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 일상 기록장/2021년

[영국생활] Day+1841 EPL 북런던 더비 경기에 신난 Gunners

by kyeeunkim 2021. 9. 28.

2021.09.27

  어제 일요일, 영국 프리미어 리그(EPL) 북런던 더비 경기가 있었다.

 

  사실 난 축구에는 관심이 많지 않았는데(오히려 한국에서 난 야구파였음) 영국인이자 런더너인 조던이를 만나면서 영국 축구를 보기 시작했다. 영국 및 런던에는 여러 축구팀이 있지만, 조던이는 Arsenal의 찐팬이다. 물론 광팬까지는 아니고 그저 아스널 경기의 스케줄을 꿰고 있으면서 간간히 경기를 챙겨보고 축구 소식을 챙겨보는 정도다. 친구들 모두가 축구를 좋아해서 단톡방엔 언제나 축구 토크가 넘쳐나니 소식을 모를 수가 없을 듯.

  지금은 기억이 가물가물한데 첫 만남이었나 조던이가 "혹시 영국 축구 봐? 응원하는 팀은 있어?"와 같은 질문을 했었는데, "난 월드컵만 봐. 우리가 서로 같이 아는 한국 축구 선수는 박지성 정도일 것 같은데."라고 대답했었다. 그리고 다시 되물은 나의 질문에 조던이는 "난 아스널 팬이야!"라고 대답했는데, 심지어 난 그 팀 이름을 그 때 처음 들었다. 그저 속으로 '진짜 영국인이네..'라고만 생각했지. 하지만 조던이에게 영국 축구에 대한 아무런 관심이나 흥미가 없는 나는 오히려 더 매력적이었을지도 모른다, 아스널 팬으로 영입할 수 있으니까ㅋㅋㅋㅋ 만약 축구에 관심이 많아서 내가 손흥민 소식을 외우고 다녔다거나 Tottenham Hotspur를 응원했다고 상상하면... 과연 그 이후의 데이트가 이어졌을지 의문이다ㅎㅎㅎㅎ 아무튼 그렇게 연애하는 2년 동안 같이 축구를 보다보니 나도 저절로 아스널을 응원하게 되었다. 작년 2월에는 조던이 아빠 지인 찬스로 Emirates Stadium에서 경기 관람도 했는데, 완전 재미있었다. 나를 진정한 아스널 팬으로 영입하고 싶었는지 조던이가 그 때 유니폼도 사줬었지ㅋㅋㅋ

  아무튼 그런 아스널 팬, Gunners 둘에게 어제는 결전의 날이었다. 라이벌 관계인 토트넘과의 경기를 하는 북런던 더비 빅매치가 있었기 때문이다. 우리 플랏이 에미레이츠 스타디움과 가까워서(지하철 역 한 정거장 차이) 축구 경기를 하는 날은 늘 북적거리는데, 이미 어제는 대낮부터 밖이 시끌시끌했다. 오후가 되자 조던이가 친구 Ed네 집에 가서 같이 축구를 보자길래 시간에 맞춰 함께 따라 나섰다(유니폼도 갖춰 입음ㅎㅎ). 근데 밖을 나서니 지하철 역 앞 삼거리에 말을 탄 사람들을 비롯해 여러 경찰들이 나와 있어 놀라웠다. 조던이에게 물어보니 아무래도 라이벌 빅매치에다 축구라면 환장을 하는 영국인들 특성 상 혹여 발생할 수 있는 마찰에 대비해 경찰들이 출동하곤 한다고. 그리고 그런 경우에는 말 탄 경찰이 있으면 상황을 보다 쉽게 진정시킬 수 있어서 대기하는 것이라고 했다.

Ed네 집에서 다 함께 보는 축구 경기

  그렇게 친구 에드의 집에 도착하니, 다른 친구들 Tommy와 Alex도 와 있어서 다 함께 축구 경기를 봤다. 여기서 재미있었던 부분이 알렉스는 토트넘 팬인데...ㅋㅋㅋ 혼자 외롭게..ㅋㅋㅋ 가끔 "Okay, Soni, Let's go!"라고 응원하곤 했는데, 홀로 울려퍼지는 그의 응원이 외롭게 들리면서도 안쓰러우면서도.. 하지만 미안 알렉스, 난 한국인이라고 손흥민 응원하는 그런 사람이 아니어서..

  경기가 시작하고 조마조마하는 마음으로 보는데, 전반전에 분위기가 쉽게 아스널에게 넘어 왔다. 전반 10분이 조금 넘었을 즈음이었나, Smith Rowe가 Saka로부터 부드럽게 이어받은 공으로 골대를 흔들었다. 이후 15분 쯤 지나, 이번에는 스미스 로우와 패스를 주고 받으며 돌진하던 아스널의 스트라이커 Aubameyang이 시원하게 골을 넣었다. 그리고 이어 골대 근처에서 상대편의 수비에도 끝까지 공을 놓치지 않던 사카가 세번째 골을 만들었다. 매 골마다 우리는 함성을 내질렀고, 이미 전반전에 세 골을 만들어 낸 아스널의 경기를 마음 편하게 관람했다. 후반전에 손흥민이 골 하나를 넣었지만, 그의 골 하나로만은 이미 격차가 벌어진 경기를 뒤집을 수 없었다. 심지어 알렉스도 토트넘이 점수를 만든 순간에 별 감흥이 없었던 듯, 안쓰러워..

