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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상 기록장/2021년

[영국생활] Day+1869 어린 시절 친구가 런던에 왔다

by kyeeunkim 2021. 10. 26.

2021.10.25

  지난주에는 나름 여러 일들이 있었다. 사진으로 남기지 못한 일도 많았지만, 정말 오래 기억하고 싶은 한 주였다.

 

  먼저 지난주에는 업무 관련 미팅이 있었다. 이번달 초, 이전에 같이 일했던 Hayate에게서 소개 받았는데, 그의 친구 Maki가 패턴에 대한 전문적인 도움이 필요하다고 했다. 상황을 보아하니 마키는 현재 프리랜서로 일하면서 개인 브랜드 런칭을 준비하고 있었고, 그 과정에서 디자이너 Harold를 알게 되었다. 해럴드는 영국인으로 일본에서 패션을 공부하고 일했고 현재는 웨일스에서 일한다. 브랜드 런칭을 계획한지 5개월 정도인 초기 준비 단계로 그들은 틈틈이 디자인과 샘플을 제작하고 있었다(다른 본업을 하는 와중에 작업이라니 대단하다..). 4개의 샘플을 만들었는데, 아무래도 패턴에 대한 전문적인 지식 및 기술이 없다보니 패턴사를 알아보다 나를 소개받은 것이다.

  수요일에는 다 같이 만나 저녁을 먹으며 이야기를 나누고, 목요일에는 업무 미팅을 했다. 마키와 해럴드가 만든 패턴과 샘플을 보며 디자인의 방향 및 디테일에 대해 내가 패턴사로서 적절한 조언 및 수정 사항을 의논하는 식이었다. 각 패턴마다 수정해야 하는 부분들을 기록하는데, 상황을 보아하니 당장 그 날에 끝내자는 분위기가 아니었다(난 1일 업무인 줄 알았음). 사실 하루만에 패턴 4개를 모두 수정, 제작하기가 말처럼 쉽지 않지...😂 어느 정도 정리가 되자 "그럼 우리 이후에 어떻게 같이 작업하면서 커뮤니케이션 하지?"라며 질문이 나왔다.

  사실 수락하기 쉽지 않은 작업이었다. 프리랜서로 일하는 나는 대부분 마련된 스튜디오에 출근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실물 작업이 필수적이고 빠른 의사 소통을 위해서는 한 공간에 같이 일하는 것이 효율적이니 말이다. 그래서 팬데믹으로 재택 근무가 대중화 되었어도 패션 업계에서는 그 변화가 어려웠다. 하지만 마키와 해럴드가 좋은 사람들이라 함께 작업해 보기로 했다. 게다가 이번 업무는 큰 공간을 필요로 하지 않는 수정 작업 정도라 집에서도 어느 정도 일할 수 있을 것 같았다. 패턴도 4개 중에 2개만 우선 맡기로 하고, 이후에 더 필요한 소통에 대해서는 방법을 조율하기로 했다. 대신 철저하게 종이와 광목(샘플 제작)을 지원해 달라고 했고 일주일에 일할 수 있는 날도 대략 정해놔서 유연하게 대처할 수 있을 것 같다. 이후에 지속적으로 작업을 계속하게 될지는 서로의 상황을 봐야 해서 지금 당장은 이렇게 일을 진행하기로 했다. 간만에 또 일하게 되었네.

 

 

  그렇게 업무 미팅을 마친 목요일 저녁, 조던이는 회사 회식(볼링+술)으로 늦게 들어오는 날이라 나는 평화롭게 개인 시간을 보냈다. 밤 1시를 가까워지는 때 조던이가 돌아왔는데, 보통 문을 열면서 내 이름을 부르고 안부를 묻는게 일반적인 그가 가만히 서있는 것이 아닌가. 무슨 일이지 싶어 돌아보던 차에 조던이가 "계은이... 나 휴대폰 잃어버렸어."라고 말했다, 엄청 시무룩해진 표정과 자세로. 어찌된 일인고 들어보니, 회식이 끝나고 방향이 같은 회사 동료와 Uber를 나눠 타고 와서는 차에서 내리고 집에 오는 그 몇걸음 사이 휴대폰이 없어진 것을 눈치챈 것이다. 여기서 엎친 데 덮친 격의 까다로운 상황들이 일을 더 복잡하게 만들었다.

- 상황 1. 우버는 회사 동료가 불렀으며 비용을 split하지 않아서 조던이의 우버 계정에는 운전자나 여행에 대한 정보가 남아있지 않았다.

- 상황 2. 회사 동료는 진짜 말 그대로 회사 동료라 개인적으로 연락할 수 있는 방법이 없었고, 회사 이메일로만 연락할 수 있었다.

