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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상 기록장/2021년

[영국생활] Day+1781 엉킨 실타래(feat. 영국 Home Office)

by kyeeunkim 2021. 7. 30.

2021.07.29

  작년 11월 말부터 나에게는 엉킨 실타래가 있다. 무려 영국 Home Office(비자 및 이민 관련 정부 부서)가 내려주신, 풀기가 너무 어려운 실타래이다. 학생 비자가 만료되기 전, 새로운 비자를 신청한 것이 거의 1년 전, 8월 중반 쯤이었다. 코로나 사태로 영국에 락다운과 규제의 변화가 많던 그 시기, 아마 많은 사람들이 혼란을 겪었을 것이다. 이런 전국적인 셧다운은 영국 정부 입장에서도 이례적인 것이었겠지. 정상적으로 운영되어도 일이 터져나갈 것이 분명한 영국 홈 오피스는 작년 코로나로 인해(혹은 핑계로?) 업무에 엄청 많은 지연과 오류를 보여줬다. 나 또한 그것을 고스란히 겪은 사람이었고. 최대 8주 정도면 비자 신청에 대한 결과를 알 수 있던 평소와 달리, 세 달이 가까워지도록 어떤 업데이트를 받지 못하던 나는 온갖 방법을 써보던(남자친구의 든든한 도움과 정보 제공도 있었고) 차에, 11월 말 무사히 비자 신청이 통과되었다는 결과를 받았다. 새로운 비자가 나왔으니 모든 난관이 끝났다고 생각했던 나와 남자친구가 안일했던 걸까. 지금까지 풀지 못하고 있는 실타래는 이 때부터 꼬이기 시작했다.

  보통 비자가 통과된 후, 일주일 내로 BRP card, 즉 외국인의 합법적 거주 증명을 해주는 신분증을 발급/배송해 주는데, 아무리 기다려도 그 카드가 오지 않았다. 비자를 신청하고 결과를 기다리는 동안 이사를 해서 주소가 바뀌었던 나는 분명 비자 결과를 통보 받기 전 주소 정보를 수정했어서 정보가 틀렸을 것이라곤 생각하지 못했다. 그저 배송에 오류가 있거나 발급이 늦어질 것이라 생각했지. 사람이 하는 일이니 오류가 생길 수 있는 것은 당연하고, 느려터진 영국 시스템에 이 정도 지연이야 납득할 만한 것이서 그저 이후 안내된 순서에 따라 BRP card가 배송되지 않았음을 보고하고 답변을 기다렸다. 하지만 코로나 때문에(이쯤되니 분명 핑계로 느껴짐) 답변도 지연되고, 내가 문의한 질문들이 몇 번이나 무시 혹은 누락되더니 한 달이 넘어서야 '이미 진즉에 예전 주소로 배송되었다.'라는 답변을 받았다. 갓뎀. 안 그래도 그 전에 남자친구가 이전 집주인에게 '혹시 이런이런 우편이 배송되었느냐.'라고 연락을 하기도 했다(내가 엄청 닥달해서). 12월 초에 연락했을 당시에는 그런 적 없다던 집주인이 이미 홈오피스로부터 카드가 발송되었다는 연락을 받은 후 다시 연락했을 때는 '그렇지 않아도 새로운 세입자가 홈 오피스로부터 편지를 받았었는데, 자신이 당사자가 아니어서 편지에 쓰여진 안내대로 반송했다.'라고 연락이 왔다. 뭐 이런.. 배송은 12월 초에 했는데 왜 그 당시에는 그런적 없다는 답변을 했던 것인지.