아스널이 이겼다, 야호-

  올해 EPL이 시작되고 아스널 경기를 초반에 두 번 정도 봤는데, 그 때는 막 연패를 할 때라 경기가 너무 아쉬웠다. 당시 코로나에 걸린 선수들도 있고(메인 스트라이커 오바메양 포함) 선수들 컨디션이 100% 좋지 않아서 경기 초반에 움직임이 덜 풀리는 느낌이었다. 하지만 이번 경기는 정말 초반부터 아스널이 이끄는 것처럼 느껴졌다. 축알못의 나로서는 공의 점유율이 아무래도 그 경기의 승패에 결정적이라고 생각하는데, 정확한 비율을 보지 않아도 확실히 아스널이 공을 점유하고 있는 시간이 많았다. 또한 선수들과의 패스가 정말 부드럽게 이어졌다고 느꼈다. 암튼, 어제 경기는 정말 재미있고 멋졌다. 

  최근에 연승을 했다더니 몸이 좀 풀리면서 확실히 긍정적인 기운을 받고 있는건가? 후후. 다음 경기들도 기대된다.

오 멋져

  경기를 다 본 후 친구들과 우리는 각자 집으로 돌아왔다. 늦지 않게 저녁을 만들어 먹어야 했기 때문. 경기가 끝난 직후여서 혹시 지하철 역에 사람이 많으면 어쩌지, 걱정했는데 그래도 우리는 역을 빠져 나오는 입장이라 크게 복잡하진 않았다. 하지만 여전히 말을 탄 경찰들이 입구 가까이에 대기하고 있었고 경찰들이 사람들이 질서를 지키며 지하철 역으로 입장할 수 있게 관리하고 있었다. 내가 말 탄 경찰 사진 찍어도 될까? 라면서 조던에게 속닥거렸더니, 질문 자체가 귀엽다는 듯 "당연히 되지, 사진 찍어~ 어떤 사람은 심지어 만지기도 해."랬다. 나는 괜히 제복 입은 사람만 보면 쫄보가 된단 말이야..

엄청난 인파, 모두가 지하철 역으로 향하는 사람들이었다

  플랏 건물로 들어오는 길 맞은 편은 경기장에서 빠져 나와 걸어온 사람들로 가득했다. 차도도 통제했고 도로변 펜스도 엄청 길게 설치해 두었던데, 언제 이런 것을 다 대비했는지 신기했다. 진짜 대단한 경기이긴 했나봐. 우려와는 달리 큰 문제가 생기진 않았던 것 같다. 7월에 잉글랜드 VS 덴마크 경기 때 승리한 후 동네에 난리가 났는데, 그래도 그 때보단 별 일이 없었다. 모두가 평화로운 저녁, 좋아.

 

 

두번째 스쿼시

  지난 주는 별 일은 없었다. 그저 잘 먹고 잘 다니고 건강하게 사는 것 뿐. 지난 토요일엔 잊지 않고 스쿼시를 갔다. 두번째로 했더니 처음보다는 훨씬 덜 힘든 느낌이었다. 그리고 지난주부터 아침마다 컨디션이 안 좋을 때를 제외하고는 스트레칭과 간단한 유산소 운동(여러 운동 영상들을 보다가 현재는 배우 이미도씨의 '미도로빅' 영상으로 자리 잡았다.)을 하는데 그게 조금 도움이 되는 것 같다. 앞으로도 이렇게 계속 운동을 이어 나가고 싶다. 그래서 운동복도 샀지롱 호호.

Radici에서의 저녁

  그리고 토요일 저녁에는 외식을 했다. 월말이라 Joint Account에 남아 있는 돈이 여유롭지 않은 상황이어서 최대한 아끼고 싶었는데, 조던이가 계속 "외식하고 싶어~ 계은이랑 같이 데이트 할래~"라고 해서 저녁 늦게 집을 나섰다. 집 앞 Upper Street에는 여러 식당들이 있는데, 이전에 지나치다 발견했던 Radici라는 식당에 가보았다. 예약 전 구글 지도의 평점을 살피는데 최근 몇 주간의 후기가 좋지 않아서 고민이 되었지만, 분위기나 음식이나 끌리는 곳이라 다른 곳을 가고 싶지 않았다. 처음 식당을 발견하고 밖에서 봤을 때는 작은 식당이라고 생각했는데, 의외로 내부가 엄청 컸고 사람들도 가득 차 있는 인기 있는 식당이었다. 우리는 Buffalo mozzarella with anchovies를 나눠 먹을 스타터로, Wild mushroom orecchiette and fine herbs와 Porchetta with mash potatoes and cavolo nero를 메인으로 주문했다. 로제 와인 한 병도 주문해 식사와 함께 마셨다. 음식은 정말 맛있었고, 양도 푸짐해서 흡족하게 배부를 정도로 잘 먹었다.