- 상황 3. 그 동료는 다음날인 금요일에 휴가를 냈다. 즉, 금요일에 동료가 회사 메일을 확인할지는 장담할 수 없는 상황.

  어쨋든 회사 메일로 동료에게 연락을 한 후, 내가 "삼성 휴대폰도 추적 시스템이 있을텐데 그걸로 알아보자!"라고 제안했고 급하게 조던이의 휴대폰을 조회했다. 추적된 위치는 Shoreditch로 휴대폰이 우버 차량 안에 남아있을 가능성을 더욱 높여줬다. 하지만 여기서 또 문제점들이 생기는데,

- 상황 4. 내가 조던이 휴대폰으로 전화나 문자를 하려고 했지만, 조던이는 언제나 휴대폰을 '무음'으로 해둔다. 심지어 진동도 아님.. 만약 휴대폰이 차량 뒷자석 구석탱이에 있으면 찾을 방도가 없다.

- 상황 5. 삼성 휴대폰 추적 시스템에 무조건 크게 알림을 울리는 기능이 있어 그걸 이용해보자, 했는데 그 순간 남아있는 휴대폰의 베터리는 3%였다. 그리고 무슨 손 쓸 방법도 없이 다시 휴대폰 상태를 새로고침하는 순간 휴대폰은 꺼져버림..

  ....무음을 고집하고 완충도 안하고 다니는 조던이의 습관이 절정을 달하는 순간이었음... 결국 우리가 할 수 있는 방법은 모두 놓치고, 동료가 다음날 이메일을 확인하길 바라며 잠에 들었다. 동료는 다행히 아침이 되자 메일을 확인했고 우버에 연락을 취해줬다. 휴가 아침에도 회사 메일 확인하는 성실하신 분... 꽤나 오랜 시간이 걸려서 '동료-우버 서비스 센터-우버 운전사'의 연락이 이어지다 늦은 오후 조던이에게도 연락이 왔다. 다행히 다음으로 탔던 커플이 휴대폰을 발견해서 해당 운전자가 휴대폰을 보관 중이라고 했다. 그 날 저녁 다시 우버 일을 시작하면 주소로 갖다줄 수 있으며 소정의 사례비를 내야 했다(정해진 우버 서비스 규정 내용인 듯). 조던이 입장에서는 휴대폰을 찾을 수 있는 것만으로도 고맙운 일이었다.

잃어버린 휴대폰을 기다리며 축구 보던 조던이

  금요일 저녁에는 내가 친구와의 약속이 있어서 조던이가 홀로 집에 있었는데, 집에 돌아오니 우버 운전자의 연락만 오매불망 기다리며 축구 보고 있더라ㅋㅋㅋㅋ 야간 우버 근무를 하는 사람이었는지 생각보다 연락이 늦게 왔지만, 그래도 결국엔 안전하게 휴대폰을 찾을 수 있었다. 휴대폰 찾고 나서 아주 덩실덩실 춤을 춤ㅋㅋㅋㅋ (보고 있던 축구도 이겼다!)

 

 

  이런 다사다난했던 일들 외에도, 나에게는 지난주가 특별했던 다른 이유가 있었다. 바로 베프 중 한 명인 Susie, 소영이가 런던에 온 것! 약 2주 전 런던 출장이 잡혔다며 주말에 만나자는 연락을 받았다. 코로나 때문에 서로를 방문하는 것이 쉽지 않을거라 생각했는데, 이렇게 현실로 가능해지니 너무 설레었다.

  소영이는 나의 중학생 시절 친구로, 비록 같은 학교를 다닌 시간은 1년 뿐이었지만 10대의 전부를 채울 만큼 소중한 친구다. 중학교 1학년이 끝나고 소영이네 가족 모두가 미국으로 이민을 가서 10년 가까이 만나지는 못했지만, 편지와 이메일로 끊임 없이 연락을 했다. 대학생 시절 내가 뉴욕에 갔을 때, 당시 시카고에서 일하고 있던 소영이가 뉴욕으로 와서 시간을 보내기도 했고, 나의 런던 유학 생활을 하는 중에도 소영이가 두어번 놀러 왔다(다른 일정 중에도 런던을 꼭 들러줬다). 2017년 겨울에는 내가 소영이가 살고 있는 샌프란시스코로 날아가 만났었고, 2019년 여름에는 소영이의 결혼식 참석을 위해 딱 2주 한국을 갔던 적도 있다. 이제는 미국인이 된 소영이는 한국인 남편과 샌프란시스코에 자리 잡아 신혼 생활을 보내고 있고, 유학으로 끝날 줄 알았던 나의 런던 생활은 이제 혼자서가 아닌 영국인 남자친구와 이어가고 있다. 새삼 얼마나 신기한 인연이고 이야기인지.

