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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여행 에세이/영국

영국, Peak District(피크 디스트릭트) 여행 (1) Hathersage(헤더세이지) & Stanage Edge(스타니지 엣지)

by kyeeunkim 2021. 8. 31.
2021.08.18 ~ 2021.08.22

Peak District (피크 디스트릭트) 여행:

Hathersage(헤더세이지), Derbyshire, England

(1) 마음껏 걷고 자연을 즐길 수 있는 마을, Hathersage(헤더세이지)

그리고 절벽의 모서리에 오르다, Stanage Edge(스타니지 엣지)

 

  첫 회사에서 5년 간의 긴 직장 생활을 끝낸 나의 남자친구 조던이가 새로운 곳에서 업무를 시작하기 전 약 3주가 조금 넘는 시간을 조율해 여름 휴가 기간을 만들었다. 일정을 확정하는 순간부터 이 휴가 기간을 손꼽아 기다리더니, 줄줄이 여행 계획을 잡았다. 많이 진정되었다고는 하나 코로나가 여전히 성행하고 있고, 백신 접종 일정도 8월이 되서야 다 끝낼 수 있었기에 비록 해외 여행을 계획하진 못했지만, 다시 한 번 영국 내 여행을 해보자며 여러 곳을 알아보다 결정하게 된 첫 여행 지역은 Peak District였다. 사실 나는 처음 들어보는 곳이었고 조던이도 잘 아는 건 아니었지만 그저 국립공원이라기에 작년 여름에 갔던 New Forest랑 비슷하지 않을까 싶어 흔쾌히 가보자 했다. 이후 검색하다 보니 내가 처음 영국에 오게 되었을 때 언젠가는 가보고 싶었던 곳들이 있는 지역이어서 더 마음에 들었다. 물론 그 때의 상상에선 자동차를 렌트해서 갈 생각이었지 여전히 뚜벅이일 때 갈 줄은 몰랐지. (빨리 영국 운전 면허를 따던가 해야지 흑흑)

Peak District(피크 디스트릭트), England
  Peak District(피크 디스트릭트)는 영국 Pennines 남단에 있는 고지대로, 1951년에 잉글랜드와 웨일스에서 첫 번째로 지정된 국립공원이다. 주로 북부 Derbyshire에 위치해 있으며, Cheshire, Greater Manchester, Staffordshire, West Yorkshire, South Yorkshire의 일부를 포함한다. 황야와 사암이 있는 북쪽, 동쪽 및 서쪽의 호는 Dark Peak(다크 피크), 계곡과 협곡이 있는 석회암 지역으로 중부 및 남쪽의 White Peak(화이트 피크)로 나눌 수 있다. 중석기 시대부터 사람이 거주한 흔적이 있으며, 농업과 광산 산업을 거쳐 현재는 관광 산업이 활발하다. 걷기, 자전거 타기, 암벽 등반 및 동굴 탐험과 같은 여러 자연 경관들을 경험할 수 있으며 인근에는 Manchester, Stoke-on-Trent, Derby, Sheffield와 같은 대도시 및 교외 도시들이 있어 접근성도 좋다.
  피크 디스트릭트의 풍경은 오랜 시간동안 문학적 영감이 되기도 했다. Jane Austin(제인 오스틴)의 1813년 소설 ‘오만과 편견(Pride and Prejudice)’는 주요 배경을 피크 디스트릭트로 설정하고 있고, Charlotte Brontë(샬롯 브론테)의 1849년 소설 ‘제인 에어(Jane Eyre)’에서의 Morton마을은 작가가 1945년에 머물렀던 헤더세이지를 바탕으로 한다. 또한 소설 ‘셜록 홈즈(Sherlock Holmes)’를 비롯한 여러 범죄와 공포 소설의 배경이 되기도 했다.

  피크 디스트릭트는 워낙 큰 국립공원이라 특정 어느 지역이나 도시에서 방문하기 좋다고 할 수 없었다. 국립공원 내, 외부로 여러 도시와 마을들이 있는데 직접 운전해서 이동하는 경우가 아닌 대중 교통을 이용해야 하는 상황이라서 한 곳을 정하기는 어려워서 일정에 따라 숙박을 할 마을을 이동하기로 했다. 그렇게 총 4박의 일정 중 첫 이틀은 Hathersage에서 지내기로 했다. 피크 디스트릭트에서 가보고 싶던 곳과 가깝기도 했지만, 마을에 기차역이 있어 런던에서 바로 기차를 타고 갈 수 있었기에 좀 더 편할 것 같았다. (게다가 St Pancras 역이 우리집에서 너무 가까워, 너무 좋아, 짜릿해.)