▪︎ Radici
Address : 30 Almeida Street, London N1 1AD
Open : Monday Closed / Tuesday - Wednesday 17:00 ~ 22:00
              Thursday - Friday 12:00 ~ 15:30, 17:00 ~ 22:00
              Saturday 12:00 ~ 22:00 / Sunday 12:00 ~ 15:45
Website : https://www.radici.uk/

  또 식사를 하는 동안 조던이와 진지한 이야기도 많이 했는데, 대부분이 내가 그 동안 숨기고 있던 감정이나 생각에 대해서였다. 조던이 입장에서는 전혀 예상하지 못했을 것이고(갑툭튀 진지한 이야기) 한편으로는 내가 그런 감정이나 생각을 가지고 있다는 것에 속상할 수 있는데, 조던이는 언제나 이야기를 잘 들어주고 괜찮다고 말해준다. 내가 조심스럽게 꺼내놓은 이야기는 현재 세계적 펜데믹 상황과 겹처 악화되는 것에다 해외에 사는 사람으로서 혹은 국제연애, 국제커플로서 경험할 수 있는 감정인지라 뚜렷한 해결책이 있을 수가 없다. 그걸 알기에 나 또한 매번 표현하지 않고 나 혼자 감당하려고 애쓰지만, 솔직한 마음에서 그러한 감정이 조던과 나의 관계에 전혀 영향이 없다고도 할 수 없는 것. 수십번을 고민하다 툭하고 털어놓으면서도 혹시나 그것이 조던이에게 상처가 될까 조심스러웠지만, 조던이는 "난 네가 그걸 혼자 감당하려고 하지 않았으면 좋겠어. 물론 그런 이야기를 들으면 속상하지. 하지만 나에겐 네가 솔직하게 모든걸 털어놓을 수 있는 것 자체가 더 중요하고 고마워."라고 말했다. 제발 코로나가 빨리 끝나서 내가 느끼는 감정의 무거움을 조금 덜어낼 수 있는 순간이 오면 좋겠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남겨보는 최근 먹부림 사진들.

(1) 떡볶이 : 한인마트에서 여러가지 주문을 하면서 떡볶이 떡을 주문했다. 한국에서 런던으로 돌아온 것이 5월이었는데 9월이 되어서야 처음으로 떡볶이를 다시 먹었다. 이케아에서 산 치킨볼과 함께, 너무 맛있었다. 사진을 보내며 자랑하는 딸내미에게 엄마는 "떡 적게 먹어라. 살 찐다잉~"이라고 하셨지만, 5개월만에 먹는 떡볶이는 행복이었다.

(2) 미트볼 파스타 : 또다시 해먹은 미트볼 파스타. 진심 이케아 미트볼 또 사러 가야지. 이번에는 고추장을 조금 넣어 매콤한 로제 소스를 만들어볼까 했는데, 너무 적게 넣었는지 매운맛이 느껴지지 않았다. 차라리 다음에는 크림소스를 사서 해볼까봐.

(3) 잠봉뵈르 샌드위치와 샐러드 + 앙버터 빵 : 운동을 마치고 돌아오는 길에 이탈리안 식료품 가게를 발견했다. 야채나 과일, 치즈 등도 신선해서 구경 삼아 들어갔다가 바게트 빵과 샐러드 야채, 햄을 사서 돌아왔다. 잠봉뵈르를 먹어본 적은 없지만(너무 죄책감 드는 메뉴 아닌가..) 반을 가른 바게트에 버터와 햄을 넣고 간단 샌드위치를 만들었다(물론 내 기준에 적정량). 올리브 오일과 발사믹 식초를 두른 샐러드는 간단하니 너무 맛있고, 남은 바게트 부분으로 버터와 양갱을 넣어 간편 앙버터도 만들었다. 분위기를 맞춘다고 친구 예진이가 만들어준 우드 보드를 플레이팅에 썼는데, 너무 예쁘다. 잠봉뵈르를 모르는 조던이도 그저 내가 만들어 주는 것은 다 좋다고 하고, 다음에 파리 여행을 가면 원조 잠봉뵈르를 먹어 보자며 우리식 간편 점심을 마쳤다.

(4) 러스크와 잼 : 이 토스트도 이탈리안 식료품 가게에서 산 것. 내가 러스크를 엄청 좋아하는데, 내가 좋아하는 그 느낌의 러스크를 영국 슈퍼마켓에선 찾을 수가 없었다. 인터넷에서 주문을 해야하나, 몇 번을 미루던 차에 이번에 우연히 발견해서 얼른 담아왔다. 여러 종류의 잼과 버터, 남은 양갱을 얹어 먹었더니 맛있었다. 이렇게 동네 투어하면서 발견하는 작은 행복이 있는데, 다음에 이사가면 이 동네가 그리워서 어쩐다.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