  그리고 한참 후에야 내가 10월 말 쯤 신청했던 주소 변경이 그때서야 처리되었다는 연락을 받았고 나는 그 때부터 영국 공무원들이 하는 모든 일처리에 대한 신뢰를 잃었다. 결국에 수 많은 시스템 상의 지연과 의사소통의 오류로 나의 BRP card는 영국 어딘가, 혹은 브리스톨에 위치한 BRP 관리 본부의 수많은 반송 편지 중 하나로 처박혀 있을 터였다(내가 상상하는 바로는, 수많은 반송 편지를 쌓아두고 확인하는 과정은 없을 듯 하다.). 그리고 2월 초 나는 계속 미루던 한국 일정을 더 이상은 미룰 수 없었고, 혹시나 BRP card가 제대로 된 주소로 배송되거나 도움이 될 만한 답변을 받으면 해결을 보기로 하고 BRP card는 구경도 못한 채로 한국으로 향했다. 그리고 결론은? 답변도 못 받고 카드도 도착하지 않았지. 결국엔 남자친구가 replacement를 신청하는게 가장 좋은 방법일 것이라고 나를 설득해서(나는 우리가 잘못한 것이 하나도 없는 상황에 추가 비용을 더 지불하는 것이 싫어서 그냥 여행하는 척 영국으로 입국하겠다고 했었음) 카드 분실 및 교체 신청을 했는데, 그 이후에야 '너 분실 및 교체 신청 했다고 기록이 있더라? 그럼 이전 문의 및 카드는 사용할 수 없으니 상관 안하는걸로 할게~'라는 식의 답변을 받았다. 오, 쉬엣.

이 도움 안되는 홈 오피스...

  그래, 엄청난 심리적 스트레스를 지속적으로 받는 것보다 추가적인 비용을 조금 더 지불하더라도 마음 편한게 낫지 않을까 싶어 결국엔 정석으로 교체 신청을 하고, 영국에 돌아와 추가적인 신청 과정도 마쳤다. 하지만 비자 appointment로부터 6주가 지난 지금, 난 아무런 업데이트를 받지 못했다. 비자 신청이 잘 들어갔는지, 심사가 진행 중인 것인지(나의 경우는 심사랄 것도 없겠지만), 결과가 나왔는지, 그래서 BRP card가 배송된 것이지 그 어떤 것도 알 수가 없었다. 보통은 BRP card를 배송하기 전에 안내 메일을 주기도 하고, 심지어 배송하는 회사 쪽에서 연락을 하기도 해서 그것에 대한 기대가 있었는데, 한달쯤 되어가니 마음이 초조해졌다. 이전에도 비자 결과만 통보 받았을 뿐 BRP card 발송에 관한 홈 오피스 혹은 배송 회사로부터 연락을 받은 적이 없었고, 주소 정보의 오류를 겪었던지라 혹시라도 또 다시 주소가 잘못 입력되었거나 업데이트가 안되었으면 어떡하지 라는 마음에 결국엔 오늘 홈 옴피스에 전화를 해봤다.

  하지만 약 50분 가량의 대기 시간 후 겨우 연결된 상담사는 친절하긴 했지만(내가 목소리 덜덜 떨어가며 애잔하게 문의해서 그런 것인지는 몰라도), 결국 아무런 도움이 되지 못했다. BRP card가 배송된 것인지, 신청한 지원서가 처리되고 있는 것인지 혹은 주소 정보가 정확한지 확인할 수 있는지 상담자 측에서는 아무것도 할 수 없다고 했고(접근 권한이 없어서 아예 아무것도 할 수 없다고), 비자 appointment 이후 6주가 지났으니 기다려보고 만약 카드를 받지 못한다면 신고 과정에 따라 보고를 하는게 좋을지도 모른다고 했다. 그 말 즉슨, 내가 지난 12월~2월까지 겪었던 모든 과정을 다시금 하라는 이야기였다. 그 과정만이 내가 BRP card를 받지 못했음을 알리고 그에 대한 답변을 얻을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라고. 게다가 주소에 대한 정보도 변경할 수 있는 링크를 찾아 변경하는 것만이 유일한 방법이라고 했다.