London to Hathersage
▪︎ 12:02 London St Pancras International
      🚆  1 h 58 m East Midlands Railway
▪︎ 14:00 Sheffield
      ▾
▪︎ 14:14 Sheffield
      🚆  18 m Northern
▪︎ 14:32 Hathersage

Hathersage 도착! 벌써부터 푸릇푸릇하다

  런던을 출발할 때 하늘이 조금 맑길래 '아, 또 이렇게 예측 불가 영국 하늘이 좋은 쪽으로 변덕을 부려주시는가.'라고 생각했지만, 북쪽으로 올라갈 수록 하늘은 흐려져만 갔고 헤더세이지에 도착했을 때는 그저 흐린 구름만이 하늘을 채우고 있었다. '그래도 어두운 것도 아니고.. 밝구.. 풀빛은 여전히 푸릇푸릇하고, 여름 같구..' 비가 오지 않는 것을 다행으로 여기며 숙소로 향했다.

  우리가 헤더세이지에서 예약한 숙소는 B&B, Bed and Breakfast로 아침밥 주는 민박이었다. 도착하고 보니 헤더세이지가 별로 큰 마을이 아니어서 어느 정도는 납득이 되었지만, 숙소를 알아볼 당시에는 선택지가 많이 없고 가격도 상당히 높아 당황스러웠다. 결국에 어느 정도 합리적인 가격대의 B&B를 선택했는데 알고 보니 헤더세이지의 숙박업 형태는 대부분 여인숙 혹은 민박이었다. 숙소는 전형적인 영국 시골 가정집의 분위기를 느낄 수 있는 곳으로 방은 정말 작았지만(큰 침대 하나에 꽉 차는 정도의 방) 화장실도 따로 있었고 무엇보다 주인집 아주머니가 매우 친절하셔서 좋았다. 조던은 처음 보는 사람과도 대화를 잘 하는 편인데(나는 극소심형으로 낯선 사람과는 이야기 듣고 웃는 것 밖에 안됨) 주인 아주머니와도 한참이나 웃고 이야기를 나누더니 식당을 추천 받고는 바로 저녁에 가자며 예약까지 마쳤다.

Hathersage(헤더세이지), Derbyshire, England
  Hathersage(헤더세이지)는 영국 Derbyshire의 Peak District에 있는 마을이다. Sheffield에서 남서쪽으로 약 16km 정도 떨어진 곳으로 Derwent River 북쪽에 위치한다. Sheffield나 Manchester와 같은 큰 도시에서 철도와 도로 연결이 잘 되어 있어 접근성이 좋고, 여러 문학적 배경이 되는 아름다운 자연 경관으로 많은 사람들이 방문한다. Stanage Edge가 근처에 있어 여러 사람들이 암벽 등반을 즐기기도 하고, 그 외에도 Peak District 내의 다양한 산책길을 통해 여러 자연 경관을 즐길 수 있다.

마을을 둘러볼 겸 산책하는 중에 보게 된 헤더세이지 풍경, 예쁘다

  숙소 체크인을 하고 잠깐의 재정비 시간을 가진 후, 우리는 짧은 산책을 나섰다. 늘 느끼는 점인데, 영국 사람들은 산책을 엄청 좋아한다. 왜 코로나 락다운 중에도 공식적으로 하루 한 번 운동/산책 혹은 반려동물 산책을 위한 외출이 허용되었는지 이해가 된다. 당시에는 기본적인 사람들의 생활 복지 및 건강을 위해서라고 생각했는데, 그냥 영국인에게는 최소한 하루에 한 번 바깥 공기를 쐬지 못하는 것은 큰 일인 그런 느낌이랄까. 다행히 나는 엄청 귀찮은 날만 아니면 뭐든지 잘 따라 나서는 편이라 지금까지 갈등은 없었다.

  영국에서 안 그런 곳이 있을까 싶긴 하지만, 헤더세이지에도 언덕길이 꽤 많았다. 그저 발길 닿는대로 갔는데, 결국엔 다 언덕길이었다. 난 고등학교 때랑 대학 때 경사길을 매일 걸어서 더 이상은 싫은데.. 게다가 체력도 그닥 좋지 못해서 언덕만 오르면 금방 기운이 떨어진다(우선 다리가 너무 아파.). 하지만 그래, 오르고 나면 보이는 경치는 언제나 멋지고 색다르다는 것은 인정. 이번에도 저 멀리 보이는 평지, 밭, 언덕까지 전부 전형적인 영국 시골의 모습을 한껏 눈에 담을 수 있어 좋았다.