 

  소영이의 이번 일정은 독일 뮌헨을 거쳐 영국 런던까지 출장이었는데, 남편분도 함께 동행했다(휴가로!). 소영이 남편, 즉 형부는 결혼식 때 뵙긴 했지만 사실 인사를 제대로 하지는 못해서(결혼식 때 상황이 언제나 바쁘니..) 이번 기회에 조던이도 포함, 다 같이 보면 좋을 것 같았다. 그래서 금요일엔 소영이와 단 둘이 저녁을 먹고, 토요일에 전시회를 보며 따로 시간을 보내다 저녁에 형부와 조던이까지 다 같이 만나 밥을 먹기로 했다.

Burrata Salad와 Pasta Alla Norma

▪︎ Norma
Address : 8 Charlotte Street, London W1T 2LS
Open : Monday - Saturday 12:00 ~ 22:00 / Sunday Closed
Website : https://normalondon.com/

  이번 일정을 위해 대략 2주 전에 계획을 세웠다. 여러 정보를 찾아서 리스트로 보내면 소영이가 고르는 식이었다. 그렇게 금요일 저녁으로 선택된 식당은 Norma. 실내 인테리어가 아기자기하게 예쁜 식당이었는데, 특히 프라이빗한 2인석에 안내 받아서 좋았다(예약할 때 'speical occasion'이라고 설명했더니 신경 써줬나 봄). 우리는 샐러드로 Burrata, Roasted Delica Pumpkin, Radicchio, Figs, Fig Leaf Vinegar를, 파스타 메뉴로는 Pasta Alla Norma, 그리고 메인으로 Seasonal Whole Fish, Cooked Over the Charcoal Grill을 주문했다. Whole Fish 메뉴는 늘 달랐는데, 우리가 물어봤을 땐 Sea bass, Monkfish, Lemon Sole 중에 선택할 수 있었고, 추천을 받아 Monkfish를 주문했다.

  주문한 음식들은 모두 맛있었고 식당 분위기도 좋았는데, 직원의 서비스가 약간 이상했다ㅋㅋㅋ 우리는 이런걸로 문제를 삼진 않았지만, 담당했던 직원분이 약간 깜빡깜빡하는 편이었다. 주문을 할 때 와인부터 먼저 이야기하고 음식을 이어 말했는데, 주문을 다 받은 그녀가 "마실 건 따로 뭐 필요없어?"라는 것 아닌가. "우리 방금 주문했는데.."라고 하자 "오, 미안, 잠시만~"라더니 다시 테이블로 돌아와선 "근데 다른 사람이 주문 받았어?"라길래 속으로 엄청 황당했다. 레드 와인, 화이트 와인 한 잔씩 주문했다고 다시 차근차근 이야기 했더니 이내 곧 갖다 줬지만, 이 때부터 조금 불안했다. 그리고 역시나 또 한번 더 일이 생김ㅋㅋㅋ 샐러드와 파스타를 다 먹었는데도 메인 요리가 안 나오길래 아무래도 오래 걸리나 보다 싶었지만 그 직원이 오더니 "디저트나 뭐 그런건 필요없어?"라고 물었다. "우리 지금 메인 생선도 못 받았는데.."라고 하자 아차 싶었는지 후다닥 주문 확인하러 감. 이후에 미안하다며 늦지 않게 나올거라는 소리를 들어보니 그제서야 주문 넣은 듯. 이런 사소한 해프닝이 있긴 했지만 그래도 음식은 맛있었다.

Seasonal Whole Fish, Cooked Over the Charcoal Grill - Monkfish

  그러고 밥값 서로 계산하겠다고 엄청 실랑이하고. 몸싸움도 아닌 것이 영수증 가지고 엄청 난리치다가 결국엔 내가 했다, 휴. 지금까지 만나서 밥 같이 먹을 때마다 소영이가 계산을 많이 해서(난 학생이고 자긴 직장 다닌다고😭) 이번에야 말로 내가 대접하겠다 했다. 근데 결국 다음날 저녁엔 소영이가 계산함, 흐엉.

 

  원래는 토요일도 이른 오후부터 만나서 전시회도 가고 놀려고 했는데, 결국엔 취소됐다. 아무래도 2주 넘는 출장 기간 동안 스케줄이 빡셨는지 막판이 되니 소영이가 몸살이 난 듯 했다(들어보니 빡시긴 했음). 전날 저녁을 먹을 때도 컨디션이 안 좋아 보여서 일찍 헤어졌는데, 토요일 오후 일정은 힘들 것 같다고 연락이 왔다. 대신 저녁을 꼭 같이 먹자고 해서 오후 시간을 혼자 보냈다.