 

  이렇게 또다시 실타래가 풀리지 않고 엉켜만 있으니, 너무 답답하다. 영국 홈 오피스의 업무를 처리하는 꼬락서니도 그렇고, 복잡한 비자 신청 및 이민 과정에 엄청난 비용을 지불해야 함은 물론, 문의나 도움을 분명하게 청할 수도 없는 폐쇄적인 의사 소통 시스템도 너무 힘들다. 그 와중에 이런 시스템과 생활에 익숙한 남자친구는 내가 아무리 옆에서 초조해 봤자 "원래 영국은 느리니까, 조금만 더 기다려보자."라는 식으로 일관하다 뒤늦게 나를 도와주는 경우가 있어 답답할 때도 있다(작년 12월에도 나는 몇번이나 빨리/미리 이전 집주인에게 연락해보자고 제안하고, 좀더 방법을 찾자고 닥달하는 경우가 많았다면 남자친구는 조금만 더 기다려봐 라는 식이었다.) 남자친구가 평소 나를 잘 도와주고 지지해주지만 가끔은 이런 면에 있어서는 굼뜨다고 해야하나, 이런 식으로 문의나 전화를 해보는 것이 다른 사람에게 피해나 민폐일지도 모른다는 문화가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나중에 시간이 한참 지나고 나서야 연락하는 경우가 많아 가끔은 그게 더 나를 답답하게 만들 때도 있다. 나는 외국인으로서 소심해지고 정확한 방법을 몰라 헤매이는데, 남자친구는 답답하지도 않은 모양새랄까.. 영국인들 인내심 엄청 강한가봐..

  결국엔 오늘 기분이 엄청 상한 상태로 겨우겨우 다시 한 번 주소 변경을 신청했고(이전에 했지만 정확히 주소 변경이 된 것인지 double-check를 할 수 없으니) 또다시 이후의 연락을 기다려야 할 것 같다. Google 검색에서는 보통 교체 신청이 최대 8주까지 걸린다고 하는데, '그보다 일찍 확인될 수도 있다.'라는 부분도 있어 큰 도움은 되지 않는 듯하다. 영국 공무원들에게 모든 신뢰를 잃은 이 마당에 그래도 마지막까지 놓지 않는 끈은, '아무리 일을 대충해도 결과가 나왔으면 통보는 해주겠지.'라는 것 하나 뿐이라, 어쨋든 아직 결과 메일을 받지 못했으니 나의 신청서가 아직 처리 중이라고 믿고 싶다.

 

  게다가 또 다른 문제들도 있다. 지난 일요일의 폭우로 겪은 최악의 정전과 단수에 대해 일기를 썼지만, 그 여파가 아직까지 미치는 상황이다. 사진에 보이다시피 지하 주차장 입구 언덕에 물이 저렇게 찰랑찰랑일 만큼 침수가 된 모양인데 이틀 동안 수 많은 사람들이 물을 퍼내기 위해 작업하는 것을 볼 수 있었다. 차가 없는 사람으서는 참 고생이고 안타깝다, 정도였는데 그 이후로 우리집의 보일러와 에어컨에 오류가 생겼다. 화면에 에러 코드가 뜨고 에어컨이 작동되지 않았는데, 알고 보니 emergency 상황에만 작동되는 최소한의 온수만 유지되고 나머지는 오류가 생긴 것이다. 어제부터 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관리자가 몇 번이나 들락날락했지만 아직 고쳐지지 않은 상태다. 플랏끼리 연결이 되어있어 전체적인 플랏 상황도 살펴봐야 하는 듯하고, 정확한 오류의 원인을 찾아야 해서 시간이 더 걸릴 듯 하다. 아무튼 이 모든 것이 일요일의 폭우와 그에 따른 침수 때문이라니, 세상 무슨 일인가 싶다. 물론 전기와 물이 나오고 온수를 사용할 수 있는 것만으로도 감사하지만, 정상으로 돌아가지 못한다는 것은 참 불편하고 찝찝한 일이라고나 할까.

 

 

 

  요 근래의 불편하고 짜증나는 이 기분들을 정화시키는 마음으로 최근의 먹부림들을 남겨본다.