(1) Robin Hood의 친구라는 Little John의 무덤  (2) 길에서 만난 고양이, 마실 나왔나 보다

  그 외에도 Little John의 무덤이 있다는 안내판에 따라 길을 찾았더니 마을 교회 마당에 자리잡고 있었다. 내가 알고 있는 Robin Hood는 디즈니 만화에서 언뜻 보았던 녹색 옷을 입은 여우 뿐인데, 조던의 말로는 그 시대의 유명했던 강도, 도둑 쯤이 아니었을까 라고 하더라. 원래 이야기를 전혀 찾아보지 않아서 난 그냥 그가 활 잘 쏘는 영웅 아니면 유명한 인물이라고 생각했는데, 도둑이었다고 하니 좀 반전이었다. 리틀 존은 로빈 후드의 친구나 동료였다는데, 나름 예쁘게 무덤이 꾸며져 있는 것 보니 또 그렇게 나쁜 인물은 아니었나 혼란스럽고. 무엇보다 소설적인 인물인 줄 알았는데 실존 인물에 그의 무덤까지 보게 되니 새로웠다. 영국이나 유럽에는 유명인들의 무덤이 곳곳에 있어서 묘지석 보는게 나름의 재미다.

  길에서 마실 나온 고양이도 만나고(목걸이를 하고 있어 주인이 있는 고양이임을 쉽게 알아챌 수 있었다.) 예쁜 풍경을 배경으로 이리 저리 사진을 찍다가 6시에 예약해 둔 저녁 식사를 위해 레스토랑으로 향했다.

  휴가 첫 날 저녁을 위해 선택한 식당은 Hathersage Socail Club이었다. 유명한 셰프 John Parsons과 합을 맞춰온 셰프들이 운영하는 식당이라고 하는데 음식의 맛과 퀄리티가 상당히 좋다며 B&B 주인 아주머니의 강력한 추천을 받았다. 우리는 함께 나눠 먹을 스타터로 Mushroom with Parmesan을 주문하고, 각각의 메인으로 Dixies Three Little Pigs, "Beef on Beef"를 주문했다. 가니시로 Veg of the day와 Potatoes of the day, 그리고 함께 마실 와인 한 병도 잊지 않았다.

  스타터는 엄청 커다란 버섯 하나가 다른 야채들과 함께 나왔는데, 처음에는 커다랗고 까만 것이 버섯인지 전혀 예상하지 못했다. 탄 것처럼 보이지만 전혀 그렇지 않았고 매우 부드럽고 맛있었다. 이후에 나온 메인들도 예상보다 훨씬 fancy한 퀄리티였다. 조단이가 주문한 메인은 돼지 고기의 세 가지 부분, 삼겹살, 살코기, 볼살을 요리한 것이었는데 매우 마음에 들어하더라. 내가 주무한 것도 비슷한 스타일의 소고기 버전으로, Bavette, Shin(어느 부위인지는 모르겠으나 등심과 정강이 살을 이용한 요리였다)을 스테이크 및 서로 다른 요리법을 이용한 요리였다. 모두 맛있어서 조던이와 나, 둘 다 여행 첫 저녁을 흡족하게 마쳤다.

여행 첫 저녁, 너무 맛있었다

  저녁을 먹은 후, 여행 첫 날은 숙소에서 다음 날 일정을 계획하며 마무리했다. 헤더세이지 및 피크 디스트릭트는 곳곳의 자연 경관을 도보로 여행할 수 있는 트래킹 코스가 잘 마련되어 있고, 웹사이트나 어플을 조금 검색하면 관련된 전문 지도도 쉽게 구할 수 있다. 나는 전혀 관여하지 않았지만, 조던이가 열심히 검색해서 지도와 어플을 구해 휴대폰에 저장해 두었다. 나는 헤더세이지 근처에 가고 싶었던 자연 경관만을 고르기만 했는데, 그 곳들을 향할 수 있는 여러 길을 탐색하다가 하나의 코스를 정한 후 잠들었다.

B&B 숙소의 강아지, 너무 귀엽다

  숙소가 B&B인만큼 아침밥이 제공되는데, 전날 문자로 오트밀이나 잉글리시 브랙퍼스트 중 하나를 신청할 수 있었다. 잉글리시 브랙퍼스트는 여러 재료들 중 선택할 수 있고(원하지 않는 재료 제외 및 비건 재료로 교체 등) 계란 요리 방식도 다양해서 나와 조던이는 전날 문자로 원하는 방식대로 주문을 넣었다. 다음날 아침 조식 공간으로 나가니, 기본적으로 토스트나 시리얼은 가져다 먹을 수 있게 마련되어 있었고, 주인 아주머니가 차와 주스, 우유 등을 가져다 주셨다. 그 와중에 숙소에 강아지가 튀어 나와서 깜짝 기분 전환을 했다. 보통은 공간을 따로 차단해서 손님들을 방해하지 않게 하는 것 같았지만, 정신 없는 아침에는 가끔씩 이렇게 건너오는 것 같았다. 주인 아주머니가 얼른 돌아오라고 강아지를 불렀는데, 난 마음 속으로는 '데려가지 마세요😭'를 외쳤지. 너무 귀엽다.

