어진다. 연장 전반에 잉글랜드 팀이 페널티킥 기회를 얻어냈고 Kane 선수가 슛을 맡았다. 그리고 이어진 골! 사실 덴마크의 골키퍼가 처음에 방향도 잘 잡고 공도 잘 막았는데 공을 팅겨내는 바람에 끝까지 공을 쫓은 Kane 선수가 두번째 시도로 득점을 만들었다. 득점에 대한 기쁨과 더불어 "와, 드디어 오늘 밤은 평화롭다!"라는 안도감이 얼마나 컸던지. 승리에 가까워지는 잉글랜드의 입장으로서는 점수를 잘 유지하면 되는 것이어서 공격적이고 과격해지는 덴마크 선수들에 비해 경기 끝까지 좀 더 유연하게 남은 시간을 이끌었던 것 같다. 그래도 막 드러눕는 침대 축구 안하고 끝까지 얼마나 열심히 뛰던지, 끝까지 재미있는 축구 경기였다.

우리끼리 축하 파티

  잉글랜드의 승리로 경기가 끝나자, 온 동네는 난리가 났다. 특히 우리가 살고 있는 곳은 지하철 역과도 가깝고 역 근처 여러 펍들이 있어서 당연히 많은 사람들이 경기를 관람했을 것을 예상했지만, 승리로 마무리 된 경기 결과에 흥에 겨운 사람들이 거리로 나와 기쁨을 만끽하고 있는 듯 했다. 조용한 남자친구도 "우리도 나가서 스파클러 폭죽하면서 축하하자!"라기에 따라 나갔다. 원래 스파클러 폭죽은 남자친구 생일용으로 산 것이었는데, 당시 비가 와서 지금까지 해볼 기회를 얻지 못했었다. 집 앞으로 나가니 공원은 텅텅 비어있었지만, 지하철 역 쪽으로 시끄러운 함성들이 들리고 있었고, 우리는 우선 공원 근처에서 스파클러 폭죽과 함께 축하를 하며 즐거움을 누렸다.

난리난 잉글랜드 사람들... 축구에 모두가 행복해

  그 후 우리도 한번 난리난 분위기를 보자며 지하철 역 쪽 대로변으로 향했는데, 어이쿠야, 엄청난 사람들의 대형 무리가 기쁨을 즐기고 있었다. 매일 3만명 코로나 확진자 나오는 영국 상황 다들 아는 건가요.. 이미 코로나를 받아들이는 사람들에 대한 인식이 워낙 다른 것은 알고 있었지만, 그것 뿐만이 아니라 축구 앞에서 영국 사람(+유럽인)들을 막을 방법은 아무것도 없는 것 같다. 나와 남자친구는 착실하게 마스크를 착용하고 그저 길 건너편에서 구경만 했다. 그리고 남자친구의 친구들 단체 채팅방도 아주 난리가 났다. 곳곳에 있던 친구들이 경기가 끝나자 자신의 근처 상황들을 공유했는데, 심지어 어떤 곳은 흥분한 사람들이 자동차 유리문도 깨부셨다는.. 이제 일요일이 유로 2020의 결승전, 이탈리아와 잉글랜드의 경기다. 그 날 경기 결과가 어떻든 영국은 잠시 난리가 날 듯 하다. 게다가 결승전이 치뤄지는 경기장이 런던 Wembley Stadium이야. 오늘 뉴스에는 일요일에는 펍들이 밤 늦게까지 연장 영업을 할 것이라고 하던데(오늘 경기가 시작하기도 전에), 정말 축구에 진심인 영국인들의 열기를 느낄 수 있다. 일요일도 열심히 응원해야지! 오늘 인스타그램 스토리에 올렸던 응원+부탁의 한마디를 조금 변형해 여기도 남긴다. "Please give me a peaceful Sunday guys, I'm living with an English gu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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