  지난 주말 동네 산책을 하다가 발견했던 식료품점이 있다. 작은 규모에 농장에서 공급되는 야채나 과일, 그 외에 보통 슈퍼에서는 구할 수 없는 독특한 식재료들을 판매하는 곳처럼 보였는데 그래서인지 보통 쉽게 볼 수 없는 감자칩들이 있었다. 트러플 시즈닝이 된 감자칩이 궁금해서 사보는 김에 그 옆에 같이 있던 포장지가 마음에 드는 감자칩도 함께 구매했다. 그리고 나머지 식료품들을 구경하는데, 냉동고에는 처음 보는 아이스크림도 있는 것이 아닌가. Spanish Honeycomb는 아이스크림 맛으로는 처음 보는 것이기도 해서 같이 구매하는데, 계산을 해주던 직원도 "이 아이스크림은 어떤 카페에 개인이 만드는건데, 늘 인기가 많아서 만들자마자 다 나가곤 해. 진짜 맛있으니까 먹어봐."라고 추천하기도 했다.

  나중에 먹어본 감자칩들은 정말 바삭하고 맛있었고, 특히 트러플 감자칩은 처음에는 트러플 향이 너무 강해서 오히려 부담스러웠지만 먹다보니 계속 생각나고 땡기는 맛이라고 할까. 감자칩을 좋아하는 편도 아닌데 맛있게 잘 먹었다. 그리고 아이스크림은 추천대로 정말 맛있었고, 귀하게 아껴먹는 중이다.

동네 식료품점에서 산 독특한 감자칩과 아이스크림

  그리고 아래의 사진들은 최근의 먹부림들. 첫번째 토스트 사진은 Welsh Rabbit이라는 치즈 토스트인데, 갑자기 남자친구가 만들어 보고 싶다며 재료를 구입하더니 어느날 점심으로 만들어줬다. 만드는 과정은 보지 않아서 레시피나 재료에 대해선 모르지만, 먹어본 맛으로는 머스타드 향이 새콤하게 느껴졌다. 심플한 재료에 간단하게 만들 수 있는 것 같은데 맛은 좋은 토스트였다. 그리고 다음은 남자친구의 커리 요리. 남자친구는 커리를 잘 만드는데, 여러가지 향신료를 가지고 어떻게 그렇게 맛을 잘 내는지 모르겠다. 나에겐 요리 중에 어렵고 낯선 부분인데 남자친구가 잘 해서 좋다. 가끔 향신료를 볶는 냄새만으로도 좋다. 그는 늘 요리를 끝내고 맛이 어떨지 걱정하지만 난 지금까지 별로라고 느낀 커리가 없었다. 세번째 사진은 내가 한 닭볶음탕. 남자친구가 제일 좋아하는 한국 요리 중에 하나이기도 한데, 이 날도 "저녁으로 뭐 먹지? 내가 오랜만에 한국 요리 할게!"라고 했더니 대뜸 하는 말이 닭볶음탕이었다. 이것만 유일하게 잘 기억하나 싶기도 하지만, 그만큼 좋아해서 기억을 잘 하는 것 같기도 하고. 다른 새로운 요리를 해볼려고 좀 더 레시피를 검색했지만, 결국 쉽게 잘 할 수 있는 닭볶음탕이 짱이긴 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어제 저녁으로 먹은 일본식 볶음 국수. 인스턴트 제품에 새우 대신 스팸을 넣고 야채도 왕창 넣어 후루룩 볶았다. 남자친구는 일본식 볶음 국수를 인스턴트로 집에서 해먹기는 처음인 것 같았는데, 맛있다고 잘 먹어주니 기분이 좋았다.

최근의 먹부림

  아 한바탕 쏟아내며 여러가지 이야기를 적으며 시간을 보냈더니 일기를 시작할 때보다 훨씬 기분이 나아지는 것 같다. 해결된 것이 없어 답답한 마음도 많지만 한편으로는 할 수 있는 일도 없으니 우선은 조금 더 차분한 마음으로 기다려야겠다. 어제부터 취업도 이것저것 조사하고 지원하기도 했는데, 점점 더 좋은 소식들이 많이 들려오면 좋겠다. 오늘도 맛있는거 먹고 또 기운 차려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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