아침으로 제공된 여러 시리얼과 토스트, 선택하는대로 만들어주는 English Breakfast

  이내 곧 주문한 아침 식사가 나오고, 다시 한 번 어마무시한 영국식 아침 양에 놀랐다. 어느 카페나 식당에서 잉글리시 브랙퍼스트를 시키면 아침이라고 생각할 수 없는 양이 나와서 늘 배가 터지도록 먹는데, 이번에는 숙소에서 제공되는 아침이라 좀 간단할 것이라 생각했던 것이 실수였다. 영국식 아침은 어디서나 푸짐하다는 것을 이번에 다시금 되새겼다. Scrambled Egg는 정말 내가 딱 마음에 드는 스타일이었고, 후라이팬에 후다닥 볶은 것 같은 토마토는 간단하지만 마음에 들었다. 소세지와 베이컨 두 종류를 아침에 함께 먹는 것은 과하다 느껴졌고, Oat Pancake는 내가 좋아하는 스타일이 아니어서 몇 입 먹다 관두었다(다른 손님들이 먹는 것을 보니 토르티아 랩에 사먹듯이 전체를 함께 말아 먹더라. 기발하다고 생각했음.). 푸짐한 양에 아침부터 배가 불러 다음 날에는 꼭 조금만 주문하자고 다짐하며 식사를 마쳤다. 하지만 이 날은 정말 이렇게라도 아침을 많이 먹어 둔 것이 다행이라고 생각하긴 했다. 이후의 일정이 아주 그냥 스펙타클했기 때문이다.

출발은 이렇게 산뜻했던 우리 둘

  조던이가 열심히 조사 및 연구해 알아낸 여러 트래킹 코스 중 우리가 최종으로 선택한 곳은 Stanage Edge를 다녀오는 코스였다. 스타니지 엣지는 영화 '오만과 편견'를 엄청 좋아하는 내가 예전에 영화 촬영지가 어디인가를 조사하다가 알아둔 곳이었다. 물론 그 때는 이렇게 걸어서 갈 계획은 없었지만(나의 계획에서는 자차 이동이 기본이었다.) 어쨋든 이렇게 기회가 되어 피크 디스트릭트에 왔고, 스타니지 엣지 근처 마을에 자리도 잡았고, 다른 어느 곳보다 스타니지 엣지가 가까운 코스였기에 선택했다.

  어김없이 비 예보가 있어서 우리는 나름 날씨가 맑을 때 얼른 다녀오는 것이 좋을 것 같아 오전 10시 쯤 일찍 길을 나섰다. 어플과 지도에 안내된 정보로는 우리가 선택한 코스는 약 세 시간 정도의 중급(Moderate) 코스였고, 산뜻하게 다녀오면 오후 1시 쯤에 돌아올 수 있을거라 생각했다. 그래서인지 사진에서도 나는 해맑게 웃고 있네, 무슨 일이 있을지도 모르고(....^^).

아침에는 그래도 잠깐, 아주 잠깐 날씨가 좋았다

  우리가 피크 디스트릭트로 여행한 주는 정말 날씨의 변덕이 최고였던 것 같다. 나는 아이폰 기본앱 Weather에서 'The Weather Channel'을 통해 기상 정보를 확인하는데, 그 중에 Rader 파트를 자주 체크한다. 아무래도 실시간 구름 이동을 알 수 있고, 그 상황이 이후에 비가 올 것인지 아닌지와 직접적으로 연결되기 때문이다. 이 당시에는 엄청 거대한 구름이 영국 중북부를 뒤덮고 있었는데, 가끔 구름의 빈 공간이 우리가 있었던 지역을 지나곤 해서 정말 거짓말처럼 맑았음에도 곧 흐려지고 비가 내리는 상황이 반복되었다. 기온도 들쭉날쭉이고 해가 쨍 비치면 더워졌다가 흐려지면 급격하게 추워지니 어느 장단에 맞춰야 할지 너무 어려웠다. 나는 아주 얇은 홑겹 바람막이를 입고, 약간 두꺼운 맨투맨과 티셔츠를 겹쳐 입었는데 계속 움직이다보니 덥긴 더운데 동시에 날씨는 쌀쌀해지기도 해서 체온 조절하기가 쉽지 않았다.