Noguchi 전시회 / Superblue 전시회

  전시 2개를 미리 예약해 놨었는데, 티켓을 환불 받을 수는 없어서 결국 첫번째는 조던이랑 갔고 두번째는 혼자 갔다. 소영이와 시간을 보내지 못한 아쉬움도 컸지만 컨디션이 안 좋을까봐 더 걱정이었다. 주말에 비행기를 타고 미국으로 돌아가야 하는데 아프면 진짜 힘든거 아니까..😭 하지만 다행히 저녁 때는 다 같이 만날 수 있었다.

  조던이와 만나 식당으로 가니 소영이네가 먼저 도착해 있었다. 다행히 소영이는 괜찮아 보였고, 이번 기회에 형부와도 정식으로 인사할 수 있었다. 물론 처음에는 약간 샤이샤이했지. 소영이 남편분은 아무래도 나한테 형부인데 한국어로 호칭을 정리하기도 전에 영어로 캐주얼하게 이야기하는 것이 유교걸로 도무지 적응이 안됐음. 그렇다고 조던이가 있는 상황에 영어가 아닌 한국어로 이야기를 나누기도 애매해서 조금 쭈뼛거리다가 조던이가 화장실 간 사이에 한국어로 호다닥 이야기를 나누곤 했다.

Tandoor Chophouse

▪︎ Tandoor Chophouse
Address : 8 Adelaide Street, London WC2N 4HZ
Open : Monday - Wednesday 17:00 ~ 22:30 / Thursday - Saturday 12:00 ~ 23:00 / Sunday 12:00 ~ 22:00
Website : https://tandoorchophouse.com/?utm_source=google&utm_medium=local&utm_campaign=restaurant-tandoorchophouse

  우리가 토요일 저녁으로 간 곳은 Tandoor Chophouse였다. 영국식 펍처럼 생겼지만 인도 음식을 팔고 있는 레스토랑이었는데, 그 묘한 분위기가 어울려서 좋았다. 한참 수다를 떨다가(특히 조던이와 형부가 쉴새 없이 수다를 떰ㅋㅋ) 음식을 주문했는데, Chickpea Chaat, Tamarind, Pomegranate & Green Chili / House Tandoor Chicken / Tandoor Roasted Cauliflower / Masala Boti Rubbed Ribeye / Tandoori roti / Butter Naan을 주문했다. 여러명이서 많은 음식을 시켜 나눠 먹으니 너무 좋았다.

  이번이 정말 생전 처음 친구와의 더블데이트인 셈이었는데, 감회가 새로웠다. 중학생 꼬꼬마였던 우리 둘이 언제 이렇게 커서 각자 짝꿍을 데리고 만나는지..! 어릴 때는 이런 날이 오기까지 엄청 오래 걸릴 것만 같았는데. 아직 나누어야 할 이야기들은 한참인데 흐르는 시간이 아쉬운 그런 날이었다.

 

  저녁 계산에 한바탕 실랑이를 하다가(소영이가 "근데 직원이 딱 나한테 계산서 주는거 못 봤어? 내가 원래 카드 미리 맡기면 안되냐고 물어봤어."라며 먼저 온 몇 분 사이에 사전 계획이 철저했..😭) 결국엔 고맙게도 소영이에게 얻어 먹었다. 소영이의 컨디션이 쬐끔 걱정되었지만, 마지막 밤이 너무 아쉬워서 2차로 펍을 갔다. 길 안내하는데 약간 헤매서 시간이 좀 걸렸지만😢 그래도 마지막으로 맥주를 마시며 남은 이야기들을 좀 더 나눌 수 있었다.

  그렇게 펍이 11시에 문을 닫을 때까지 이야기를 나누다 헤어졌다. 짧은 시간 내로 다시 만날 수 있을 날을 기다리며, 소영이와 형부는 그렇게 미국으로 돌아갔다. 친구가 또 안 갖고 와도 되는 선물도 줬잖아, 힝구. 미국에서 건너 온 쿠키는 너무 맛있어서 이틀만에 해치움(살찌는 소리가 들린다..). 다음에는 내가 미국으로 날아간다, 기다려죠 소영아!!

소영이가 또 이쁘게 사진을 찍어줬네

 

ps. 월요일인 오늘은 사실 '피아니스트 조성진 연주회'도 다녀왔는데, 모든 것을 남기기엔 이번 주말과 하루가 너무 길다. 갑자기 10월 말이 바빠졌네, 써야할 블로그 포스팅도 엄청 밀려있다. 부지런히 작성해 나가야지!! + 그리고 수요일부터 시작될 업무도.. 바쁘다, 바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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