스타니지 엣지로 향하는 길에 만난 풍경들

  그래도 영국 시골 풍경은 정말 평화롭고 예뻤다. 프랑스나 독일에 비하면 영국도 나라가 큰 것 같지 않은데 우리 나라와 비교하면 거의 두 배의 크기였다. 그런데 인구는 6천 8백만명 정도이니 인구 밀도가 적게 느껴진다고 해야하나. 끝없이 펼쳐진 광야와 자연들을 볼 때마다 진짜 넓고 사람 없네, 라고 생각한다. 또 시골에만 나오면 사진과 같이 동물들을 들판에 풀어 놓은 상황을 쉽게 볼 수 있는데, 넓은 평지를 마음껏 다니며 풀을 뜯고 쉬는 동물들의 모습이 귀엽고 편안해 보이면서도 한편으로는 이렇게 넓은 곳에 가축을 마음껏 풀어 키우는 방식이 부럽기도 하다.

Stanage Edge..! 드디어 가까워지는 느낌이다

Stanage Edge(스타니지 엣지), Derbyshire & South Yorkshire, Peak District, England
  Stanage Edge(스타니지 엣지)는 영국 Peak District에 위치한 사암 절벽이다. Hathersage에서 북쪽으로 약 3km 떨어진 곳에 있으며 북쪽 부분은 Derbyshire의 High Peak와 South Yorkshire의 Sheffield 사이의 경계를 형성한다. 스타니지 엣지 지역은 과거 숫돌을 생산하기 위한 채석장으로도 사용되었지만, 현재는 암벽 등반과 달리기 혹은 걷기를 위한 장소로 인기가 많다. 어느 한 곳의 절벽에는 로빈 후드(Robin Hood)의 동굴로 알려진 유명한 동굴이 있고, 2005년에 제작된 영화 ‘오만과 편견(Pride and Prejudice)’에서 주인공 엘리자베스 베넷(Elizabeth Bennet)이 가장자리에서 수평선을 바라보는 장면을 비롯해 여러 영화 및 TV 시리즈의 배경으로 잘 알려진 곳이다.

정말 아무것도 없는 영국 시골길, 길과 끝없는 들판 뿐

  한 시간 조금 넘게 걸었을까, 드디어 스타니지 엣지에 대한 안내문을 발견할 수 있었다. 그 말인 즉, 곧 도착지가 있다는 말이죠. 정말 내가 향하고 있는 목적지가 근처에 있고, 지금까지 잘못된 길을 걷지 않았다는 것! 그것만으로도 약간씩 체력이 떨어지고 있는 상황에서는 참 안도가 되었다.

  이어진 길을 걷는데, 멀리 보이는 드넓은 평지의 색깔이 알록달록했다. 특히 진한 분홍색으로 보이는 부분이 신기했는데, 다른 방향의 길에서 엄청 많이 볼 수 있었다. 검색해보니 Heather라는 꽃으로, 스코틀랜드 지역을 바탕으로 켈트족의 한 연인의 사랑 이야기가 유래가 되어 행운, 존경과 같은 의미를 가진다고 한다. 특히 스코틀랜드에서는 흰색의 헤더 꽃은 결혼식 때 신부의 부케로도 자주 쓰인다고. 그래서 북부 쪽에 이 꽃들이 많은건가? 이야기가 흥미롭기도 했고, 꽃들이 들판 전체를 뒤덮어 만들어 내는 색깔이 참 예뻤다.

드디어 절벽이 보인다, 그리고 그 말은 저 경사를 올라가야 한다는 것

  그리고 드디어..! 드디어 그토록 꿈 꿨던 절벽이 보였다. 하, 근데 정말 다음부터는 영화는 영화로만 봐야하는거 아닌가 느끼긴 했음. 이 오르막 길을 오르면서 '키이라 나이틀리는 절대 이 길을 직접 오르진 않았겠지. 분명 누가 태워줬겠지. 소설 <오만과 편견>의 배경이 된 시대에 저 절벽을 올랐던 사람은 있을까..'하는 생각부터 왜 하필 저 절벽 끝에서 멋진 장면을 찍었는지에 대한 약간의 원망까지 별의 별 생각이 다 들었다. 특히 절벽 끝으로 오르는 마지막 길은 (잘 닦여 있지만) 경사가 꽤나 있어서 너무 힘들었다. 그래, 그래도.. 풍경은... 참 멋지다.

조던이가 찍은 나의 뒷모습, 생각이 많아 보인다
힘들어 보이는 나와 그에 비해 산뜻해 보이는 남자친구, 조던이

  절벽으로 오르는 마지막 길에서 나의 체력이 거의 소진되었던 것 같다. 응, 나 운동 부족이긴 한데.. 그래도 이렇게 숨이 차고 덥고 힘들 수가 없었다. 마지막에 너무 더워서 두꺼운 맨투맨을 벗었는데, 그 때부터 오락가락 비가 오기 시작해 금방 또 입었음. 높은 곳으로 오를 수록 바람도 강해져서 조금 덥다고 후다닥 옷 벗었다가 큰일날 뻔 했다.

  그래도 이 때까지는 좀 행복했다. 날씨도 최악은 아니었고, 힘들긴 해도 목적지에 다다르는 순간이었고, 풍경도 멋있었으니. 힘들다 힘들다 징징대면서도 남자친구 사진은 잊지 않고 찍을 정도의 정신은 가지고 있었다. 여전히 팔팔한 조던이가 내 사진을 더 많이 찍긴 했지만. 나중에야 확인했는데, 사실 멋진 사진들을 찍고 있었는지 당시에는 전혀 몰랐다. 솔직히 그만 올라가야 하나 수십번도 더 생각하고 있었기 때문에(...ㅋㅋㅋㅋ)

드디어 올랐다!

  그렇게 한걸음 한걸음 힘을 짜내서 마침내 절벽 끝에 올랐다. 절벽 끝에 딱 올랐을 때는 해냈다는 성취감과(아무래도 약간의 아드레날린이 작용했으려나) 멋진 사진을 남겨보자는 의욕이 더해져 조던이와 셀피를 비롯해 사진도 찍고 멋진 포인트들을 찾으며 절벽을 구경하기도 하고 잠깐 앉아서 휴식을 취하며 '웃는 얼굴'로 시간을 보냈다. 5분 정도 "도대체 키이라 나이틀리가 선 포인트는 어디야?"라며 찾기도 했는데(미련이 남아서) 내려갈 길도 남았으니 더 이상의 체력을 소모할 수 없어 금방 포기했다. 그래, 드론이나 고공 촬영으로 했을 것 같은데 내가 그 포인트를 찾아 뭘 하겠다고..

풍경은 참 멋졌다

  그리고 이 때부터는 영화 '오만과 편견' 로망이니 뭐니 싹 다 사라짐. 드디어 중간 반환점을 찍었다는 것이 기쁘고, 중간에 포기하지 않았다는 것이 기쁘고(너무 힘들어하는 날 보고 조던이는 "그냥 여기서 보고 돌아갈까?"라고 제안하기도 했다.), 이제 얼른 내려가서 숙소 가서 쉬어야지 라는 마음이 컸다. 게다가 절벽 꼭대기에 오르니 바람도 엄청 강하고 비고 조금씩 오기 시작해 더이상 시간을 지체할 수 없었고, 내려가는 길에 절벽과 풍경을 함께 구경하기로 하며 우리는 돌아가는 길을 걷기 시작했다. 내려가는 길이 그렇게 험난할 줄 모르고... 

(1) 끝없이 이어지는 사암 절벽과 저 멀리 보이는 드넓은 평지  (2) 곳곳에서 볼 수 있었던 Heather 꽃

  스타니지 엣지는 어느 특정 부분만을 일컫는 것이 아닌 이 부근 지역 전체를 의미하는 것이기도 해서 절벽을 따라 계속 걸으니 정말 끝이 없었다. 암벽 등반을 즐기는 사람들이 많이 찾는다고 하더니, 정말로 암벽 등반을 하는 사람들도 꽤 많았고, 가족 단위로 혹은 노부부 및 젊은 커플들이 강아지들과 함께 트래킹을 즐기기도 했다. 8~10살 남짓으로 보이는 애기들이나 크기에 상관 없는 여러 강아지들이 여유롭게 오르는 이 길을 나는 왜 이렇게도 힘들어 하는가, 하는 자괴감이 들기도 했지만 난이도라는 것이 원래 주관적인 것 아니겠나.

(1) Robin Hood의 동굴이라는 곳  (2) 날씨가 점점 험난해진다

  이번 트래킹의 전체적인 루트는 조던이 전부 맡았었다. 난 트래킹이 취미도, 관심사도 아니며 가고 싶은 곳으로 갈 수 있다니 따라가긴 하는데 그 루트가 몇 km인지, 어떤 길목을 따라 걷는지 자세한 정보는 전혀 알지 못했다. 지도도 어플도 전부 조던이의 휴대폰에 있었고, 배에 사공이 많은 것보다 한 사람이 딱 정해서 방향을 안내하는게 좋을 것 같았다. 하지만 이 쪽으로 가자고 했다가 길을 잘못 들어 되돌아가는 일이 몇 번 생기니 체력이 떨어져가는 사람으로서 너무 힘들었다(+짜증). 게다가 올라왔던 길 그대로 되돌아 갈 수도 있고, 방향이 조금 잘못 되어도 길이 나 있기도 하니 그 길을 계속 가도 되는데, 나름 FM 스타일인 조던이는 딱 선택한 길, 엇나가지 않는 길만 찾아서 후... 나중에는 정말 승질 승질이 아주..

  중간 중간에 나 나름대로 구글맵으로 숙소까지 향하는 길이 얼마나 남았나 (몰래) 확인하곤 했는데, 확인할 때마다 50분 남았다고 해서 미치는 줄 알았다. '아니 30분을 내리 걸었는데 또 50분이 남았다고 하면 도대체 이 길은 어디로 가는거야!!'라는 생각에 그냥 여기서 쓰러지는게 마음 편할까 싶기도 했음ㅋㅋㅋㅋ 물론 성격 상 '근데 이 시골 구석에서 쓰러지면 엠뷸런스가 오기나 하겠어? 택시도 없어 주차장 근처가 아니면 차 갖고 있는 사람들도 없는데, 아니 심지어 주변에 사람들 자체가 별로 없는데.. 여기서 살아남는 최선의 방법은 내 발로 숙소까지 걸어가는거다..'라는 이성적이고 현실적인 생각을 하느라고 극적인 드라마를 찍을 수도 없었다. 한걸음 한걸음 걸으면서 '진짜 다음에는 이런 트래킹은 내 휴가에는 없다. 운전해서 오는거 아니면 절대 안 온다..'라는 다짐만 했다. 조던이는 중간 중간 괜찮냐며 내 컨디션을 확인하고 좋은 분위기를 만들려고 애썼지만, 솔직히 발과 무릎 연골이 아파오는 상황(나는 무릎 연골이 좋지 않아 가끔 오래 걷거나 계단 오르는 것이 부담일 때가 있다.)에 웃을 힘도 이야기 할 힘도 없었다. 화 낼 기운도 없었는데 뭘.. 그래도 내 짜증과 힘듦 오오라를 다 받아주고 나중에는 그 순간을 웃으면서 이야기하는 조던이가 참 고맙고 좋다.

돌아가는 길은 왜 이렇게도 먼 것인가

(근데 솔직히 이 때는 "그냥 최대한 짧은 길, 단거리로 가면 안 돼?"라고 외치고 싶긴 했음..ㅋㅋㅋ)

 

  이번 기회에 확실하게 알게 된 것은 영국 사람들에게 '걷기', '트래킹'은 정말 빼놓을 수 없는 생활이자 취미라는 것을 느꼈다. 조던과 official한 관계가 된 후 12월에 그의 친구들 그룹과 크리스마스 여행을 갔는데, 두번째 날 일정이 트래킹이었다. 난 여행 와서 트래킹하자는 친구들은 생전 처음이었고, 그냥 간단한 산책이겠거니 하고 따라나선 길이 진흙이 질퍽질퍽하고 길도 제대로 없는 숲길을 걷는 것이었다는 것을 알고는 황당했던 적이 있다. 사전 설명도 없이 흰 운동화를 신고 그 흙길을 걸어야 했던 그 때가 얼마나 스트레스였던지.. 게다가 작년 여름에는 Staycation이라며 남자친구와 갔던 New Forest에서 또 마을과 마을을 잇는 도로길을 걷다가 식겁할 뻔 하고. 올해는 좀 덜할까 했더니..하하.

  넷플릭스 드라마 '더 크라운(The Crown)'을 볼 때 여왕 가족들이 맨날 스코틀랜드로 놀러가서 들판을 걷고 또 걷고, 언덕으로 사냥을 나갔다가, 바닷가도 걷는 장면들을 보면서 나름 참 소박하게 휴가를 즐기네, 라고 생각했는데 이제 확실히 느꼈다. 이건 영국 사람들의 삶이다, 라고. 시즌 3에 영국 최초의 여성 총리 마거릿 대처(Margaret Thatcher)가 왕실 가족의 초대를 받고 겨울 휴가를 함께 보내는데, 매 순간에 옷차림이나 생활 패턴이 달라 적응하지 못하는 것을 볼 수 있는 에피소드가 있다. 이번 트래킹을 하면서 내가 꼭 그 에피소드 속 대처의 입장이 된 것 같았다.

힘들어 죽겠는 와중에도 남는 것은 사진 뿐이라고, 카메라를 들고 풍경을 남기는 나

  중간 중간에 비도 오고 바람도 불어 후드 모자를 쓰고 벗기를 반복하며 몸과 마음이 지쳐가는 와중에 마침내 전날 산책하며 걸었던 익숙한 길이 보였다. 스타니지 엣지에 오른 것이 거의 오전 11시 45분 쯤이었는데, 익숙한 길을 발견하고 사진을 찍은 순간이 오후 2시 45분이었으니 내려오는 것에만 거의 세 시간이 걸렸다(물론 숙소까지는 +⍺ 의 시간이 더 걸림). 아니.. 왕복 세 시간 걸리는 중급 코스라며.. 오전 10시에 출발하면 오후 1시쯤에는 도착할 것 같다며... 숙소에 돌아오니 거의 오후 세 시가 넘은 시간이었는데, 계산해보면 총 여섯 시간을 걸은 셈이었다(중간 중간 쉬긴 했지만).

8월 19일 목요일의 걸음수 기록

  그리고 이것이 바로 이 날의 기록. 물론 저녁을 먹기 위해 외출했을 때 추가된 걸음수도 있겠지만, 스타니지 엣지를 다녀오기 위해 걸었을 때가 대부분이긴 하니 대략적인 걸음수와 거리를 알 수 있었다. 누가 세 시간짜리 코스래.. 대충 계산해도 거의 2만보에 15km잖아.. 평소에 하루 만 보를 걸으면 잘 다녔고, 5000보를 걸으면 보통은 했네, 라고 생각하는 나에게 2만 7천보는 험난한 것이었다. 거의 4년 전에 엄마랑 이탈리아 여행하면서 밀라노를 싸돌아 다니느라구 3만보를 걸었던 적이 있지만, 그 때는 4살이나 어렸고 사실 관광하느라 알아채질 못했지.

  그렇게 우리는 숙소에 도착해 비와 피로에 젖은 옷을 벗어던지고 개운하게 재정비를 한 후 저녁 때까지 푹 쉬었다. 다시 생각해보니 이 때 난 한참 생리 중이어서 더욱이 몸 컨디션이 좋을 수가 없었다. 어우, 생리하는 와중에 여섯 시간이나 걷다니.. 등뼈랑 허리랑 골반이 아작날 것만 같던 그 시큰한 기분이 떠오른다.

저녁 식사를 위해 들른 펍, 이젠 KFC는 쉽게 볼 수 있는 메뉴다

  한참을 잘 쉬다가 저녁을 먹기 위해 우리는 다시 숙소를 나섰다. 헤더세이지는 워낙 작은 마을이라 선택할 수 있는 식당의 종류가 많이 없었고, 영국식 펍/피쉬 앤 칩스/인도 식당 이렇게 세 가지 정도가 전부였던 것 같다. 우리는 영국식 펍인 Bank House Hathersage를 선택했고, 여러가지 Small Plates를 주문해 나눠 먹기로 했다. 그 와중에 발견했던 Korean Fried Chicken! 이젠 영국에서 한국식 치킨은 트렌디한 음식이자 일반적인 메뉴가 되어가는 듯. 오리지널 한국 치킨이랑 비교하자면 꽤 다르고 약간 매콤 달달한 닭강정과 비슷하다고 할 수 있는데, 그래도 굳이 메뉴 이름을 'Korean Fried Chicken'으로 표기하는 것은 한국식 치킨이 그만큼 인지도도 있고 인기를 끄는 메뉴라는 것을 알 수 있기에 괜히 뿌듯한 마음이 든다. 심지어 이 작은 시골 마을에서..!

  우리는 Moritz BBQ Cauliflower, Korean Fried Chicken, Monkfish와 Confit Chicken Leg를 주문했다. 숙소에서 먹은 아침 메뉴 이후 간식 없이 내리 여섯 시간을 걷다가 먹는 끼니였으니 배가 무척이나 고팠다. 간단하게 쏙쏙 집어 먹는 메뉴들이라서 좋았고, 다 맛있었다. 예상 외로 콜리플라워 튀김이 야채 같지 않고 고기 튀김 마냥 맛있었다. 그 외 메뉴들은 닭에 야채에 튀김에 맛 없을 수가 없는 조합들이었다(맥주와 함께 먹는데 맛 없을 수가..). 그리고 Loaded Cookie Dough를 디저트로 주문해 나눠 먹었는데, 완전 맛있었다. 사실 쿠키 도우 아이스크림이니 뭐니 유행할 때도 그냥 반죽처럼 만든게 뭐가 맛있나 했는데, 이렇게 제대로 된 디저트로 먹으니 JMT. 또 먹고 싶다.

여러가지 음식을 주문해 나눠 먹었다, 디저트까지 함께

  힘들었던 트래킹의 피로를 맛있는 저녁으로 풀어냈던 2021년 첫 여름 휴가의 둘째날. 다음 날은 지내던 숙소에서 체크아웃을 하고 나머지 2박의 일정이 남아있는 Bakewell로 떠나야 하는 일정이 있었고 우리는 이렇게 하루를 또 마무리했다.

 

 


모든 여행 에세이는 직접 여행한 후기로, 지극히 개인적인 추억의 시간과 사진들로 기록을 작성합니다.

해당 여행지의 정확한 정보를 함께 담으려고 노력하고 있으나 전문적인 지식을 바탕으로 하고 있지 않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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